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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교회 어머니가 되다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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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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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의
행가래 幸家來

 

“1541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거리는 스산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물안개처럼 피어났다. 역병이었다.”

거대한 스펙터클의 첫 자막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맞아요.

대사와 함께 이어지는 첫 장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스러져 갔다. 그 죽음 속에는 부처Bucer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질베라이젠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임종의 자리에서 카피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카타리나 슈츠에게 부탁하여 홀로 남게 된 카피토의 아내 비브란디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죽고 나면 자신의 남편 부처와 비브란디스가 결혼해 주었으면 하는 부탁과 함께 약속을 받아낸다.”

이때쯤 해서 깔리는 복선, 어떤 장치일까요? ‘검은 커튼’, ‘고장 난 채 뒹구는 아이의 장난감.’ 제가 감독이었다면 ‘사제복’을 복선으로 깔았을 겁니다. 얼마 안 있어 엘리자베스는 죽음을 맞이하지요. 그리고 몇 달 후에 부처와 비브란디스는 그들의 약속을 지켜냅니다. 여기까지라면 말 그대로 러브스토리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피어난 사랑.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된 16세기는 그러지를 못했죠. 갓 태어난 생명은 축하를 받기도 전 죽어갔고 살아있는 사람들조차 배고픔으로 목줄을 조여야 했으니까요. 실제로 부처는 열 한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절반을 잃었으니까요.

결국 복선으로 선정된 사제복은 그 자체가 고난의 상징이었지요. 구교와 신교의 끝없는 전쟁은 그들을 공공의 적으로 내몰았고 난민신세를 면치 못했지요. 훗날 존 칼빈의 아내가 된 이들레트 드 뷔르도 과부도 추방당한 난민의 한 사람이었지요. 거기다 칼빈은 가난해도 지나칠 정도로 가난했었지요. 둘의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지요. 둘 사이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하지요. 그리고 그들의 결혼 생활도 8년 만에 마침표를 찍고야 말지요. 칼빈은 흐느끼죠.

“아마도 제 아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당신이 이미 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슬픔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제가 겪는 슬픔은 평범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제 생애의 최고의 동반자를 잃었으니까요. 그녀는 나의 피난민 생활과 나의 가난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그보다 더 심한 일이 나한테 닥치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나의 죽음에도 동참했을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그녀는 내 사역의 신실한 조력자였습니다.” ―1549년 4월 2일과 7일 파렐과 비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당시 수도승과 사제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었죠.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결혼이라 ‘내연녀’로 살아야 했으니까요. 내연녀의 꼬리표는 주홍글씨처럼 그들을 괴롭혔지요. 온갖 추문에 시달려야 하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왕따를 당했으니까요. 축복을 받기에 앞서 가족과 신앙사이의 선택부터 해야만 했지요. 너무 잔인하고 가혹한 일이었죠.

타이타닉호의 여주인공 로즈가 인생의 황혼녘에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회상하며 읊조리던 장면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카타리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지요.

“나는 사제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과 맹렬한 반대를 보았고, 또한 사제 집단의 엄청난 매춘 행위를 보았기에, 저 자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위한 길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사제와 결혼했습니다.” ―1세대의 사모들-저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중 한 사람인 카타리나의 책자에서.

한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죠. 서울의 모 여자대학에서 결혼상대자로 구두수선공 다음으로 목회자의 아내가 꼽혔다고. 생각해 보았어요. 그들은 어쩌면 단두대에 목줄을 매는 사형집행인 뒷자리쯤 차지하지 않았을까요? 사모가 되는 순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끝없는 노역이었지요. 아이들이 좀 많았나요? 거기다 종교개혁가들을 위한 숙소 제공,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피난처… 카타리나 부부만 해도 그랬지요. 두 아이를 잃은 슬픔 가운데서도 그들은 친척들과 고아들과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했지요.

 

한번은 카타리나가 갑작스레 8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숙소를 제공하고, 두 번 식사를 대접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또 한 번은 추방당한 목회자와 그의 가족을 겨울 내내 집에서 묵게 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또 다른 일도 있었는데, 그녀가 개신교의 큰 회합의 저녁 식사를 주관하면서도, 동시에 참석자 중에 아픈 사람 한 사람을 간호해야 했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 결론이 무엇인지 아세요?

‘이런 이야기들은 더 많다.’ 이 대목에서 울컥했지요.

이번에는 카타리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사랑하는 스트라스부르 사람들이여, 이처럼 저는 지속적이고, 즐겁게, 강인하게, 그리고 모든 선한 의지를 다해서, 제 자신의 몸과 힘과 명예와 물건들을 여러분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저는 저에게 속한 그 모든 것들을 여러분을 위한 발판으로 제공했습니다. 저의 경건한 남편도 역시 진심으로 매우 기뻐하며 이것을 허락했지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사는 것 때문에 그는 나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집에 있지 않아서 그 자신이 별로 육신적으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집안의 필요도 다 채워주지 못하는 일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공동체를 위한 선물로서 즐거이 나를 보내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죽을 때에도 나에게 부탁하기를 그 활동들을 계속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우정이 담긴 요청이었지요.”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자신들의 명성마저도 기꺼이 단념했던 1세대 목회자들의 아내들에 대해 엘시 맥키(프린스턴 신학교) 교수는 이렇게 평가하지요.

“그들은 어머니라는 부르심을 기꺼이 환영했다. 그것을 2등 계급의 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딸들에게 주신 참되고 경건한 소명의 한 부분으로 여겼던 것이다. 어머니로서의 이러한 역할은 자기들의 가족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것은 그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단기간 혹은 장기간 자기 집에서 머물도록 환대를 늘 베풀어 준 것을 뜻한다. 그야말로 교회의 어머니들이 된 것이다. 또한 이 여인들은 결혼 관계 내에서의 성性은 선한 것이라는 개신교의 견해를 공유했기에, 아내로서의 역할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한 방법이라고 여기며 자부심을 가졌다.”

무엇보다 제가 주목했던 것은 결혼의 본래적이고 일차적인 목적이 신앙 안에서 ‘동역자 됨’이라는 생각이었지요. 그들은 평등성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회와 사회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있어 남편과 아내의 동역자 관계에 기초해야만 한다는 신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대목이었지요.

영상은 다음 대사가 스크롤 되면서 막을 내리지요.

“몸은 둘이었지만 소명은 하나였다.”

 

원작: 카타리나 첼과 이들레트 드 뷔르 및 종교개혁 여성들의 결혼관과 결혼경험(엘시 맥키)

각본: 송길원

번역: 우병훈

등장인물: Anna Reinhard Zwingli, Katharina Schűtz Zell, Elisabeth Silbereisen Bucer, Agnes Drenss Capito, Anna Adlischwyler Bullinger, Marie Dentiére, Idelette de Bure Calvin, Anne Askew

-The end- CTK 2017:3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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