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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궤적을 좇아서교회가 사회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는 교회에 소망을 두고 있다.
리처드 클락-지미 카터  |  Richard Clark-Jimmy Ca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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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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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시작된 뉴 뱁티스트 커버넌트New Baptist Covenant 대회가 올 가을에도 열릴 것이다. 90대 후반의 카터 대통령이 창설한 뉴 뱁티스트 커버넌트는 그의 가치관, 즉 겸손과 인종화해와 사회정의를 위한 영적 헌신의 뚜렷한 상징이다.
인종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해진 지금 카터 대통령은 남부에서 시작된 인권운동에 대해, 또 인종차별주의에 맞서기 위해 최근 어떠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 1960년대보다 왜 오늘의 인종갈등이 더 심각해졌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연합뉴스

인종화해에 열정을 품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저는 플레인스Plains에서 서쪽으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외진 시골 마을 아처리에서 자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곳 최고의 교회는 성 마가 아프리카감리감독교회St. Mark’s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지요.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최고의 시민은 북부 아프리카감리감독교회 5곳의 감독이었던 윌리엄 데커 존슨William Decker Johnson이었습니다. 그분이 여행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섬터 카운티에서는 가장 큰 뉴스거리였답니다. 존슨 목사가 주말 동안 집에 머물 것이라는 소식이 카운티 신문의 일면 기사로 실릴 정도였지요.
부모님과 누이 둘, 그리고 저는 성 마가교회의 초청을 받곤 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면화, 땅콩, 옥수수를 재배하던 들판에서 흑인 친구들과 함께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하고 놀면서 흑인 문화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흑인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백인 가족이었지요.

 

학교에서 인종문제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지요?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저는 백인 친구들과 함께 플레인스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마 1930년이었을 겁니다. 그 당시엔 사회 전반에 걸쳐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허용되었지요. 흑인들만의 학교와 교회가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투표도 할 수 없고 법조계를 포함한 공직에서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나 알게 되었답니다. 그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농장에서 거의 흑인들과만 어울려 그들의 문화에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제겐 백인 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간호사셨지요. 어머니는 집을 비우실 때가 아주 많았고, 아버지도 바쁘셨답니다. 그래서 저를 돌봐주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주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인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사회의 일반적인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썼던 시에 담겨 있습니다. “초원의 문”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친구 두 명과 함께 목장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날 하루 종일 일을 한 후 헛간을 향해 가던 중이었지요. 목장 울타리엔 문이 하나 있었는데 저는 그 문을 “초원의 문”이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함께 가던 친구들이 멈추어 서더니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더군요. 아마 나를 골리려고 하나보다 생각했지요. 이따금 구덩이를 파놓고 서로 먼저 가게 하여 구덩이에 빠지게 하곤 했거든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그 친구들의 부모님이 아마도 백인과 흑인을 더 이상 동등하게 여겨서는 안 될 나이가 되었다는 말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 동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로 이 사건이 저로 하여금 시민평등권 운동에 직접적으로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반응에 실망하신 적이 있습니까?

저 자신도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침례교인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종이나 자유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또는 남자나 차이가 없다고 말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동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본 원리지요...[전문 보기: 지미 카터: 화해의 궤적을 좇아서]


Interview by Richard Clark, “Jimmy Carter: Pursuing An Arc of Reconciliation” CT/CTK 2016:10


모든 미국인들은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마자 자신이 속한 당에서마저 외면당한 후 어떻게 그 수치와 굴욕에 대처했는지를 지켜보았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지도자였지만, 퇴임 후 카터 대통령은 골프를 치거나, TV 토크쇼 출연 등은 자제하면서 직접 연장을 들고 해비타트 운동에 동참했다.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분쟁과 갈등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카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카터 대통령은 피스메이커로서 전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필립 얀시,  “겸손의 다양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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