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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말하고 예배하는 이들이 있다한국 농인과 청인을 잇는 수화통역사 김유미 씨가 들려주는 농인과 한국수어 이야기
김은홍-김유미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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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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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희돈

수화통역사 김유미 씨를 만났다. 만나기 전에 먼저 그가 쓴 영혼에 닿은 언어(홍성사)를 읽었다. ‘이 땅의 농인과 한국수어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책이다. 이 책 들머리에 ‘용어 설명’이 있다. 청인, 농인, 농문화, 농사회, 한국수어, 수지한국어…, 낯선 말들이다. 이 낯선 말들만큼이나 낯설어서 우리가 쉽게 단정 짓고 오해하고 치우친 생각을 하고 마는 농인과 농사회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김유미 씨가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들’을 “청각장애인”이라 부르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농인’이라 부릅니다. 의외입니다.

“귀머거리” “벙어리”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농아자’나 ‘농아’에 ‘농아인’이라고, 사람 ‘인’을 붙인 지도 얼마 안 됐습니다. 서울 올림픽 전후로 ‘농아인’을 ‘청각장애자’나 ‘청각장애인’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청각장애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건 좋은 용어가 아닙니다. 농인을 굉장히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명칭입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농인의 삶이나 환경의 진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농인 스스로는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청인Hearing person들은 흔히 ‘농인’은 무시하는 표현이고 ‘청각장애인’이 더 존중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농인 스스로는 ‘농인’이 오히려 그들을 제대로 표현하는 명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수화로 의사소통을 해온 농인들에게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은 외부로부터 입력된 용어입니다. 본인들은 수어(수화)로 그대로 ‘농아인’이라고 얘기합니다. ‘너희 청인과 우리 농인은 달라. 너희는 머릿수도 많고 말도 음성으로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것이 있어. 우리는 수화로 대화해. 우리에게는 우리끼리의 소속감도 있고 뜨끈하고 따끈한 연대감도 있어.’ 농인들에게는 이런 공감대가 있습니다.

     

농인Deaf person이라는 용어의 핵심은 영어 대문자 ‘D’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농’은 장애 상태를 나타내는 의료·병리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수어’라는 고유의 언어와 자신들만의 문화, 농문화Deaf culture를 향유하고 전승하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자기이해와 정체성을 내포한 언어·문화학적 개념입니다. 농사회Deaf community 밖에서는 소리를 듣지 못하다는 의미로 청각장애인이라 부르지만 농사회의 당사자들은 모두 자신을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이라 부릅니다.

농인과 청인의 구분은 소수와 다수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 문화가 저 문화보다 낫다.’ ‘이 문화는 상위문화고 저 문화는 하위문화다.’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농인들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수어Korean Sign Language를 한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말을 사용하는 한국인들이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 사실이 현실감 있게 바로 와닿지 않습니다.

한국 농인들은 한국수어를 합니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말하자면 일란성 쌍둥이 언어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농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되고 사용되는 실제 언어로서, 우리가 길거리에서나 지하철 같은 데서 매우 역동적이면서 섬세하게 변화하는 얼굴, 강약과 여백과 느낌이 살아 있는 손의 움직임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한국수어일 가능성이 큽니다. 음성언어인 한국어에 고유의 어휘와 문법이 있듯이, 시각언어인 한국수어에도 고유한 어휘와 문법이 있습니다.

흔히들 오해를 하는데, 수어는 세계 공통어가 아닙니다. 한국수어가 다르고 미국수어가 다릅니다. 일본수어하고는 많이 유사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많이 엉켜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 서로 주고받은 게 많았습니다. 같은 영어권이라 해도 미국은 프랑스수어를 가져왔고, 영국은 영국수어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둘은 굉장히 다릅니다.

   
 

한국수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농사회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농인들을 단순히 장애인으로만 인식하고 접근한다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재활을 지원하는 것만이 최선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정상적이라고 평가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놓겠다’는 것이 특수교육이겠지요. 결국 특수교육은 청인 사회에 농인을 편입시키겠다는 것, 농인에게 청인의 언어와 문화를 주입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청인이 농인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이겠지요. 다수 언어 집단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세상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농인이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존중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못하고 있습니다. 농인을 위한 특수교육이 아니라 주류 청인의 편리를 위한 특수교육이다 보니, 불편한 쪽은 농인인것 같습니다.

‘왜 우리를 자꾸 뜯어 고치려하느냐?’ ‘왜 우릴 계몽시키려고 하느냐?’ 농인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좋지 않으냐? 한국어를 잘하면 좋지 않으냐? 너희도 보통의 사회인들처럼 살면 좋지 않으냐?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 일에 헌신한 분들의 선한 의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그런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농인들이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삶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부족해서 떠났을까요? 아닙니다. 뭔가 터치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영역, 내적 영토 또는 문화에 대한 존중과 격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그저 장애인으로만 보고 접근했고, 그로 인한 문화적 간극과 갈증으로 인해 대부분 떠났던 것입니다.

 

   
김유미 씨가 MBC 뉴스 수어통역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수어를 제2 외국어로 가르치면 어떨까요?

수어언어법에 유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시행을 어떤 식으로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수화와 자막으로 수화언어법 전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농인의 언어권은 타고난 권리다. 따라서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수화통역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기반으로 하면 여러 사업들이 가능해지는데, 특히 학교 교육과정에 ‘수어(수화)’가 들어가게 됩니다. 제2 외국어만큼은 아니어도 한 학기 정도는 들어갈 텐데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중요하니까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은 대부분 수화노래를 가르치는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농인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은?

일단 ‘농인들을 무식하다, 머리가 나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수화통역 없이 농인과 청인이 한국어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농인들의 한국어 수준이 청인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어를 꽤 잘하는 농인들조차 조사나 존대에서 오류가 많이 납니다. 한국수어에는 조사가 없습니다. 존대어도 따로 없습니다. 단어가 아닌 문법으로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가 없다보니 농인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들도 더해져 ‘무식하다’는 수화는 농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요. 서투르게라도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 오히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네. 신기하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농인들에게는 ‘이 사람 뭐야? 얼굴은 멀쩡한데 지능이 낮은가 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청인들은 몸의 움직임, 얼굴의 움직임을 언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손동작만 수어(수화), 즉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수어는 얼굴로 감정만 표현하지 않습니다. 얼굴과 몸의 움직임 안에는 의문문이나 평서문, 시제나 인칭도 들어있습니다. 수어는 손만 갖고 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얼굴과 몸, 그리고 공간이 다 문법에 쓰입니다.

그 다음, 고집이 굉장히 세다고들 생각합니다. 농인들만 특히 고집이 센 것은 아닙니다. 농인이든 청인이든 유독 고집이 센 사람들이 있지요. 농인이 고집이 세다는 고정관념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농인과 청인 사이의 언어적 간극 때문에 ‘정말 농인들은 말이 안 통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지요. [전문 보기: 온몸으로 말하고 예배하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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