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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둡고 두려운 종말론은 가라”
정성욱-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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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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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행복한 종말론
정성욱 지음
눈출판사 펴냄

 

 



모든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자가 될 수 있다고 권면하는(▶2010년 7월호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학자입니다”) 신학 저서를 꾸준히 내고 있는 덴버신학교 정성욱 교수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그가 한국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론과 요한계시록을 이야기한다. 책 제목이 그렇듯, 그의 종말론은 우리로 하여금 밝고 행복한 ‘그날’을 기다리게 만든다. 인터뷰 김은홍

     

밝고 행복한 종말론에서 교수님은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중심으로 4가지 종말론을 통합하자고 제한한다. 나머지 세 가지 중에서 문제의 소지가 가장 많은 것이 어떤 것인가?

주장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게 있다. 후천년설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황금시대가 온다, 그 시대가 천년왕국이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한다. 이런 주장인데, 성경적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나머지 둘, 무천년주의와 세대주의에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일부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세대주의와는 ‘전천년’이라는 점에서, 무천년주의와는 ‘교회의 환난 통과’라는 점에서 각각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공감한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주의에서 볼 때, 세대주의의 ‘유대인 우월주의’나 ‘휴거’는 받아들일 수 없다. 세대주의는 ‘환난 통과’가 아니라 ‘환난 전에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는 것’이다. 무천년주의는 마지막에 예수님이 오셔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분명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면이 있다. 이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네 가지 주장과 관련하여 미국 교회는 매우 다양한 논쟁을 해왔다. 그 논쟁 과정을 거치면서 21세기 2016년 현재 미국 교회는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우세하다. 미국의 신학자와 목회자의 70퍼센트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25퍼센트 정도는 세대주의다.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는 5퍼센트 정도이니,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 기독교 초기에는 세대주의가 먼저 들어 왔다. 이 땅에 온 첫 선교사들이 세대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 마펫, 아펜젤러, 언더우드, 모두 세대주의에 속했다. 그리고 길선주 목사가 이 선교사들의 세대주의를 신실하게 이어 받았다. 세대주의가 깔린 토양에 박형룡과 박윤선이 역사적 전천년설을 심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에서는 세대주의와 역사적 전천년설, 두 관점이 비슷했는데, 1980년대 이후 유학을 갔던 총신과 합신 교수들의 다수가 무천년주의를 수용했다. 신학 교수들은 무천년주의로 갔지만, 목회자들은 여전히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많이 남아 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세 가지 입장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는 듯하다. 후천년주의는 거의 없다고 본다.

 

역사적 전천년주의 입장에서는 도발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는 별개의 종말론이라기보다는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는 간극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는 성경을 구조화 하는 원리가 다르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전통적으로 성경을 언약신학으로 푼다. 성경을 해석할 때, 언약사적으로 보느냐 세대적으로 보느냐의 관점에서 둘은 완전히 다르다.

언약사는 개혁신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등 언약사적으로 본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에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역사 섭리가 통합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이 언약사적 관점이라면, 세대주의적 관점은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 섭리와 이방인을 향한 역사 섭리를 분리시킨다. 하나님 역사의 주류는 이스라엘이고, 이방인 중심의 교회가 삽입되었다고 세대주의는 본다. 세대주의는 교회가 중심이 아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교회가 중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포함한 교회를 중심으로 섭리하신다. 이것이 성경의 언약사적 흐름이다. 언약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면에서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오히려 무천년주의와 같다. 무천년주의의 개혁주의 신학 라인의 언약사적 관점과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언약사적 관점은 사실은 공명한다.

 

둘의 신학적 단절성과는 별개로, 둘 사이에 현상적 또는 표면적 유사성은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라면 유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주의의 핵심은 ‘유대인 우월주의’와 ‘환난 전 휴거’다. 특히 그들의 ‘환난 전 휴거’에는 고난의 신학이 없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휴거하면 그만이다. 교회가 수난과 고난을 당한다는 인식이 약하다. 또한 세대주의의 ‘유대교 우월주의’ 속성 때문에, 이스라엘 회복운동이나 신사도주의 같은 건전하지 않은 흐름에 세대주의자들은 쉽게 끌려갈 수 있다.

