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은혜’인가 ‘오직 은혜’인가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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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은혜’인가 ‘오직 은혜’인가 [구독자 전용]
  • 로버트 배론, 로저 E. 올슨
  • 승인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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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현재 동의하는 것, 그리고 여전히 갈라놓은 것

Lightstock 로버트 배론 주교 가톨릭의 관점 나는 오래 전부터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신부가 한 말에 공감하고 있다. 그는 종교개혁 분열의 양 진영에 있는 인물들이 머리와 가슴을 조금만 더 열었더라면,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에 루터교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프란치스코, 베네딕투스,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처음에 속해 있는 바로 그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이 가톨릭 교단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콩가르에게는 일부 종교개혁자들이 취한 행동에는 옳고도 중요한 것이 있었고, 그들을 가톨릭교회 안에 통합했다면 유익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콩가르의 생각에는 다른 면도 있는데, 슬프게도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들도 있었다. 과장, 과잉반응, 동기에 대한 의심과 비난, 미숙한 조치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 결과로 교회 내부의 개혁이 교회의 분열로 악화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여기에서 콩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개혁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던 많은 주제들―그리스도 수위권, 열정적 복음화의 필요성, 교회의 생활에서 성경의 중심적 위치,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 모두 사용, 모든 신자의 제사장 됨―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이 공의회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통합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표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모두 이 점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은혜의 우선성 동시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갈라놓은 본질적인 쟁점들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마땅히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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