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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있던 아메리카이번 선거가 나 같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소도시와 농촌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티쉬 해리슨 워렌  |  Tish Harrison War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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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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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프의 상승세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내 레이더 밖에 상당수의 미국인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비경선 초에 나온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전체 투표자들보다 더 가난하고, 백인이고, 저학력자이며, 농촌이나 소도시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계층 갈등과 도시/농촌 분리 현상이 이렇게 중첩된다는 것은 지금 미국에 심각한 계층 및 문화적 분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인기를 보면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도시와 근교에 사람들이 몰리면서―인구의 80퍼센트가 현재 이곳에 거주한다―우리의 교회개척, 빈민구호, 그리고 아웃리치 사역도 도시와 근교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농촌 마을이나 소도시는 우리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얼굴 없는 장소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트럼프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지은 죄를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기자가 “이 나라에서 가장 넓고 열려 있는 곳”이라고 부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백인들의 고통과 좌절에 나는 귀를 막고 있었고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소읍들과 농촌 마을들이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이 지금 미국의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1990년대부터

복음주의자들은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엘리트 중심지들에 “전략적” 교회 개척을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팀 켈러 같은 목회자의 도움으로 우리는 도시가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 같은 학자들은 소규모 엘리트 네트워크들의 문화적 영향력을 강조했다. 교회들은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서 도시와 예술과 지성을 끌어안았다. 교회들은 복음을 기독교 후기 식자들에게 전하는 데 전념했다. 교회들은 리디머 장로교회(맨해튼)의 ‘시티 투 시티’City to City와 남침례교 북미선교부의 ‘도시들을 보내라’Send Cities 프로젝트 같은 교회개척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이와 동시에 복음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경제정의와 인종정의의 성경적 비전이 재발견되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 가운데 다수―로버트 루프톤에서 셰인 클레어본까지―가 도시 주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친 백인의 도심 탈출과 도시 빈곤 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들은 도심 지역에 집중했다.

이 두 가지 강력한 흐름이 합쳐지면서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복음주의 운동은 결정적으로 도시중심, 도시감성의 운동이 되었다. 구도심의 땅값 상승효과는 문화 엘리트들과 도시빈민들이 동시에 이곳을 점령하게 만들었다. 이런 구질구질한 도심에 거주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교육하는 엘리트들이 세련되면서도 토박이 냄새가 나는 레스토랑에 무리지어 앉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소읍과 농촌에서 노동자 계층은 일자리를 얻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흐름을 쫓아가려고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뉴스 웹사이트 폭스에 쓴 “미국 자유주의의 잘난 채 하는 스타일”에서 에머트 레진Emmett Rensin은 어떻게 정치적 좌파들이 백인 노동자 계급을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무시하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가난한 백인들은―그들은 한때 민주당의 핵심기반이었다―“교육 수준이 높고, 해안가 주택에 거주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공을 쏟는 민주당에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되었다. 1948년에는 육체노동자의 66퍼센트와 농민의 60퍼센트가 민주당에 표를 주었다. 그런데 2012년에 이르면 민주당은 백인 노동자 계급 유권자들에게서 겨우 2퍼센트 포인트만 공화당보다 득을 볼 뿐이었다.

레진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한때 노동조합과 소규모 잡지들로부터 살을 찌웠던 운동이 대학교 대형 출판사로, 이 나라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들과 엘리트 집단들로 이동했다.” 대도시 문화는 백인 노동자 계급을 무식하고 인종주의적이고 거칠고 후진적이라며 무시했다. 오늘날처럼 덮어놓고 수용하고 포용하자는 사회에서조차도 이런 부정적인 선입관이 넘쳐나는 것이다.

백색 쓰레기통: 400년간 이야기 되지 않은 미국의 계급 역사 White Trash에서 역사학자 넨시 이센버그는 덕 다이너스티Duck Dynasty[리얼리티 드라마]의 로버트슨 형제나 사라 페일린이 어떻게 “붉은 목[검붉게 그을린 육체노동자를 이르는 말] 스타일” 대중주의에 편승하게 되었는지 지적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뿌리 깊은 역사적 계급 분열을 조장한다. 이센버그는 노동계급 백인들의 복잡하고 불만 가득한 정체성을 묘사한 한 언론인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이 스스로를 붉은 목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부지런하고 유쾌하며 독립심이 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이 붉은 목이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시끄럽고, 추잡하고, 편협하고 옹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에 거주하는 복음주의자들―정치적 스펙트럼의 어디에 있든지―이, 레진이 백인 노동자 빈곤층을 대하면서 갖는 자부심이라고 말한 태도를 무심코 따라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도시 생활에 푹 빠져 있고 질 좋은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쓰는 속물근성이 있는 우리가 이 도시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잊은 것은 아닌지.

