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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브리서를 절반만 알고 있다?이풍인 목사는 나머지 절반에 놀라운 은혜가 있다고 말한다.
이풍인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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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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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모세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히브리서 설교자가 시간이 부족해 더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영웅담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랐다. 교회 좀 다녔다는 그리스도인치고 히브리서 11:1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믿음 장”에서 교훈을 얻고 믿음을 다져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저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항상 기가 죽는다. 그런데, 여기까지라면 히브리서를 절반 밖에 못 본 것이라고, 히브리서 강해: 은혜와 책임의 저자 이풍인 목사는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핵심 결론을 놓치고 있으며, 이 결론에서 도출되는 권면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히브리서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만 생각하면 항상 기가 죽는 우리에게 새 언약 백성으로 사는 특권을 말해준다.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 온전하게 될 수 없다’는 엄청난 선언을 통해 구약성도들이 멀리서 바라보았던 새 언약의 실체를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만이 아니다. “더 큰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 더 큰 책임도 있다”고 히브리서는 강조한다. 이풍인 목사와 함께 히브리서가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와 더 큰 은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히브리서 강해:은혜와 책임
  이풍인 지음
  킹덤북스 펴냄


이 책의 부제가 ‘은혜와 책임’이다. 우리는 은혜에서 그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책임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삶을 통해 돌려드려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히브리서는 우리가 삶의 자리 곧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권면하는 성경인 것 같다.

히브리서에는 ‘청유형’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그 강도도 다른 성경에 비해 매우 세다. 히브리서는 중간지대를 남겨두지 않는다. 은혜 입은 자답게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둘 중에서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 권고와 경고의 메시지가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의 제사로 피 흘렸다. 다른 제사는 없다. 이제 다른 기회는 없다. 이런 표현들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가장 많이 부족한 부분이 아닐까?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감한다. 성도들에게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을 제대로 못 전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 두려우니까 그렇다. ‘이렇게 전했을 때 반응이 어떨까?’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가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값싼 은혜라는 말조차도 흔한 표현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은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성도의 책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히브리서가 이야기하는 은혜란 무엇인가? 그리고 히브리서는 책임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은혜란 한마디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자기 아들을 보내셨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옛 언약과 관련된 어떤 것과 비교해도 훨씬 더 우월하다. 율법을 전해준 천사들보다 더 낫고, 옛 언약 백성들을 인도했던 지도자인 모세보다도 낫다. 그리스도는 동물제사를 관장했던 이 땅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하고, 그들이 드린 제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 동물제사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우리의 양심과 마음에 있는 근원적인 죄를 없애 주셨다. 내면에 일어난 변화, 이것이 가장 큰 은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과 양심이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더 큰 은혜를 입은 신약의 성도들은 은혜가 주는 자유를 만끽하며 방종의 삶을 살아도 되는가? 아니다. 구약의 성도들과 비교할 때 더 큰 은혜를 입은 우리는 더 큰 책임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 성도는 외적인 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품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새 언약의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너무 쉽게 ‘은혜 받았다’고 한다. 기복적 화법의 값싼 추임새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 자기만족의 표현일 때가 많다. [전문 보기: 은혜의 특권을 누리는 우리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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