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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또 읽으십시오. 성령님께서 알려주실 때까지 그렇게 읽으십시오.”
박희천-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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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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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머리 앞에 일어서라첫 번째 이야기: 박희천 목사

‘고령 사회’를 향해 숨 가쁘게 치닫고 있는데 나이 드신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갈수록 내리닫고 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 우리 사회고 교회고, 존경할 만한 어르신이 없어서 그들을 존경하는 세대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젊은 세대들이 원로를 원로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애초에 없기 때문에 존경스런 원로가 안 보이는 것일까? 살아온 연륜만으로도 경청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원로들을 CTK가 앞으로 한 분 한 분 만날 계획이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32)

 

박희천 목사
1927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대동 출생.
서울 내수동교회를 담임하였고,
총신신대원에서 28년간 가르쳤다.

   
사진 김승범

가 목사가 된 것은 무슨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나가자마자 성경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을 더 알고 싶은데, 성경을 많이 아는 지름길이 목사가 되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저의 성경공부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저의 강해서 서문에 항상 쓰곤 하는 최원초 목사님이라는 분입니다. 최원초 목사님이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찾아가 만난 것이 저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47년 5월 최 목사님의 집회에 갔는데, 그때 빌립보서 강해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최 목사님이 빌립보서를 4000번, 요한계시록은 1만 번을 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최 목사님께서 절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네가 앞으로 목사가 될 생각이 있으면 성경 본문부터 많이 읽어라”였습니다. 저는 그때 본문이라는 말도 잘 몰랐습니다. 다만 최 목사님의 인격을 존중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1947년도 5월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69년간 성경 본문에 대해서는 남달리 투자를 해 온 것 같습니다. 그 바람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지요. 제가 그분을 못 만났더라면 아마 이날까지 허송세월했을 겁니다. 그 어른을 60대에 만났다면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스물한 살에 만났으니까 지금까지 69년 동안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와서 본문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최 목사님은 6.25 전쟁 때 순교하셨습니다. 제가 그분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전부터 우리 한국 교회에는 특수한 몇몇 분 아니고는 목회자들이 말씀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만나보진 못했지만, 이기선 목사님이 말씀에 깊이가 대단하셨나 봅니다. 그분의 영향을 입은 몇 사람이 있습니다. 이북에는 이기선 목사가 말씀에 깊었고, 남한에는 백영희 목사라는 놀라운 분이 계셨습니다. 고창 분인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최원초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들 외에는 잘 모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제일 강조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한국 교회 설교의 제일 큰 문제가 뭔고 하니 설교하는 분들이 설교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비결은 성경본문을 누가 많이 봤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에서 판가름이 난다. 한국 교회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제가 그분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설교학 교수님의 방송을 들었는데, 그분이 “설교 잘하는 비결”이라면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남의 설교집을 되도록 많이 읽어라.” 나는 그 말 듣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 교수에게 배우는 신학생들 큰 일 났구나! 우리 한국 교회가 설교 잘하는 비결을 모르고 엉뚱한 곳에 집중하고 있구나!’

백영희 목사님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입니다. 서당은 다녔겠지요.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를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그분은 세계적인 설교자입니다. 그분이 뭘 했느냐면, 본문만 팠습니다. 성경 본문에만 집중했습니다. 저도 나이가 있으니 한국 교회 역사를 좀 알지요. 과거부터 본문 쪼아대는 것이 한국 교회 강단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평양신학교가 책임져야 합니다. 제가 평양신학교를 2년 다니다가 피난 내려 왔는데, 평양신학교가 본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평양신학에서 나왔습니다. 이 학교의 성경신학 해석이 알레고리입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지만 다행히 고려신학교에 가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고려신학교 시절 박윤선 목사님 밑에서 저의 설교 스타일을 180도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한국 교회 설교가 거의 알레고리입니다. 설교라는 것이 우선 본문을 바로 해석해 놓고 봐야하는 것 아닙니까? 노래 부르는 사람이 악보에 맞춰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선 평양신학의 알레고리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평양신학교 시절 경건회 시간에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 엘리사의 제자들이 나오는 본문에 제목은 ‘산으로 들어가자’였습니다. 이 본문으로 어떻게 설교를 했느냐 하면 이렇습니다. “구약의 산에 들어가자. 아름드리 소나무가 929개가 있다. 우리 믿음의 집을 짓자. 신약의 산에 들어가자. 아름드리 소나무가 260개가 있다. 이걸 찍어다가 믿음의 집을 짓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의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봅시다. 이 본문을 가지고 “얕은 데는 발이 땅에 다니까 발을 의지하면 산다. 깊은 데는 발이 땅에 안다니까 발을 의지하면 못산다.”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합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모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더군다나 성경해석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의 설교였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현상이 한국 교회에 퍼져 있습니다. 시험에 대해서는 “돌의 생활”이라고 말하더군요. 돌은 남의 이마를 깨는 생활이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했고 남편 우리아를 죽였다, 이것이 돌의 생활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4장이 인생의 계단을 말한다고 합디다. 이게 말이 됩니까?

