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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례식이 놓치고 있는 것부활의 기쁨을 알려면 죽음의 고통도 알아야 한다.
코트니 레이싱  |  Courtney Ress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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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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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NEUTICS 그녀의 해석학 istock 대학생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기독교 록 밴드 ‘자스 오브 클레이’Jars of Clay의 노래 〈올 마이 티어〉All My Tear”가 내 장례식에서 연주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떠날 때 나를 위해 울지 마십시오/ 내 아버지 품에 나는 가 있을 것입니다.” 내사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죽음에 슬퍼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좋은 곳”에 가 있을 것이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나은 곳”은 단지 완곡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를 예수님께 데려가기 때문이다. 죄가 더 이상 우리의 뒤꿈치를 물지 않는다. 젊은 열정이 넘쳤던 나는 내 장례식은 기쁨이 가득한 축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장례식들이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삶의 축하”에 가깝다. 우리의 문화가 검은 상복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장례식의 형식들을 버림에 따라, 가정들이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보다 개인화된—그리고 종종 보다 명랑한—경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초 〈비비씨〉가 “즐거운 장례식” 트렌드를 보도하면서, 몬티 파이돈Monty Python의 〈늘 삶의 밝은 데 있기를〉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이 베르디의 레퀴엠을 대신하여 영국에서 장례식이나 추모식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주곡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축하의 추도식 후에 우리는 우리가 상실한 그 사람이 더 이상 고통 가운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한 기억들로 마음이 편안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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