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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이유를 묻다, 온전히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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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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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부활] istock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연민으로 숨을 삼키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그 뒤에 숨겨진 목적을 곰곰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를 보면서 왜 그런 비극이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오래지 않아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든지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왜”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보다 더 많이 제기된 질문이 어디 있겠으며, 믿음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이보다 더 끈질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여태껏 내가 대화를 나눠본 회의론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믿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혹은 친구가 불구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것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던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진정한 질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악이라는 문제는 그런 악에 맞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욥이 내린 결론도 정확히 그러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욥은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 사실을 자신의 신학적인 틀과 화해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선하게 살았는데, 왜 저주를 받고 있는 걸까? 그는 사람이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 흔들린 것은 그의 신앙이 아니라 그의 신학이었다.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경청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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