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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선 4월에
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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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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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예배 풍경. 성가대 찬양이 끝나자 성도들이 박수를 칩니다. 아마도 저(와 아내)만 빼고. 그마나 다행인 것은, 이제는 다른 성도들이 박수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생기지 않습니다(오히려 여전히 박수를 못치고 쭈뼛거리는 나 자신이 어색합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배 중에 박수치는 풍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예배 중 박수 치는 것을 금기시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더. 예배당 안에 십자가를 걸어 놓은 교회를 보면 이질감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와는 다르다고 역시 교육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극히 보수적인 장로교인으로 자랐습니다. 지금도 뼛속깊이 장로교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에―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자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이념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지역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까? 그런데 정체성은 어쩔 수 없이 ‘구별 짓기’입니다. 저이와 다른 나, 저들과 다른 우리를.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고 보니, 우리는 그저 구별 짓기에 그치지 않고 저이와 저들을 얕보고, 깔보고, 따돌립니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마저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4월 16일이 있는 4월입니다. 이 나라 기억의 공동체가 결코 지울 수 없는 4월 16일의 달입니다. 돌아보건대 그날이후에도, 아니 그날이후로 더욱, 이 공동체는 ‘저들’과 ‘우리’로 갈라져 싸우고 있습니다.

고난과 부활의 4월입니다. 하늘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사람의 무리 안에 친히 들어오신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념이 갈라놓고, 정치가 갈라놓고, 지역이 갈라놓고, 심지어 신앙이 갈라놓은 이 세상에서 갈라섬의 정체성을 버리고 당신 안에서 한 형제자매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복음 17:11)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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