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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야 할 정체성, 목회자-신학자전문 신학서적을 읽어야한다. 설교 횟수를 조정해야 한다. 공공의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이풍인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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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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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란 무엇인가
케빈 벤후저, 오언 스트래헌 지음
포이에마 펴냄


 책의 원제―The Pastor as Public Theologian―를 직역하면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다. 이 책에서 케빈 밴후저와 오언 스트래헌은 목회자의 정체성에 대해 살핀다. 과연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고 목회자의 주된 역할은 무엇인가? 두 저자는 먼저 오늘날 목회자의 상image이 교회사의 여러 시대에 등장하는 목회자의 주된 모습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교회 역사에서는 목회자와 신학자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자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밴후저와 스트래헌은 이런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목회자의 공공신학자로서의 이해와 역할이 중요하다고 피력한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성서신학과 역사신학적인 관점에서, 2부에서는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적인 관점에서 목회직을 살핀다. 1부는 다시 두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1장은 성경에서 말하는 목회직에 대해 살핀다. 오언 스트래헌은 목회직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제사장, 예언자, 그리고 왕의 직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백성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되었던 제사장처럼 목회자는 성별된 자여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객관적인 계시를 선포했던 예언자들처럼 목회자들에게도 말씀선포가 중요하다. 또한 신적인 지혜의 화신인 왕처럼 목회자도 신적인 지혜가 필요한 자들이다. 이와 같은 구약시대의 제사장, 예언자, 왕의 직분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는 제사장, 예언자 그리고 왕의 역할을 감당한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세 직분의 정신과 역할은 목회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2장에서는 목회직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 다룬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단이나 박해의 위협 앞에서 신학자와 교사로서의 목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중세시대 스콜라주의와 수도원 운동을 통해 신학자와 비신학자의 구분이 생겨나게 되었고, 신학은 신학자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서 목회자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신학 작업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사상과 전통은 청교도들과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로 이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 대중주의와 실용주의 대두는 목회자가 신학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2부도 2개의 장으로 이루어지는데, 3장에서는 목회자-신학자의 목적에 대해 다룬다. 밴후저는 목회자-신학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핵심진리를 선포하는 자로 현실 목회에서 타협이 아닌 직설법적인 선포가 중요함을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해의 목회인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문화이해를 위해 세상을 읽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알기 위해 소설을 읽을 것을 밴후저는 권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놀라운 구원과 생명을 성도들에게 현재의 삶에서 누리라고 권면하는 명령법적 신학이 중요하다. 지혜를 얻고, 사랑을 더하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실천을 요구하는 생명의 목회가 필요함을 이 책은 잘 지적하고 있다. 4장은 하나님의 집의 장인들로서의 목회자-신학자의 활동에 대해 다룬다. 목회자는 제자 삼고 하나님의 집을 세우라는 위임명령을 받은 자들로 그린다. 또한 목회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놀라운 구원과 은혜를 상담, 심방, 그리고 설교를 통해 전달해야 하는 전도자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가르치는 교리문답 교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기리는 예전 집례자,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논증하는 변증가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각 장의 내용에 대해 12명의 목회자-신학자들이 목회적 관점에서 보완하는 글을 적고 있다. 자칫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으로 끝날 수도 있는―물론 이 책에서는 그런 식으로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한계를 극복하고자 실천적인 전망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목회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자들로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즐거웠던 것은 나의 옥스퍼드 대학 동문이자 친구인 짐 샘라의 글을 이 책에서 접한 것이다. 미국의 대형교회 중의 하나인 갈보리 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를 잘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글로서 만나니 마치 그가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좋았다. 학부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이후에 신약학을 전공한 목회자-신학자답게 ‘기술의 신학’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다른 열 한 명의 목회자-신학자들도 이 책의 편집의도에 맞게 목회적 관점에서 주어진 주제에 잘 맞는 글을 싣고 있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의 서론을 꼼꼼히 읽기를 권한다. 두 번 이상 읽기를 권한다. 목회자는 신학자요 동시에 공적 인물임을 서론에서 잘 밝히고 있다. 또한 결론에서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에 관해서 55개 항으로 앞에서 논의했던 핵심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라는 정체성은 내게도 오랜 기간 동안 관심을 가졌던 주제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현재 한 지역교회의 담임목사이며 동시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인 나의 현재 상황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세계 여러 나라의 목회자에게서 신학자로서의 모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목회자의 주된 일이 상담자, 경영자, 기획연출가, 엔터테이너, 미디어 전문가의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은 목회자의 여러 일들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와 같은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서양 교육시스템에서 최초의 전문대학원들professional schools은 세 분야에 국한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학, 법학, 의학이었다. 법조인이나 의사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도 전문가로 간주되었다. 목회자의 전문성은 어디에 기반을 두는 것일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통한 성경원문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많은 시기에 목회자는 그 마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일반 지식적인 면에서 목회자가 성도보다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목회자-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첫째, 목회자 자신이 서 있는 신학전통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신학서적을 읽기를 권한다.

의사가 일간신문이나 주간지에 실린 의학상식을 다루는 글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가 과연 전문가가 될 수 있겠는가? 의사의 전문성은 체계적으로 의학서적을 공부함으로써 얻게 된 전문적인 지식과 현장경험에서 나온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어떤가? 가벼운 신앙서적이나 간증서적이 목회자의 독서목록의 대부분을 차지해서야 되겠는가? 가벼운 신앙서적은 성도들로 읽게 하고 목회자들은 신학적인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전문적인 신학서적을 읽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서 있는 신학적인 전통을 아는 데 필요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목회자는 분명한 신학적인 틀을 가지고, 그것으로부터 설교, 상담, 예전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둘째, 목회자가 한 주간에 하는 설교의 횟수를 조정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목회자들은 매우 분주하게 산다. 일주일에 설교도 여러 번 한다.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철야예배, 주일오전예배와 오후예배, 심방과 이사예배 설교 등등 한 주일에 열 번 이상의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물론 교회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회자들에게 설교는 절대로 다다익선이 아니다. 설교 한 편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의 경우에는 주일 오전 예배와 수요일 저녁기도회 때 설교한다. 주일 오전 예배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데 스물다섯 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수요일 저녁기도회 설교를 위해서는 여덟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그 외의 경우는 교역자들이 잘 준비하여 설교할 수 있도록 정한다. 설교 횟수의 조정을 위해서는 성도들의 이해도 중요한데, 목회자가 일주일에 여러 번의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내려놓고 목회자가 깊이 있는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자는 설익은 밥을 지을 수밖에 없다.

셋째, 목회자는 공공의 신학자로서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허락하신 놀라운 생명과 구원을 이 땅의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회자 혼자서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교회에만 헌신하는 자로 세우기보다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설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우고 격려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좋은 성도지만, 정작 삶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되지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말로만 ‘보내는 교회’가 아니라 실제로 ‘성도들을 각자의 영역으로 보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교회의 주중 모임을 과감하게 줄일 필요가 있다. 교회 안의 모임에 에너지를 다 쏟으면서 어떻게 자기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밴후저의 말처럼 “교회는 공적 광장 안에 있는 공적 첨탑”(48쪽)이 되고, 성도 각자가 첨병이 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CTK 2016:10

이풍인 목사, 개포동교회의 담임목사이며 총신대학교 신학교 교수인 ‘목회자-신학자’이다.

[게시:20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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