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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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의미는?
  • 앤디 크라우치 | Andy Crouch
  • 승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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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명의 핵심은 '이웃 사랑'

VIEWS  WHERE WE STAND│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문화”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에게나 보내는 이런 막연하고 일반적인 판촉문구들이 생각난다.

“문화”가 더욱 세속화되고 있다거나, 우리는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할 때 말이다. “문화”에 관하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받은 그 트워터 이메일처럼, 어두운 데서 허공에 대고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문화를 이런 식으로는 이야기 하면 우리는 또한 정작 중요한 문화적 책임과 기회는 놓쳐버리게 된다.

인구가 한 3억 정도 되는 나라라면, 특히 미국처럼 정말 멋지도록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라면, 단일 “문화”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런 나라에는 다종다양한 마을과 도시, 민족과 동호회, 정당과 종파들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나라에도 공통의 국민정서가 있다. 그러나 그런 국민정서라는 것도 그 나라 안에 있는 다양한 그룹들에 의해 끊임없이 경합에 붙여지고 도전받으며 재고되고, 또는 무시되거나 적극적으로 거부되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있는 “문화”라는 이 말의 의미조차도 상당히 현대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를 만한 것을 신약 특히 요한복음은 “세상”(그리스어 ‘코스모스’)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특히 하나님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이념 체계나 영향력을 가리킬 때는 더욱 그렇다. 요한복음은 또한 “민족들”과 “나라들”(그리스어 ‘에스네’)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오늘날의 용어로는 “민족언어집단”ethnoliguistic group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가 한데 어우러져 찬양하게 될 날을 소망하며(계7:9)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롬12:2), 모든 민족ethne을 제자 삼으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이 망가진 세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코스모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는 애스네를 향해 나아가라는 부름을 받았다.

세상과 가상의 관계에 참여하지 말고 (말하자면, 트위트에서 유명인사들 곧 우리가 전혀 만날 일 없고 영향을 받을 일 없고 사랑할 일도 없는 사람들을 팔로워하지 말고), 실제의 장소에서 실제의 사람들에게 가라는 부름을 우리는 받았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실제의 사람들과 더불어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과 장소(그리고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방식도 여기에 분명히 들어 있다)의 구체적인 가능성과 한계들에 관하여 성찰한다.

우리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지속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부적절하고 망가진 것들의 대안을 만들어내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할수록, 다시 말해, 우리가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서로 의존하여 온전한 인간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문화”의 속박과 유혹을 덜 받게 된다.

우리가 “문화”의 속박을 덜 받을수록,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에 실제적인 영향을 더 많이, 때로는 매우 광범위하게, 끼칠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가 문화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들을 창조해내고 지속해 나가기 때문이다. [전문 보기: '문화' 참여의 신화]

 


Andy Crouch, “The Myth of 'Engaging Culture'” CT 2016:7/8; CTK 2016:7/8

앤디 크라우치  CT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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