 

2015년에

좌파들이 켄터키의 킴 데이비스 목사를 비롯하여 도시로 몰려드는 엘리트 복음주의자들을 조롱하고 있을 때, 농촌의 백인 노동자 계급은 전례 없는 사회적 소외에 빠져들고 있었다.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아그누스 데이톤은 최근에 지난 15년 동안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들이 이른 나이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모든 인구통계 지표에서는 기대수명이 상승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자살, 약물남용, 알코올 남용과 관련 있는 간질환이 이 비극의 원흉이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그들의 소도시가 오랫동안 기대어 온 제조업과 건설업과 광업이 붕괴하면서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 지역과 도시 지역의 대학교육 격차가 상승하고 있으며, 학위가 없는 사람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힘든 시대가 되었다. 이 나라 전역에서 농촌 지역은 도시와 근교 지역보다 높은 실업률과 빈곤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백인 노동자 계급에서 지역사회 불안정성과 쇠퇴를 보여주는 모든 통계 수치들이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오피오이드[아편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합성 마취제] 사용이 만연해 있고, 중추신경자극제와 헤로인이 퍼져있다. 오스틴가족문화연구소 자료를 보면 가난한 농촌 백인의 거의 60퍼센트와 가난한 농촌 흑인의 85퍼센트가 혼외 출산을 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처음으로 생의 황금기, 60세 이전에 죽는 가난한 백인 여성들이 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기대수명을 연장시킨 의학 발전이 “오피오이드 남용, 과도한 음주, 흡연, 기타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에 현재 압도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암담한 현실 때문에 지역사회가 멍들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백인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는 카운티들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의 조사를 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종종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부나 사회의 방향에 대한 자기네 목소리를 대변해 줄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 뒤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나는 여러분을 압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여러분은 중요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에게 그들이 왜 끌리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더 많은 디디어 발표들이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했지만, 교회가 이 모든 것에서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아틀란틱스〉의 기사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의 외로운 빈곤”에 신앙이 이렇게 언급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이 그들이 끊임없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에 거의 또는 전혀 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기념비적인 책 붕괴Coming Apart에서 찰스 머레이는 미국 소득자의 상위 20퍼센트와 비교해서 하위 30퍼센트는 훨씬 더 덜 종교적이라고 지적한다. 역사학자 토마스 키드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긴다고 썼다. “그들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수가 기능적으로는 세속적이지만, 즉 결코 교회에 다니지 않고, 기독교 신앙의 퇴화된 흔적만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최근 오피니언 칼럼에서 J .D. 밴스Vance는 험난한 노동계급 유년기 동안에 기독교가 어떻게 자신을 지탱해주었는지 평가했다. 하지만, 가난한 백인들의 교회 출석율의 급전직하와 함께 “신앙은 비제도화되었다. 그들은 페이스북에서 대형교회의 방송을 보거나 기도 모임에 참석할 수 있지만, 대체로 주일날 예배당에 앉아 있는 것은 피한다.”

 

물론

기독교 정체성이 소도시 미국에서는 여전히 대들보로 남아 있다. 농촌의 주유소에서 차를 세운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독교 문화의 뚜렷한 표시들을 보게 된다. 과자 봉지들과 축구 용품들 사이에 있는 티셔츠에 적혀 있는 “하나님은 미국을 복 주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같은 문구들. 그러나 교회들은 어떻게 소도시와 농촌 마을의 사회적 위기에 응답할 것인가?

조엘 살라틴과 웬델 베리 같은 작가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소도시들에서 “두뇌 고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공교육의 집단적 결핍과 교회 안에서는 교리적으로 뿌리 깊은 교육의 결핍이다. 밴스는 가난한 백인들 가운데서 복음주의가 엄격한 신학적 가르침과 영성형성에 대한 초점을 대부분 상실했다고 썼다. 문화전쟁 설교와 종말론에 경도되면서 말이다.

