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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 모두 내가 지지하지 않는 이유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두 후보 모두 나 같은 흑인 복음주의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쇼 바라카
쇼 바라카  |  Sho Bar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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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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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살고 있는 흑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많은 백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신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긍휼의 마음이 없는 우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나를 소외시켰다. 좌파의 세속주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를 배제시켰다. 남성에 대한 일체의 “고전적” 해석을 해체하려는 전복적 시도는 남자로서의 나를 심각한 걱정에 빠트렸다.

나는 카터 G. 우드슨[“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흑인 역사학자]과 G. K. 체스터튼, 제임스 볼드윈[아프리카계 작가, 사회비평가]과 본회퍼 모두를 따르고자 하는 문화적ㆍ신학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현재의 사회정치적 지형에 우리의 자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우리는 함께 느끼고 있다.

나는 클린턴과 트럼프 두 후보에게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다. 힐러리 클린턴의 많은 지지자들은 과거의 논리를 답습하여 세속적 유토피아를 추구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많은 지지자들은 옹졸한 이데올로기들을 부활시키려 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아메리카, 내게는 조금도 위대하지 않다.

진정한 자유

흑인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나는 되도록 보수정당 편에 서려고 했다. 공화당의 도덕적 코드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격이 의심스럽고 가장 기본적인 보수적 원칙들에서조차도 갈팡질팡하는 후보[트럼프]를 지지하려고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현란한 말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많은 보수적 형제자매들이 타미르 라이스, 트레이본 마틴, 마이클 브라운, 그리고 몇몇 다른 흑인청년들의 죽음을 정당화하거나 모르는 척 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과 공화당의 가치관을 동일시하지만, 그것은 빌리 그레이엄보다는 불 코너[시민운동을 탄압하고 인종분리 정책을 주장한 경찰]를 더 지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둘 다 사회적 약자 공동체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양당 지도자들은 비폭력 마약 사범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지지했다. 양당 지도자들은 부유한 백인사회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범죄를 흑인들이 저지르면 투옥시켜 형평성을 무시했고, 거기서 파생되는 재정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야 이 나라는 백인들 사이의 오피오이드 진통제 중독이 거의 전염병 수준임을 인정했다. 1994년 빌 클린턴 정부의 ‘폭력범죄 통제 및 법집행 법’은 비폭력 범죄를 저지른 유색인종의 체포를 급증시켰다. 후에 그는 법안에 서명한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뒤늦게나마 인정해서 고맙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이 법이 부과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애틀랜타의 한 지역에 살고 있다. 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이곳 주민의 79퍼센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흑인 분포가 이 정도 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준 낮은 학교, 빈약한 상업지구, 저조한 자택 보유율, 허무주의에 빠진 행동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한다.

내가 이러한 어려움에 예민하다면, 나는 마땅히 무너진 정책과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라면, 민주당은 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보적인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잘못된 접근 방식으로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그리고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이 지역사회가 회복되고 해방되기를 원하기는 하는지 의심이 종종 든다. 더 나아가 그들이 어떠한 형태의 회복과 자유를 원하는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전문 보기: 2016 미국 대선을 보는 세가지 시각]

쇼 바라카 힙합 아티스트이며, “약자를 향한 긍휼과 복음을 향한 확신으로 정치사회 문제를 논하는” 앤드 캠페인AND Campaign을 시작한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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