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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우리를 살리는폴 브랜드의 ‘피의 힘’_두 번째 이야기
폴 브랜드, 필립 연시  |  Paul Brand, Philip Yan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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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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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역사는 한 장 한 장 선혈이 낭자하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죽음의 영들에게, 콜로세움 땅바닥에 쓰러져 붉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검투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던 로마의 뇌전증[간질] 환자들에게, 지금도 잔치를 벌일 때마다 소나 염소한테서 갓 뽑아낸 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케냐의 마사이족 전사들에게, 피를 마신다는 건 곧 힘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 행위를 의미한다.

인간에게 피는 신비로운 차원을 넘어 신성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풍긴다.

맹세는 말보다 강력하며 그 가운데서도 피로 맺은 언약은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성기노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고대인들은, 계약을 맺을 때 양쪽 당사자가 그 거죽을 잘라 피를 내고 한데 섞는 걸로 서명을 대신하기도 했다.

현대인들 역시 옛날 고릿적부터 내려오는 피의 신비로운 상징들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결혼반지는 약지에 낀다. 예전에 거기에 심장과 곧바로 연결되는 혈관이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꼬맹이들은 비위생적인 의례를 치르며 죽음을 무릅쓰고 우정을 지키겠노라고 굳게 다짐하는 이른바 ‘피를 나눈 의형제’ 놀이를 즐긴다. 순혈, 혼혈, 혈연, 뜨거운 피, 차가운 피 따위의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혈액이 유전과 기질을 좌우한다고 여기던 시절의 오해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실험실에서 원심분리가 가능해지고 신화적인 꺼풀이 완전히 벗겨져나간 지금까지도 신비로운 힘은 여전히 남아서, 피가 흐르는 걸 보면 너나없이 메스꺼움을 느낀다. 숨이 붙어 있는 몸에서 생명을 담은 액체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장면을 지켜본다는 건 말할 수 없이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욕지기가 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상 어떤 종교든 신성한 의식을 치를 때 피를 동원했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대 종교들은 전염병이 창궐한다든지, 가뭄이 든다든지, 적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어야 할 상황이라든지, 신의 진노를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든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피를 제물로 바쳤다.

더러 불편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기독교 역시 피를 토대로 삼고 있다. 구약성경 기자들은 피를 바치는 제사 절차를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을 기록한 이들은 그런 상징적인 의식에 신학적인 해석을 덧입혔다. 그이들이 쓴 글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말보다 ‘피’라는 단어가 세 배 이상 등장하며 ‘죽음’보다는 다섯 배나 자주 나타난다.

게다가 날마다, 매주, 또는 매월 (교단에 따라서는 심지어 수시로) 예수님의 피에 초점을 맞춘 의식을 치르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주문한다.

외과의사로 일하는 나는 날이면 날마다 피를 마주한다. 환자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로 삼고 늘 들여다본다. 칼을 댄 자리에서 피가 배어나오면 즉시 뽑아낸다. 수혈이 필요하면 냉장보관실에서 관련 정보 딱지가 붙은 400밀리리터 한 팩을 가져다 달라고 점잖게 요청한다. 그 따뜻하고 살짝 비릿한 물질이 환자 하나하나의 몸 안에서 씽씽 돌아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핏자국이 안 묻은 가운이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기독교 신앙 전반에 고루 깔린 피의 상징을 대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섬뜩한 느낌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옛사람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비밀스러운 계시에 기대거나 빈번하게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피는 일상적인 비유의 소재가 될 수 없다. 피와 연계된 개념들은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거나 쓸데없이 신앙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문제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유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결 자연스럽게 문화 속에 녹아드는 방식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피의 상징성을 꿰뚫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전문 보기: 피, 우리를 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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