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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시간, 올바르게 기억하라. 그리고 망각하라”미로슬라브 볼프 「기억의 종말」 좌담회
김희돈  |  don@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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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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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를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치욕과 고통의 기억을 어떻게, 언제까지 지니고 있어야 하나.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용서와 화해의 길은 어떤 것인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이름이 있다. 천국에서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 있다. 뼈에 사무치는 고통의 기억을 내게 안긴 사람들, 세월호의 비극처럼 배제와 폭력의 시대가 낳은 기억들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지난 2일,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의 특별좌담회는 바로 이러한 기억의 문제를 짚어보는 장이었다. 화해의 신학자로 알려진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교수(예일대학교)의 새 책  기억의 종말」(IVP)을 통해 기억에 대한 담론을 가졌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볼프는 그 자신이 국가권력의 폭압에 의해 무고한 심문을 당한 바 있다. 치욕과 유린의 기억은 오랜 시간 그를 지배했고 과거 속에 그 자신을 옭아맸다. 볼프는 폭력과 학대가 낳은 자신의 ‘기억’을 그의 책 기억의 종말에 진솔하게 담았다.

   
 

기억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 것일까. 발제자로 나선 강영안 교수(고신대학교 이사장)는 서구사회가 기억을 중시하는 이유부터 짚었다. “서양철학에서는 기억이 없다면 현재의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도 없다고 봅니다. 기억은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여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고백론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기억과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행복을 다룬 내용을 발췌해 서양철학에서 기억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설명했다. “고백론 10장에서 저자는 기억의 힘과 하나님이 너무나 크다고 고백합니다. 기억의 힘은 내 영혼의 소유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감탄이죠. 기억 가운데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었습니다.”

강 교수는 이렇듯 기억의 가치의 요점을 짚은 후, 미로슬라브 볼프가 말하는 기억론으로 발제를 이어갔다. 그는 기억에 관한 볼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억을 ‘폭력’(악)의 문제와 연관하여 다루는 것이라고 평했다. 기억과 악. 서양에서의 악은 저지른 악과 피해를 입은 악으로 구분하여 나 자신이 당한 억울함(악)을 타인으로부터 온 악의 문제로 여긴다. 볼프가 제기하는 기억의 문제는 이렇게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자 할 때,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가, 망각해야 하는가에 집중한다. 보통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의 기억은 엘리 비젤Eliezer Wiesel의 입장이 보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죽음에 대한 그의 시각은 “언제나, 기억하라. 끊임없이 기억하라.”였다. 그렇다면 볼프는 이러한 고통의 기억을 어떻게 볼까?

“볼프는 엘리 비젤과 같이 언제나 기억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억은 하되, 올바르게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즉 진실하고 정의롭게 기억할 것, 타자를 해치지 않으면서 피해자를 치료하기 위한 기억을 가질 것, 화해사역을 위한 동력으로서 기억을 추구할 것.”

볼프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와 함께 얼마나 오래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측면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기억 프레임이 출애굽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기억에서 온다고 보았습니다. 출애굽의 기억은 종살이와 자유의 기억이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기억은 고통을 넘어 반목과 화해를 지양하는 기억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화해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가해진 고통이 있을지라도 가해자에 대해 끊임없이 기억하고 징벌하기 보다는 오히려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수용할 수 있는 화해가 기억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볼프는 이것이 기억의 목적이고 종말이라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 ‘사랑’입니다.”

   
 

강 교수의 발제에 이어 볼프의 화해의 신학에 대한 페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김경은 교수(장신대학교) 역시 볼프가 다른 화해 신학자들과 크게 구별되는 차이점을 짚었다. 그것은 사랑에 큰 비중을 둔 것이라고 했다. “볼프의 큰 특징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화해의 목적에 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론적 관점에서 화해를 바라봅니다.”

강영안 교수는 볼프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결국 보복에 의해 피해자가 가해자로 옮겨가는 악의 순환 고리를 끊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것. 이것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롬12:21)이고 볼프의 화해 신학의 핵심이다.

좌담회의 시선은 책에서 우리의 현실로 향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고통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강 교수는 볼프가 조직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실천적이며 다분히 목회적 성향이 짙은 신학을 추구한다고 평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접목하는데 세월호 참사는 매우 실제적이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해 온 박종운 변호사는 볼프의 책을 통해 ‘진실하게 기억하기’의 중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유족들은 자식을 잃은 아픔을 의식적으로 잊고 싶어 합니다. 망각하고 싶죠. 그래서 망각을 축복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므로 궁극의 해결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박 변호사는 진정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볼프의 제안과 같이 화해와 사랑으로 나가는 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같은 기억의 시작은 한국 교회에도 매우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시선이 교회 밖의 시선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세월호 피해자들 중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겪으면서 그동안 다녔던 교회에서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 분들에게 이제 그만 하라고 먼저 짜증을 내고 싫증을 냅니다.” 이웃의 고통에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이 동참할 줄 모르는 것이다. 볼프는 이 같은 교회의 모습을 ‘기능장애’라고 표현했다.

강영안 교수는 한국 교회 안에 고통과 죽음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없거나 너무 얕다고 지적했다. 이웃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오히려 그들에게 감춰진 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모든 고통과 악은 예수께서 가져가셨으니 우리가 할 역할은 없다고 보는 무지한 시각이 한국 교회 안에 여전하다. “최근 예장총회 통합 측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압니다. 왜 다른 곳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는 걸까요. 신학의 문제입니다. 잘못된 신학이 대다수 한국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를 등한시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김경은 교수는 우리의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예수 부활의 관점에서 고통당한 이들과 연대하여 우리 사회가 화해와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고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해의 시작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입니다. 이처럼 화해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두 가지 고통은 악행을 당한 것과 함께 화해의 작업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당한 분들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먼저 화해의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볼프는 희생자와 가해자 모두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포용은 희생자와 가해자가 서로 포용할 때 완성된다고 말한 바 있다(천국에서 만나게 될 당신의 원수를 사랑하라Love your Heavenly Enemy, CTK 2016.5).

마찬가지로 기억의 종말 역시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올바르게 기억하고 화해를 위해 망각하라.”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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