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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의미는?우리 소명의 핵심은 '이웃 사랑'
앤디 크라우치  |  Andy Cr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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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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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문화”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에게나 보내는 이런 막연하고 일반적인 판촉문구들이 생각난다. “문화”가 더욱 세속화되고 있다거나, 우리는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할 때 말이다. “문화”에 관하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받은 그 트워터 이메일처럼, 어두운 데서 허공에 대고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문화를 이런 식으로는 이야기 하면 우리는 또한 정작 중요한 문화적 책임과 기회는 놓쳐버리게 된다.

인구가 한 3억 정도 되는 나라라면, 특히 미국처럼 정말 멋지도록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라면, 단일 “문화”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런 나라에는 다종다양한 마을과 도시, 민족과 동호회, 정당과 종파들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나라에도 공통의 국민정서가 있다. 그러나 그런 국민정서라는 것도 그 나라 안에 있는 다양한 그룹들에 의해 끊임없이 경합에 붙여지고 도전받으며 재고되고, 또는 무시되거나 적극적으로 거부되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있는 “문화”라는 이 말의 의미조차도 상당히 현대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를 만한 것을 신약 특히 요한복음은 “세상”(그리스어 ‘코스모스’)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특히 하나님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이념 체계나 영향력을 가리킬 때는 더욱 그렇다. 요한복음은 또한 “민족들”과 “나라들”(그리스어 ‘에스네’)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오늘날의 용어로는 “민족언어집단”ethnoliguistic group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가 한데 어우러져 찬양하게 될 날을 소망하며(계7:9)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롬12:2), 모든 민족ethne을 제자 삼으라는 부름을 받았다. [전문 보기: '문화' 참여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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