고려신학교에 와서 박윤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싱거웠습니다. 그런데 한두 달 듣고 보니 박윤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본문에 대해서는 도사가 되는 거예요. 이게 진짜로구나! 그래서 제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설교자는 본문의 앵무새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이 ‘가나다’라 했으면 ‘가나다’라 하고, ABC 했으면 ABC 하라! 본문대로 하라. 제목 설교를 하더라도 본문대로 하라! 이게 저의 ‘주의’입니다.

 

“설교자는 본문의

앵무새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본문을 자꾸 보자는 주의입니다. 우리 성경은 내가 몇 시간을 보건 백날을 보건 성령님께서 은혜 주셔서 내 영혼의 눈을 밝혀주시고 까맣게 인쇄된 글자 속의 숨은 뜻을 보여주셔야만 깨달을 수가 있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읽는 중에 성령님께서 은혜 주셔서 수백 번 읽었던 까만 글자 속에 숨어있는 성령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억지로 뜯어내면 성경해석에 내가 주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내 편견대로 하기가 쉽지요. 너무 바빠서 설교준비가 힘들다고들 하는데, 아무리 바빠도 본문을 안 보면 설교재료는 안 나옵니다. 우리 목사들은 아무리 바빠도 기본적으로 성경본문 읽는 시간은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 7:38에서 모세에 대해 뭐라고 했습니까? 모세가 40년 목회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받아서 설교하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무슨 밑천으로 40년간 설교를 했겠습니까? 모세의 유일한 밑천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법궤 앞에 가서 엎드릴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것 없이는 모세의 밑천은 끊어집니다. 설교의 밑천을 다른 데서 얻을 수는 없지요. 본문 안 보면 밑천이 없지요.

제가 신학생들한테 이런 얘길 합니다. ‘그림 속의 호랑이를 본 사람은 감격이 있겠는가? 동물원에 가서 직접 본 호랑이와 그림 속의 호랑이는 분명 다를 거다. 오늘 우리 설교는 그림 속의 호랑이, 동물원의 호랑이다. 내가 성경 보다가 성령께서 보여주셔서 하는 설교는 백두산에서 호랑이를 일대일로 맞닥뜨린 것과 같다. 나부터 감격스러워한다. 우리 설교는 백두산에서 호랑이 만난 것과 같이 성경본문에서 만난 설교여야 한다.’

내수동교회가 지역이 좋습니까, 시설이 좋습니까, 유명인사가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건 할 수 없고 내가 설교 하나만은 책임을 져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솔로몬의 신하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당신의 신하들은 복되군요.” ‘설교 시간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려주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시편 말씀에 주의 궁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의 천 날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문학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을 ‘큰 날’이라고 했어요. 큰 날이라고 25시간입니까? 아니지요. 안식일이 큰 날이라는 것은 다른 날보다 질적으로 크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궁전에서 은혜 받고 능력 받는 것이 그렇지 못한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영적으로 값있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을 본 순간이 다른 곳에서의 몇 날보다 낫지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받은 그 시간이 다른 몇 날보다 낫지요. ‘내수동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주일이 다른 곳의 천 날보다 질적으로 나은 하루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벌써 오래 전 일이네요. 1978년도 무렵 영동 보은교회로부터 설교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그곳 지리를 전혀 몰라서 그 교회 어느 집사님께 가는 길을 묻다가 그분의 직업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인쇄업을 하다 보니 100개 교회 정도의 주보를 맡아 인쇄한다고. 1970년도에는 각 교회에서 주보를 만들지 않고 인쇄소에 맡겨 식자로 할 때입니다. 대개 금요일 아침에 직원이 교회에서 보내 온 주보를 받아 와야 작업을 시작한다고 합디다. 그 때 들어오는 주보 원고를 보면 다른 건 다 있는데 꼭 설교 본문과 제목이 공란으로 온다는 겁니다. 인쇄를 해야 하는 데 설교 본문과 제목 때문에 인쇄를 못하고 대기를 하고 있게 된다고 하더군요. 결국 토요일 밤 12시가 되어서야 설교 부분이 다 들어온답디다. 그때부터 밤새도록 인쇄를 해서 주일 새벽에 배달해 주었답니다. 비단 그 인쇄소의 교회들만 그랬을까요? 그때 그런 현실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설교 현실이구나!’ 주일날 강단에 서서 ‘주여’ 외치지만, 실상은 이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주보를 월요일에 넘겨줬습니다. 우리 주보에는 설교 전문의 원고가 나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설교가 늦어지는 현상을 막는 방법 하나 알려주겠습니다. ‘본문을 죽어라 봐라.’ 이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런 사단이 결코 나지 않습니다. 설교 주제란 것이 하루 종일 성경과 씨름해도 안 보여주시면 별 수 없는 겁니다. 한번이라도 성령님께서 보여주셔야 내가 사는 겁니다. 우스갯말로, 공처가는 옛날 말이라나요? 요새는 뭐라더라, “발처가” “슬처가”라고 합디다. 제가 성경 보는 그 시간에는 공처가, 발처가, 슬처가가 다 됩니다. 주님이 안 보여주시면 꼼짝 못합니다. 수백 번 지나가던 까만 글자인데 어느 날 숨은 뜻을 보여주시니까요. 성령님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CTK 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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