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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눈물을 흘리다광화문에서 다시 눈물을 흘리다
박총  |  ctk@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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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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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에서 멀진 않지만 확실히 낯선 동네였다.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사람들, 상가에 비친 불빛, 아이들을 토해놓는 노란 학원 버스, 저 멀리 어둠에 잠겨 능선만을 드러낸 도봉산….

오른쪽으로 시장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지남철에 빨려 들어가는 쇠붙이인 양 스르르 장바구니를 든 인파 속으로 파묻힌다. 시장기를 알리는 음식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무애한다. 나도 모르게 호떡집 앞에 섰다. 먼저 와 있던 여자아이가 두 개를 달라며 돈을 내민다.

“엄마 가져다주려고?”

철판에 기름칠을 하던 아주머니가 자주 지었을 법한 익숙한 웃음을 짓는다. 아이는 부끄러운 미소로 답한다. 그때였다. 봄이라 하기엔 차갑지만 겨울이라 하기엔 억울타 싶을 정도로 남녘의 온기를 슬쩍슬쩍 던져주는 밤바람이 인 것은.

나도 모르게 아이를 미행하고 있었다. 우리 딸아이와 닮은 통통한 볼살  때문이었을까. 아님 아이 손에 든 호떡이 철판 위에 익어가던 호떡보다 더 맛나게 보여서였을까.

얼마 가지 않아 아이가 걸음을 멈춘다. 양말과 속옷을 벌여놓은 노점상 앞이다.

엄마로 보이는, 나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40대 여인이 호떡집 아줌마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맞이한다. 모녀는 나란히 호떡을 베 문다. 아이 엄마의 입가가 확대한 것처럼 커다랗게 보인다. 우물우물 호떡을 씹으며 웃는 사이로 드러난 덧니와 잇몸. 아름답다. 그녀의 손에 든 호떡에서 흑설탕물이 뚝 하고 떨어지는데 내 눈에서도 뭔가가 떨어진다. 왜일까. 왜 그리 감상적이었을까.

무언가에 홀린 듯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갔다. 낡은 주택가가 눈에 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단층 주택들이 올망졸망 기대어 있다. 겨우내 먼지가 타박타박 쌓인 화분들이 낡은 집들과 같은 자태로 기대어 있다.

문득 어느 집 녹슨 철문 옆으로 바닥에 시멘트가 깨지고 흙이 드러난 데가 눈에 뜨인다. 대접 하나를 놓으면 그만인 그 자리 사방으로 자그마한 조약돌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 아, 여기에도 무언가를 심었던 게로구나. 손바닥만 한 자리만 있어도 꽃과 푸성귀를 심는 서민들의 고운 마음. 어쩌면 그 마음 때문에 이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이로구나.

이유도 없이 다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인기척이 느껴져서 급히 눈물을 훔치고 더 깊은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택가에 이리 어두운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으슥한 곳이었지만 무섭기보단 아늑했다. 짙은 어둠에 몸을 맡기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우울증에 걸리고 셀 수 없이 울었지만 이렇게 느꺼워 운 적은 많지 않았다.

울면서 진을 다 뺀 것이었을까.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시 불빛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힘겨울 때마다 나를 숨겨준 어둠, 괴로울 적마다 나를 받아준 침묵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난 가야 해. 우리 집 네 아이가 저 불빛 속에 기다리고 있거든.

다시 호떡집에 들렀다. 아이들 수에 맞게 호떡을 담아달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반죽을 떼서 철판에 놓고 납작하게 누르는 걸 보면서 습관대로 중얼거렸다.

“제게 살아갈 힘을 주세요. 제발….”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주머니가 놀라 묻는다.

“아, 아닙니다.” 열없는 표정으로 뭉갠다.

     

시장 입구를 빠져 나오는데 “국민의 삶을 활짝 피우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대로변에 걸려 있다. 나는 다시 되뇐다. “저희에게 살아갈 힘을 주세요.”

품에 넣은 호떡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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