내 친구(데이브라고 부르겠다)가 북동부 대도시를 떠나 남부 소도시의 중심가에 교회를 개척했다. 왜 그렇게 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한다. “여기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해서.” 데이브의 교회의 일부 가족들은 이곳까지 한 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온다. 그들이 그에게 말한다. “여기처럼 확실한 가르침이 있는 교회를 이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농촌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데이브도 자신에게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교회 안에서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에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그가 내게 말했다. “솔직히 여자친구와 자는 도시 대학생들과 함께 있는 게 우리 교회의 나이 많은 남자 성도들이 “등짝 젖은 놈들”wetback[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 하는 멕시코인들을 이르는 비속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맘이 편하다네.” 그는 지금도 회중 앞에서 어떻게 회개하라고 말해야 할지 그 방법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친구는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의 죄가 문화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농촌에서 목회하는 또 다른 목사는, 자질이 뛰어나고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열정이 넘치는 목회자들에게 “죽어가는 마을로 가라”고 확신을 주기란 매우 힘들다고 내게 말했다. 교회개척 박람회들이 뉴욕에서 LA, 휴스턴까지 도시 개척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을 때, 데이브 같은 개척자들은 제도적 지원의 결핍을 느꼈다. 데이브의 몇몇 동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곳으로 이주하겠다는 데이브의 결정을 듣고는 그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비록 그는 도시 교회 개척이라는 새로운 초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지만, 복음은 교회들에게 “비전략적인” 지역들을 찾아 나서라고도 명령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의 백인들이 이른 나이에 죽은 젊은이들의 무덤을 보고 있는 이 때, 마약과 자살과 쇄락의 무게에 짓눌려 그들의 마을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의 역사를 선포하며 우리를 이끌 그런 교회이다. 소도시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들은 한 교회가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크다. 그러나 부유한 도시 및 근교 교회들, 교회 네트워크들, 그리고 교단들은 농촌의 목소리들을 잘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비전략적” 사역을 이 땅에서 행하신 분을 구주로 섬긴다. 그분은 잊힌 사람들, 절망한 사람들,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다. 예수님은 시골뜨기셨다. 비웃음거리 시시한 동네 출신이셨다. 미국의 수많은 나사렛들이 복된 소식을 갈망하고 있다.

젠과 토니 홀름스 큐란은 밴쿠버 리젠트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미시건 오션 카운티에 있는 한 교회의 공동 목사이다. 오션 카운티는 미시건 주에서 가장 가난한 카운티에 속한다. “우리도 도시에서 살 거라고 기대했지요.” 젠이 말했다. “거기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긍휼의 마음과 정의로운 지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트레일러 주차장과 가난한 백인들에 대한 편견의 소리를 듣게 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젠과 토니의 교회 ‘뉴 호프 커뮤니티’는 “인간관계에서도 경제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 되고자 한다. 농촌의 노동자 계급 사람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편히 느낄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이 교회 교인들은 정신병과 중독, 트라우마와 남용, 그리고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사는 그런 가난을 매일 목격하고 있다. 성경공부 커리큘럼이나 복사 비용을 감당하는 것조차 버거우면서도 뉴 호프는 170가정을 먹이는 급식소를 매달 열기 시작했다.

“이곳은 조밀한 동네입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그래서 다양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습니다.” 젠이 말한다.

젠과 그녀의 남편은 동네 식당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녀는 회중에게서 은혜를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을 더 잘 압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배우게 된다: 비록 나는 지금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지만, #네버트럼프[‘트럼트는 절대 안 된다’는 해시태그]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공인으로서 트럼프는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트럼프가 백인 노동자 계급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이 찡그려진다. 가난하고 덜 배운 백인들의 고통과 분노와 결핍에는 주의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그저 아연실색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위선자들일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위선자였다.

나의 멘토가 자주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첫 번째 길은 그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계급과 문화적 차이점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첫 번째 직관이 정치적 신념 이면에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맘이 상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비이성적인 분노나 잘못된 애국심이라고 여겼을 것 이면에 있는 두려움들을 보기 위해서,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자부심부터 회개해야 했다.

도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인종적 소수자들을 위한 정의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나에게는 외진 농촌의 지평에서 점점 커가고 있는 심각한 결핍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지만, 나 같은 도시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기도로, 금전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 도시 교회들은 농촌의 교회들과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 기업가들은 블루칼라 사업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상담전문가들과 의료전문가들은 저비용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을 제대로 해 나가려면 우리는 먼저 너무나 빈번하게 잊힌 지역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고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겸손을 배워야 한다.

비록 전략적 개척과 인구학적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교회로서 우리의 소명은 문화적 영향력이라는 어떤 원대한 전략이 아니라 인간적인 규모의 진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해서.” 데이브의 확신처럼 그렇게. CT
 

티쉬 해리슨 워렌 북미성공회ACNA 사제이며 기독학생회InterVasity의 Women in the Academy & Professions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예전Liturgy of the Ordinary: Sacred Practices in Every Life(IVP, 2016년 12월 출간 예정)의 저자이다.

Tish Harrison Warren, “The America I Forgot” CT 2016:9; CTK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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