 

‘고난의 신학이 없다. 교회의 수난 당함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세대주의의 이와 같은 속성은 한국의 기복적인 신앙과 친화성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이스라엘 관’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정확히 봤다. 유대교 중심의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유대인들에게 뭐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시오니즘이다. 이들은 기독교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이다. 이 운동을 미국에서는 세대주의자들이 하고 있다. 그들은 친이스라엘, 극우, 근본주의자들이다.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자”,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 이런 표방은 그럴듯하게 기독교적이다. 그러나 속을 보면 완전히 정치적이다. 이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숭배, 곧 우상숭배로 나아간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한국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도 현실의 이스라엘 국가와 구약의 이스라엘을 혼동하거나 또는 오도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믿음의 국가’다. 종교적 국가였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세속 국가다. 현 이스라엘은 복음전도를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나라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 상황을 추적하는 국제 선교단체 순교자의 소리Voice of Martyrs는 이스라엘을 기독교에 적대적인 국가로 지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교회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면, 팔레스타인은 뭔가? 그들은 다 죽어야 되는가? 팔레스타인은 다 죽여야 된다는 이스라엘의 정책에 협력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가? 그럴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 이스라엘 국가를 위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것인 양 동일시하고,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 더불어 설교자들이 가장 조심스러워하는 성경이다. 그 만큼 자신이 없다고 할까? 「밝고 행복한 종말론」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자세와 틀을 잡아주어 계시록을 건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을 낸 취지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편견, ‘어렵다’ ‘두렵다’는 고정관념을 깨자는 것이다.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한계시록은 어렵지 않다. 결코 두렵지도 않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서보다 쉽다. 이것이 내 주장이다. 우리에게 두렵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면, 바벨론에 대한 재앙일 것이다. 나는 요한계시록을 ‘출바벨론기’라고 부른다. 출바벨론기로서 요한계시록은 출애굽기와 똑같은 구도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의 포로 된 교회가 ‘출바벨론’ 하여 새 하늘 새 땅으로 가는 것이다. 둘의 구도가 똑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머무는 동안 그곳에 열 가지 재앙이 떨어진다. 바벨론에 교회가 머물러 있을 때 거기에도 재앙이 임한다. 중요한 것은,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 중 앞의 세 가지 재앙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일곱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떨어지지 않는다. 애굽인들에게만 떨어진다. 출바벨론기에서도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이 이어진다. 이 가운데 ‘일곱 인’에 속한 몇 가지만 교회에 해당될 것이다. 그 이후의 재앙은 모두 바벨론에 해당된다. 교회는 대재앙기, 대환란기를 통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 속에서 교회를 철저히 보호하신다. 교회를 보호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환란기를 통과해 가는 교회에게 불편함이 있고 고난이 있다. 분명히 순교하는 사람들이 있고 핍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처럼 교회도 마지막을 통과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이와 같은 구도만 이해하면 요한계시록을 굉장히 간결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요한계시록에 대한 개별 해석에서 세대주의적 해석을 수용하여 신자들이 변별력을 잃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나 역시 역사적 전천년주의 입장에 있지만, 계시록에 대한 과잉 해석이나 끼워 맞추기 식의 해석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세대주의적 이스라엘 관이나 이스라엘 회복운동과 관련하여, “메시아닉 주”Messianic Jews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메시아닉 주’는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인데, 일단 좋은 흐름이라고 본다. ‘메시아닉 주’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세대주의자가 있을 수 있고, 역사적 전천년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의의는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점점 예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징조라는 점이다. 육신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전도는 이스라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특혜, 최고의 선물이다. 이스라엘 국가를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 즉 참 이스라엘이 되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지난 7월 25일, 레프트 비하인드의 작가 팀 라헤이가 세상을 떠났다. 이참에 ‘휴거’에 대해서 한 번 더 강조해 달라. 기독교 문화가 희박한 한국에서도 ‘휴거’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는 말이다.

‘환란 전 휴거’ 이론을 나는 마귀의 작품이라고 본다. 이것이 종말론에 엄청난 혼돈을 가져왔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가? 그런데 ‘환란 전 휴거’ 주장이 그 영광을 회피하게 만들었다. 경건한 생활을 무시하고 신앙 방종주의로 흐르게 만들었다. ‘환란 전 휴거’ 이론은 건강하고 행복한 종말론적 신앙을 좀먹게 하는 것이다. CTK 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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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미국 응딩이 뒤에 숨어서..
(2016-08-26 09: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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