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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대화?리더가 가장 소홀히 하는 대화는 자신과의 대화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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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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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영국 국회의원이며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이끌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심각한 영적 위기를 겪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정치적인 야망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윌버포스가 그 문제를 잘못 처리했다면 19세기 영국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
헨리 애딩톤이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면서 윌버포스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윌버포스가 애딩톤 내각의 각료 후보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전기 작가 갈스 린은 윌버포스가 그 추측성 소문에 몹시 들떠 있었으며 한동안 그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썼다. 훗날 윌버포스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자기 자신이 “끓어오르는 야망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리더라는 위치가 가져다주는 특혜를 경험해본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윌버포스가 경험한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야망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권력을 남용하려는 마음이 분노, 경쟁심, 부정직, 도덕적인 유혹과 뒤섞여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리더인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환상을 품고 깊이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들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이 거의 없다.
윌버포스에게 가장 큰 유혹은 야망이었다. 리더들은 더욱 큰 것, 더욱 영향력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게 무엇인지 안다. 대개는 결국 자아가 갈망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넣기 위해서 사람과 일을 조종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윌버포스는 어느 주일, 마침내 자신의 야망을 직시했다. 예배를 드리고 홀로 시간을 보낸 후, “예배와 쉴 날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속에서 이 땅의 것들은 본래의 진정한 크기를 찾아간다. 야망은 꺾였다”라고 썼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윌리엄 윌버포스는 그의 삶의 위대한 비밀 하나를 보여준다. 정신없이 분주한 공적인 삶에서 매주 빠지지 않고 물러나오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 예배를 드리고 소수의 절친한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고 조용히 묵상하는 일을 철저히 지킬 수 있었다.
이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세 번째 활동인 묵상이다. 묵상은 내면의 대화이다. 자기 자신과 또 하나님과 나누는 이야기다. 내면의 대화를 갖는 동안 다른 사람과의 교제는 뒤로 미뤄진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아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이며 사적으로 내면의 대화를 가져야 할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왜 이 대화를 소홀히 하는가
젊은 목사 시절, 나는 종종 열정과 아이디어가 너무 넘친 나머지 조용한 내면의 대화를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았다. 그보다는 신문을 읽고, 조찬 회의를 하고, 일을 끝마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내가 그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피로와 좌절과 잘못된 결정과 지혜의 부족 등 증거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 우선순위는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사역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거의 모든 교단의 목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경영이나 교회 성장이나 설교하는 법을 강연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윌버포스처럼) 내면의 전투가 일어나는, 리더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더 많다. 내 강연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내면의 대화가 차지하는 위치와 “당신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이다.

   
 

그런 컨퍼런스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조용히 만나면 몇 가지 문제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중 많은 것이 심각하다. “너무 지쳤어요…아이디어가 고갈되었어요…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사람들이 나를 한 조각씩 나누어 가져서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자꾸만 사람들을 피하려는 내 자신을 발견해요…가족들이 너무나 불행해 합니다…포르노가 (혹은 성적인 생각들이) 문제입니다…내 자신이 몹시 실망스러워요…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더 이상 아무런 재미가 없어요.”
리더들이 개인 영역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강연하려고 뉴잉글랜드 컨퍼런스 센터에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뉴잉글랜드 침례교파의 역사를 기록한 낡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내용 중에 1932년에 쓰인 편지가 있었는데 좌절감과 실의에 빠진 한 목사가 교단에 보낸 것이었다.
“저는 7년 동안 이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저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제가 떠나기를 원합니다. 아직 제게 직접적으로 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출석률은 떨어지고 헌금도 적습니다. 저는 어디든 가겠습니다. 제게 기회만 주십시오.”
이 목사는 그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족을 위한 더 좋은 집이나 그에게 잘 해줄 장로나 집사들이 해답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편지를 읽거나 앞에서 언급했던 종류의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영적 리더들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나님이 정말로 의도하신 것일까? 목회라는 부르심에 종종 고난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그러면 이처럼 많은 지도자들이 결국은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목회자들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은 내면의 대화를 소홀히 한 결과인가?”
헨리 나우웬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리더들이) 지루하고 무뚝뚝하고 열정이 없는 관료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많은 계획과 프로젝트와 약속이 있지만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다하면서 마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문 보기: 가장 중요한 대화

[게시: 201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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