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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그리고 그 길의 동반자들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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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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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의 행가래 幸家來
 

신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근대 인문학은 시작된다. 그런데 과연 나에게는 그런 인문학이 있는 것일까? 캠퍼스나 교회에까지 나부끼는 인문학 강좌 안내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인문학 강좌에 인문학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답이 있다.

‘사람들이 산과 들로 나가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놀라지만 막상 놀라야 할 대상인 자기 자신은 잊어버렸다.’

가을이 깊어가는 독서의 계절,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 4제를 안내해 본다.

 

돈키호테

“자, 산초여. 저쪽을 보아라. 서른,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흉악한 거인들이 버티고 서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의의 전투다.” 말을 마친 돈키호테는 창을 곧추들고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애마 로시난테와 함께다. 거대한 풍차에 부딪힌다. 여지없이 나가떨어진다. 그에게는 양떼가 교전중인 군대가 된다. 포도주가 든 가죽주머니와 피(?) 터지는 격투를 벌인다.

오죽하면 ‘광인으로 살다가 제 정신으로 죽은 이여’라고 했을까? 그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다. 황당무계한 꿈을 좇아 무모하게 돌진하는 몽상가, 이해할 수 없는 장난꾸러기, 괴짜. 돈키호테 하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풍차만 있는 게 아니라 풍자가 있다. 우스꽝스러움만이 아닌 품격 있는 유머가 있다. 무모함이 아닌 무한도전이 있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행복한 동행을 본다. 괴담이 아닌 사랑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소설 속에 시詩가 있는가 하면 역사가 있다. 인생 잠언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삶의 지혜가 가득하다.

소설 ‘돈키호테’가 올해로 완간 400주년을 맞이했다. “인류의 바이블”(생트 뵈브), “근대 소설의 효시”(알베르 티보데),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노벨 연구소)…. 돈키호테에 대한 찬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난, 삶이 따분해질 때면 어김없이 돈키호테를 손에 든다. 그의 웃음 짓는 행위에 가식의 옷을 벗는다. 도리어 내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안다. 막혔던 생각이 뻥 뚫린다. 스트레스가 달아난다.

키호티즘quixotism에 접속된다. 그의 고백대로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고 다짐하게 된다. 생각의 스트레칭, 돈키호테만한 책도 없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총리 겸 대법관. 인생의 최고 절정기, 자신을 총애했던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해 모든 안락을 포기해야 했던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Thomas More(1478~1535). 단두대에 올라선 그에게 사형집행관이 용서를 빈다. 모어가 그를 끌어안고 말한다.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죽음의 공포마저 유쾌한 해학으로 넘어서는 순간, 유토피아는 구현된 것 아닐까?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 과거 1000년 동안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연구했다. ‘중세 말기 사람들만큼 삶을 사랑한 이들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중세를 관통하는 두 개의 사상 기둥이 있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그리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다. 그 시절 파리와 로마의 공동묘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터였다. 아이들은 교회 납골당에서 사람 뼈를 장난감 삼아 놀았다. 죽음은 일상 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돌림병으로 죽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죽음은 불가항력이었다. 성직자들은 목에 피가 맺히도록 외쳤다. ‘순간을 소중히 다루어라. 내일로 미루지 마라. 바로 지금이다!’ 언제든 내 앞에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라는 뜻이었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것이다.

그들은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들여다보았다. 역설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죽음을 배우다 두 책만으로도 중세의 사상에 물들어 볼 수 있다니….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사랑하라’는 잠언이 마음을 흔든다. 몸서리치게 살고 싶다. 삶이 정겹다.

 

마음고전

아침 산책길, 앞서가다 말고 자꾸만 허리를 굽혀 돌을 집어 세운다. 궁금해 묻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답이 돌아온다.

“돌도 게으르면 안 돼!” 충격이었다. ‘아, 돌도 게으르면 안 된다는데…’ 생각해 보니 나무는 앓아도 서서 앓지 누워서 앓는 법이 없었다. 그 날부터 나도 게으름과 작별하기로 했다. 머리가 뛰어난 것도 재능이 특별한 것도 아닌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 남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었다. 난 그렇게 ‘새벽 형’ 인간이 되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흥미 있는 일이 일어났다. 누에고치가 뽕잎을 따 먹고 명주실을 뽑아내고 그것을 씨줄날줄 엮었더니 비단이 된 것처럼 책을 열심히 읽었더니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이 되었다. 나는 꿈꾸었다. ‘죽는 날까지 내 키 높이만큼 책을 써보는 인생도 괜찮으려니.’

내 삶의 유전자를 새벽 형으로 돌려놓은 이는 한국의 그룬트비로 알려진 가나안농군학교의 고 김용기 장로님이시다. 난 그 때 알았다. ‘나침반이 정북의 방향은 가리키지만 협곡과 계곡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영화 링컨)는 것을. 이래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갈림길이 된다. 뿐인가?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하지 않던가? 만약 내가 100명의 명사를 만나고 100권의 고전을 읽는다면…. 그렇게 해서 일명 만점짜리 인생, ‘행가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 프로젝트에 날개를 달아준 책이 하나 있다. 김환영의 마음고전. 이럴 때 ‘강추’란 말을 쓴다지. 거기다 아포리즘 행복 수업 인생은 즐거운 말을 먹고 자란다까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다. 난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새우잠을 자되 고래 꿈을 꾸라고.”

키 높이만큼 책을 써보는 나의 도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메시지

일본에 ‘자살명소’로 유명한 곳에 입간판 하나 내걸었더니 자살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뭐라고 썼을까?

“잠깐만 기다려! 하드 디스크는 지우고 왔니?”

이래서 사람의 뇌는 짧고 단순한 말에 쉽게 설득된다고 하는 것일까? 진리의 언어는 작고 단순하고 부드럽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거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게 아니거든.”

“어떤 사람은 25세에 이미 죽어 버렸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

사람들은 이런 말들에 가슴을 연다. 이 때문에 인간을 일러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언어적 인간)이라 하고 호모 그라마티쿠스Homo grammaticus(문법적 인간)라고 한다. 언어의 기술을 수사학修辭學이라 부르며 수사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문학 중의 인문학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 인문학적 질문에 작고 단순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답해 주는 책이 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다. 평생의 역작이다. 그는 성경을 일상의 언어로 옮겨 적었다. 거침없는 시장언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 가족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체가 있다. 착 감기는 말로 시선을 끄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가슴을 후벼 파는 돌직구로 내 삶을 흔들어 놓는다.

“딴따라” “연극배우” “앞가림.”

‘자전거를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자전거를 훔친 다음에 회개 기도하는 것이 응답이 더 빠르지 않을까’ 고민하는 나 같은 무지렁이 목사도 따뜻하게 품어준다. 힐링이 따로 없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언어를 비망록에 채우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서바이벌”survival이 일어난다. 비로소 아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눈과 입으로만이 아닌 기록이 또 하나의 독서임을.

“書 Bible” CTK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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