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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와 은혜그리스도의 치욕을 따라가다 보면…
김은홍  |  amos@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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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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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심. 한 해를 매듭지어야 하는데 우리 마음은 수치심에 짓눌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부끄럽고 이 나라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낯 뜨거운 적이 또 있었나 싶습니다. 느닷없이 “무당의 나라”에 살게 되고 보니, 저 멀리 열대 어느 섬나라의 부두교 풍습을 비웃던 그 오만의 화살이 되돌아와 가슴에 박힙니다.

이번 호에서는 유독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여러 글에서 눈에 들어옵니다.

커버스토리 “부끄러워할 것 없다”는 졸지에 약물중독자가 된 수치심을 이겨낸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중독은 도덕규범의 잣대를 들이대어 비난할 문제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여 발생하는 질병이며, 따라서 수치심에 빠져 도피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책임 있는 자세로 차근차근 고쳐나가야 할 문제라고, 바로 그런 중독과 또 회복을 경험한 이가 말합니다.

성탄을 맞아 준비한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특별히 여자의 수치심을 이야기합니다. 첫 여자 하와는 사탄의 꾐에 넘어가 창조세계를 공동위임 받은 영광을 걷어차 버린 수치심에 하나님의 낯을 피해야 했고, 후손들을 죄의 수치심에 빠트렸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버린다면, 우리는 영원히 수치심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첫 여자의 수치심은 또 다른 한 여자 마리아가 낳은 아들이 치욕을 당함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굴레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스토리입니다.

히브리서 학자 이풍인 목사는 이번 호 저자 인터뷰에서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3)는 히브리서 설교자의 권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치욕을 당했던 그 자리, 예수님의 수치와 고난이 있는 그 자리로 나아가자는 것은 곧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삶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형제를 사랑하고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고…, 그렇게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은혜 입은 자로서 책임을 다한다면, 이 땅에서 그 무엇이 우리를 조롱할 수 있겠습니까?

때아닌 수치심에 은혜가 더욱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CTK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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