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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순종의 삶‘다른 나’를 회복하라
김희돈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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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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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겨울을 목전에 두고 두 편의 기독교 영화를 만났다. 제자도(파이오니아21)순종(CBS). 두 영화는 국내 제작이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더 있다. 올 겨울 주요 상영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하나와 남이 아닌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비췄다는 것,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오고가며 그 모습을 비빔밥처럼 버무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는 다른 듯 닮은 하나의 맛을 내고 있다.
 

제자도
2016년 10월
감독 김성철
출연 옥한흠 김의연 윤동주 김용기

   
파이오니아21

제자도제자, 옥한흠(파이오니아21, 2014)의 후속 작품이다. 1편이 고故 옥한흠 목사의 사역과 삶을 통해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췄다면, 2편은 제자훈련, 제자도가 지닌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다.

직접적이고 보다 격정적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그랬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것은 교회가 아니라 “무소유”의 대명사 격인 법정의 길상사다. 사찰의 고즈넉한 전경을 비추면서 영화는 존재감, 영향력이란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채근하듯 묻는다. 한국 교회의 영향력,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 그에 따른 존재감…. 영화는 이내 ‘제자도’에 주목한다. 제자로서의 인식이 희박해지고 그 정체성마저 상실한 현실이지만 해법 역시 제자도에 있음을 강변한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가 터져 나온다.

영화는 “광인”狂人을 자처한 그의 제자훈련으로 내달린다. 제자로서의 삶이 사라진 현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혼돈스런 현실 속에서 그의 육성은 다시 탄식에 이른다.

때로 영화가 쉼표처럼 잦아들 때면 그의 발자취가 스크린을 채운다. 차분히, 제자도의 정신을 짚으면서도 제자훈련에 대한 고인의 열정과 고뇌, 회한을 화면 가득 보여준다. 그와 가까웠던 지인들의 고백은 생동감을 더한다. 그들이 목도한 그의 환희와 분노 역시 제자도의 단면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딛는다. 제자훈련에 대한 평가다. ‘제자훈련을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인가?’

공감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 둔 채 영화는 제자훈련의 공과 과를 스크린에 섞는다. 혼란스럽다.

영화는 돌연 흑백 이미지의 과거로 돌아간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 기억하는 명동학교 김약연 목사, 윤동주 시인,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를 차례로 만난다. 믿음의 선배로 마주한 그들은 반가우면서도 낯선 존재들이다. 뒤늦게 접한 일화지만 그들이 일궈낸 삶은 분명 제자로서의 삶에 맞닿아 있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난의 삶을 선택한, 저주에 가까운 현실 속에서도 그 길을 억척스레 완주한 믿음의 거인들이었다.

영화의 출발점도 종착지도 결국은 ‘제자’다. 내가 정해 놓은 현실적인 수준의 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내려놓을 수 있고 기꺼이 빈손이 될 수 있는 길, 생명까지 버릴 수 있는 길. 나의 사명을 알되 충직하게 그 삶의 좌표에서 멀어지지 않는 삶임을 영화는 현실과 과거를 부지런히 오가며 이야기한다.

 

순종
2016년 11월
감독 김동민 이주훈
출연 김영화 김은혜 한성국

   
CBS

고 낯설다. 난민이 있는 곳. 그곳은 그들의 기억마냥 어둡고 침울한 곳이다. 그들 곁에 다른 얼굴의 이방인들이 있다. 선교사로 불리는 그들은 어린 소녀와 함께 꽃을 꺾고 흙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지붕이 날아간 집 위에도 오르고 어둔 밤길을 걷고 걸어 약봉지를 전한다.

순종은 아프리카와 레바논에서 난민 사역을 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삶을 담았다. 그저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의 아픔과 함께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그들 곁에 살고 있는 선교사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우간다 내전으로 난민이 된 딩기디 마을의 아이들은 저마다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반군에게 처참히 살해되는 부모의 모습을 목격한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발작을 일으킨다. 발작이 일어나면 씨름하듯 매달리는 일은 선교사들의 몫이다.

레바논에는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모여 산다. 그들 역시 이슬람국가IS의 반인륜적 만행에 몸서리친다. 사랑하는 가장과 엄마를 잃고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신음 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그들에게 선교사들이 다가간다. 남루한 문을 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함께 운다.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또 다시 운다. 선교사도 꾹꾹 넣어 둔 가족사진을 꺼낸다. 레바논의 김영화 선교사는 점점 쇠약해지는 노부모와 몸이 불편한 동생 생각에 눈물을 떨군다.

영화는 88분간 그곳의 일상을 우직하게 보여준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의 이른바 “은혜로운” 모습이란 보기 어렵다. 기도하는 모습 잠깐, 예배 모습이 조금 나올 뿐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건 요리하고 다투는 일상의 모습들이다. 어떤 선교사도 사역이니 선교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산다” “살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선교사에게 현실의 삶은 난민과 함께 사는 삶 더도 덜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은 난민의 아픔과 고국에 가족을 둔 선교사의 그리움이 서로를 보듬는다.

“저도 가족이 몹시 그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셔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이 저의 가족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간다에서 사역하는 김은혜 선교사는 아버지 고故 김종성 선교사 때문에 딩기디 마을에 왔다. 초등학교 교사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남편과 함께 아버지의 사역을 계승했다. 어느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서럽게 우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김은혜 선교사는 그들과 가족으로 지냈던 아버지의 삶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난민과 선교사는 함께 살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한다. 이 영화의 제목 ‘순종’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실 때 가고 서라 하실 때 서는 것. 따지지 않고 단순히 그렇게 하는 것. 순종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한한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기막힌 일이 아니다. 순종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선물도 함께 예비하시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행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 우간다와 레바논을 오가며 두 영화가 외치는 메시지는 제자와 순종이다.

결국 내가 아닌 다른 나를 회복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바라시는….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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