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궤적을 좇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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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궤적을 좇아서
  • 리처드 클락-지미 카터 | Richard Clark-Jimmy Carter
  • 승인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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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회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는 교회에 소망을 두고 있다.

 

연합뉴스

인종화해에 열정을 품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저는 플레인스Plains에서 서쪽으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외진 시골 마을 아처리에서 자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곳 최고의 교회는 성 마가 아프리카감리감독교회St. Mark’s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지요.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최고의 시민은 북부 아프리카감리감독교회 5곳의 감독이었던 윌리엄 데커 존슨William Decker Johnson이었습니다. 그분이 여행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섬터 카운티에서는 가장 큰 뉴스거리였답니다. 존슨 목사가 주말 동안 집에 머물 것이라는 소식이 카운티 신문의 일면 기사로 실릴 정도였지요.

부모님과 누이 둘, 그리고 저는 성 마가교회의 초청을 받곤 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면화, 땅콩, 옥수수를 재배하던 들판에서 흑인 친구들과 함께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하고 놀면서 흑인 문화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흑인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백인 가족이었지요.

 

학교에서 인종문제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지요?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저는 백인 친구들과 함께 플레인스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마 1930년이었을 겁니다. 그 당시엔 사회 전반에 걸쳐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허용되었지요. 흑인들만의 학교와 교회가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투표도 할 수 없고 법조계를 포함한 공직에서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나 알게 되었답니다. 그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농장에서 거의 흑인들과만 어울려 그들의 문화에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제겐 백인 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간호사셨지요. 어머니는 집을 비우실 때가 아주 많았고, 아버지도 바쁘셨답니다. 그래서 저를 돌봐주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주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인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사회의 일반적인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썼던 시에 담겨 있습니다. “초원의 문”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친구 두 명과 함께 목장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날 하루 종일 일을 한 후 헛간을 향해 가던 중이었지요.

목장 울타리엔 문이 하나 있었는데 저는 그 문을 “초원의 문”이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함께 가던 친구들이 멈추어 서더니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더군요. 아마 나를 골리려고 하나보다 생각했지요. 이따금 구덩이를 파놓고 서로 먼저 가게 하여 구덩이에 빠지게 하곤 했거든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그 친구들의 부모님이 아마도 백인과 흑인을 더 이상 동등하게 여겨서는 안 될 나이가 되었다는 말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 동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로 이 사건이 저로 하여금 시민평등권 운동에 직접적으로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인종차별에 대해 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을 때, 혼자 자신의 신조를 지키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저는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그곳에는 (해군 사관학교 졸업 후) 수습 장교가 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있었지요. 그의 이름은 웨슬리 브라운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크로스컨트리 팀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고, 그를 아나폴리스 해군학교에서 그의 임관을 저지하고자 했던 사람들로부터 그를 보호했습니다.

후에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함께 전함과 잠수함을 탔습니다. 1948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모든 군과 공무원 조직에서 인종차별을 종식시키라고 지시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상이 가실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그는 다수 의원들과 언론매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을 따라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저는 배 안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실제로 평등하게 생활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요. 그 유명한 로사 파크 사건이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이름을 떨치던 때보다 칠팔 년이나 앞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따라서 해리 트루먼은 사실상 인종차별 종식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문제들을 놓고 다른 백인들과 논쟁을 벌이게 되었을 때, 또는 흑인친구들이 초원의 문 앞에서 취했던 행동과 같이 스스로 주춤할 때 어떠한 행동을 취하셨는지요?

어느 주일 제가 여행을 하고 있을 때, 플레인스 침례교회의 집사들이 (저도 그 교회의 일원이고, 집사였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하는 것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집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내 가족을 포함하여 총 여섯 사람만이 교회 통합을 위해 흑인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는 쪽에 표를 던졌지요. 나머지 모두는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기권을 한 사람들의 수가 약 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 투쟁은 해 봄직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또한 비록 반대표는 던졌으나 회의에 참석한 다수가 제 말에 동의했습니다. 훗날 제가 정치가가 되었을 때 제 연설이 “인종차별을 끝낼 때가 되었다”는 제목으로 〈타임〉의 일면 기사로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엔 이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요?

저는 BLM에 대해 전혀 불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사실에 부합하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시민 평등권 운동이 성공을 거두고 린든 존슨 대통령이 (흑인·소수 민족의 선거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법) 투표 권리법 및 그에 따른 기타 법안에 서명을 한 이후로는 미국 전체가 별 탈 없이 지내왔다고 할 수 있지요. 미국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미국 내에서 또 다른 양상의 차별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최근 몇 년에 걸쳐 범죄자가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건들을 포함한 여러 사건들이 크게 보도 되면서 매우 극적으로 표출되었지요. 이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대중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의 인종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모두가 새로운 투표법과 1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공식적인 인종차별의 종식이 안겨줄 이점을 누리기 위해 서로에게 손을 내밀던 1960년대나 1970년대보다 확실히 악화되었습니다.

현재 아프리카계 흑인이 백인에 비해 교육, 취업기회, 투옥, 사형 등 여러 부문에서 백인에 비해 훨씬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반응에 실망하신 적이 있습니까?

저 자신도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침례교인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종이나 자유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또는 남자나 차이가 없다고 말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동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본 원리지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말했습니다. “도덕적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휜다.” 현재 인종갈등이 전보다 악화되었다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 저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비전대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평화를 누릴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뉴 뱁티스트 커버넌트와 더불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흑인교회와 백인교회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아마도 목회자나 성가대의 교류부터 시작해야겠지요.

플레인스에서 우리는 그 지역에 있는 흑인교회와 백인교회의 성가대가 모두 모이는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시작했습니다. 뉴 뱁티스트 커버넌트가 몇 년에 걸쳐 주최한 이 행사의 멋진 경험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인종분리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전문 보기: 지미 카터: 화해의 궤적을 좇아서]

 


Interview by Richard Clark, “Jimmy Carter: Pursuing An Arc of 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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