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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칭의'시대종교개혁 500주년, 우리는 다시 율법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데이비드 잘  |  David Za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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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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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캠퍼스에서 자살이 잇따르자 조사팀을 꾸려 이 학교 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밝혀진 사실은 비통하지만, 슬프게도 놀랄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학업과 기타 교내 활동, 교우관계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생긴 압박이 스트레스를,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고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조사팀은 보고했다. “그리고 결국 고민은 의욕저하, 소외, 또는 불안이나 우울증 같은 상태로 표출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에게서 정신 질환은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보고서에 기술된 삭막함은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겪는 어떤 현상이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무언가를 성취해 내야하고, 출세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다. 이것은 자기도취를 되살릴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자기도취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 부담이 되어 돌아오며, 넘어져 일서설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이제 자기 자신을 자해하게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어떤 사람들은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종교개혁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받음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모두 동일한 이해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짧은 대답은 ‘그렇지 않다’가 될 것이다.

율법과 복음의 구별은 루터가 이것을 처음으로 널리 전파시킨 이후 500년이 지나는 동안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눈에서 이 구별에 대한 자긍심은 많은 사람들이 사상 최저치라고 여길 만한 수준이다. 이 구별이 환원주의적이고 구시대적인 것인, 좋게 말하면 신학적 호기심으로, 나쁘게 말하면 주먹을 휘두르며 성경에 어떤 틀을 강제하려는 시도로 여겨질 때도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율법-복음 해석학은 여느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처럼 오용되기 쉬운 개념이 되었다. 율법-복음 해석학은 (구약은 율법과 신약은 복음과 동일시하여) 성경을 절반으로 나눈다거나, 성경 전체를 엄격하게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엄격하게 나누어 사실상 본문에 (그리고 그 본문이 가리키는 분에게) 족쇄를 채운다는 잘못된 인상을, 이 구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심어주기도 한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율법과 복음의 구별은 성경 본문에 교리적 구속복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율법-복음의 렌즈를 통해 성경을 읽으면 말씀을 제품사용설명서로 읽는 위험에서 벗어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는 성령의 살아있는 도구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율법과 복음의 구별은 성경은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흔들고, 우리를 변화시킨다고―우리를 죽이고 또한 우리를 살린다고 강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루터는 또한 이러한 해석학을 새로운 율법으로 바꾸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는 또 하나의 도구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율법과 복음을 바르게 구별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이 땅에는 하나도 없다”고 그는 썼다. “설교를 듣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방법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오직 성령만이 그것이 무엇인지 아신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이 기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면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율법과 복음의 구별에 들어 있는 생명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구별에는 너무나 쉽게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기진해 버릴 수 있는 신앙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엄청난 힘이 있다.

사실, 구체적인 역사적 순간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과 복음의 구별은 다른 어떤 성경 접근법보다도 난해하지 않다. 지배와 복종, 비판과 용납, 상처주기와 용서, 달성과 양보, 사랑의 실패와 사랑 받고 싶은 갈망 사이의 차이를 경험한 사람들―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율법과 복음의 구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별은 성경의 핵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이 구별은 정확히 어떤 것일까? 왜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전문 보기: '셀프 칭의' 시대

 

데이빗 잘 Mockingbird Ministries(mbird.com) 이사이며 율법과 복음: 죄인(그리고 성도)을 위한 신학Law and Gospel: A theology for Sinners(and Saints)의 공저자이다.

David Zahl, “Justify Yourself” CT 2017:1/2; CTK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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