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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꽃보다 향기롭다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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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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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의
행가래 幸家來



랑이 신부와 함께 부모님에게 다가선다. 왼쪽 가슴을 뒤져 편지지를 꺼내든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신랑의 입이 열리는 순간, 예식장은 정적에 갇힌 듯하다.)

어릴 적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개구쟁이 꼬마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어른이 되고 이렇게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께는 너무나도 대단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기만 했습니다.

‘밥은 먹었니?’ ‘아픈 덴 없고?’ ‘요즘 많이 힘들지?’ (부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든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관심과 사랑이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천분의 일이나 갚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까마득하고 높고 깊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잘 됐을 때는 이 세상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자기 일보다 더 좋아해 주시고 제가 잘못됐을 때는 누구보다 슬퍼하시며 밤새도록 걱정에 밤을 지새우셨던 부모님… (두 분의 어깨가 흔들린다.)

당신의 아들이어서 행복하고, 당신의 아들이어서 자랑스럽고, 당신의 아들이어서 그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숨죽여 듣던 하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그동안 쑥스러움에 마음에만 담아두고 많이 해드리지 못했던 말을 지금 꼭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부모님이 일어선다. 아들을 껴안는다. 아버지의 포옹이 격하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들과 며느리를 껴안는다. 따사롭다.)

‘이런 걸 제대로 된 결혼식이라 하는 거 아녀?’ ‘오늘 진짜루 감동 먹었네.’ 복잡한 승강기 안에서 또 누군가 중얼거린다. ‘우리 집 자식 놈도 저런 편지 쓸 수 있을까?’ 그 말이 귀에 들렸을까? 내 앞에 있던 젊은이의 고개가 꺾인다.

편지는 꽃보다 향기롭다. 이 세상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가슴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가 있어서다. 편지는 삶의 고백이다. 언어는 살아있는 활어처럼 싱싱하다. 통조림이 아니다. 그래서 편지는 한 편의 서정시다. 아니 인문학의 정수다.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어서다. 편지 속에 담긴 온갖 에피소드에 가슴을 풀어 헤친다. 잃어버린 추억이 꿈결처럼 다가온다. 그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고 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가 된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 힐링이다.

 

왜 우체통을 빨갛게 칠했을까

 

가: 뚜주에서 아아 먹을까? (뚜레주르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을까?)

나: 롯리에서 SO는 어때? (롯데리아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어때?)

다: 개배고파. 맥날 가자. (난 너무 배고파. 맥도날드 가자.)

 

손 안에 스마트폰이 찾아들면서 일어난 언어 풍경이다.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는 라이팅writing 시대를 텍스팅texting 시대로 바꾸어 버렸다. 문명의 대이동이다. 생활양식이 바뀌었다. 언어는 급조되었다. 축약이 난무한다. 축약은 사고조차 냉동시켜 버린다. 말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만큼 생각도 가벼워진다. 카톡은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게임으로 변형되었다. 게임에는 그들만의 은어와 축약어, 나날이 진화하는 화려하고 다양한 이모티콘이 활개 친다.

거리의 인상이 바뀌었다. ‘365일의 산타’ 빨간 우체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음의 등불은 꺼지고 차가운 주검처럼 변해갔다. 우체통은 1993년 5만 7000개를 최고점으로 줄곧 줄면서 지금은 2만개를 밑돌고 있다. 3개월 동안 우편물이 하나도 없으면 그 우체통은 철거 대상이 된다고 한다. 초조하게 편지를 기다리는 우체통의 운명을 가수 김창완은 살아남아 있을 날짜를 목에 걸고 있는 ‘유기견’에 비유했다.

누가 우체통의 색을 빨갛게 칠했을까? ‘그리움이 심장의 핏빛을 닮아서….’ ‘아픈 사연을 실어 나르다 멍든 가슴으로 피어나….’ 아니다.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문재, ‘푸른 곰팡이’)

 

아, 빨간 우체통이 ‘레드카드’였다니. 맞다. ‘LTE급 빠름~ 빠름~’으로 더 바빠지고 있는 세상을 향한 심판이었다.

 

다시 편지를 쓰자

 

“한 없이 좋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안 보이던 눈곱이 보이고, 안 들리던 방귀소리가 들리고, 문제없었던 응석이 짜증스러워지고, 애교스러웠던 이기심이 분노의 주제가 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애를 써서 자신을 통찰하고 탐색하고, 자신의 야비함에 맞서 싸우고, 자신의 이기심을 미워하면서 분투하고 있는 너희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시간과 더불어 우리는 알게 되지. 내가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상대가 나를 별것 아니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나는 내가 별것 아닌 것이 화가 나지. 그래서 내가 별것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고집과 빈정거림과 침묵의 공격성으로…

하지만, 상대가 나를 '당신은 특별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 새 별것이 되지 않니?

그래서 역시 우리는 짝꿍에 의해서 내 존재가 입증되는,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거로구나. 사는 것은 참 행복한 것이로구나!” ―결혼한 딸과 사위에게 보낸 어느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부부치유를 위한 ‘행가래(행복-가정-미래) 세미나’에서 읽혔던 편지는 또 다시 마음의 지축을 흔든다. 옷깃을 여미게 된다. 더 무슨 말을 보태랴? 편지는 지혜의 왕관을 쓰고 찾아오는 구루가 된다. 편지 속에 아름다운 삶의 유산이 새겨진다. 이보다 더 진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편지를 쓰는 일을 ‘목숨의 한 조각을 떼어주는 행위’로 묘사했던 시인 이해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자식들에게 바치느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 밤늦도록/ 편지 한 장 쓰신다/ ‘바다 보아라’/ 받아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닥없는 바다이신/ 받침 없는 바다이신/

어머니 고개를 숙이고 밤늦도록/ 편지 한 장 보내신다/ ‘바다 보아라’/ 정말 바다가 보고 싶다. (천양희, ‘바다 보아라’)

 

그래, 편지를 쓰자. 아니 자식 놈들에게 바다를 보여주자.

바다는 두 얼굴을 지녔다. 바다는 육지의 꿈을 실어 나른다. 교역을 통해 무한 세계로 뻗어 나간다. 바다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상인은 살아남기 위해 이치를 터득한다. 세월의 이끼가 낀다. 재치다. 버텨 이기는 자에게는 만의 기쁨이 있다. 부富의 약속이다.

누군가 그랬다 하지 않은가. ‘용감한 자는 산이 아닌 바다로 간다’고.

바다의 힘찬 숨소리는 엄마의 심장소리를 닮았다. 질긴 생명력이다. 온갖 어류와 해초들이 유영한다. 먹거리의 성소聖所가 된다. 변화무쌍한 바다는 상식의 허를 찌른다. 고정된 틀을 허문다. 온갖 상상의 세계를 안긴다. 그렇게 해서 예술혼을 불태운다.

바다는 나의 눈물을 훔쳐 준다. 바닷물이 짠 것은 가슴 쥐어뜯던 쓰디쓴 엄마의 눈물이 흘러 넘쳐서다.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마음이 슬픈 자는 산이 아닌 바다를 찾는다.’ 거기 어머니母의 눈물水인 바다海가 있어서다.

 

“찬아, 준아!

바다 보아라.”

 

푸르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와 있다. CTK 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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