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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이유를 묻다온전히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  Ravi Zachar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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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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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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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연민으로 숨을 삼키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그 뒤에 숨겨진 목적을 곰곰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를 보면서 왜 그런 비극이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오래지 않아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든지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왜”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보다 더 많이 제기된 질문이 어디 있겠으며, 믿음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이보다 더 끈질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여태껏 내가 대화를 나눠본 회의론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믿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혹은 친구가 불구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것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던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진정한 질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악이라는 문제는 그런 악에 맞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욥이 내린 결론도 정확히 그러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욥은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 사실을 자신의 신학적인 틀과 화해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선하게 살았는데, 왜 저주를 받고 있는 걸까? 그는 사람이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 흔들린 것은 그의 신앙이 아니라 그의 신학이었다.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경청하시면서, 욥과 그의 세 친구 사이에서 대화가 전개되기를 기다리셨다. 최고의 지성들이 그 신비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어느 친구도 욥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며칠 사이에 친구들의 생각은 오히려 욥과의 사이에 더 깊은 골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 욥의 질문에 하나님이 대답하신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욥38:2-3)

이것은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으리라고 예상했던 대답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고통의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철학적인 대답으로 말문을 연다. 우리는 만성적으로 나름의 해결책들을 내어놓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지셨다. 대단히 놀라운 ‘신의 한 수’였다. 하나님은 욥에게 64가지 질문을 하나하나 던지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확신의 창고를 열어젖히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에 욥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욥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꼭 알아야 한다는 사실 위에서 자신의 모든 논리를 구축해왔다. 왜냐하면 그걸 알아야만 비로소 자신이 맞닥뜨린 혼란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맨 첫 단계로 욥에게 상기시켰다. 그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주의 무한함과 특별함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의미의 ‘겸손함’이다. 사람은 많이 알면 알수록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 그런 지식에 수반되는 여러 의미가 궁극적인 실체의 광대함과 복잡함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즉 아기가 태어나는 것, 엄마의 젖을 먹으며 그 아이가 자라나는 것,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 신비로운 성장과 성숙, 매혹적이게도 섬세한 인간의 뇌, 인간이 성에서 느끼는 환희 등이 그런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힘든 일을 요구했다. 그런 한계는 존재하며 또 존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면서. 하지만 하나님은 그냥 욥으로 하여금 모든 게 너무 방대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서 멈추시지 않았다. 바로 이 하나님이 무無에서 창조해내셨던 이 세상에 그런 패턴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셨으니, 욥의 고난에서도 똑같은 패턴과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님은 바로 이 사실을 욥에게 이해시키고 싶으셨다. 우주는 복잡하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 바, 욥에게도 그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하나님은 욥에게 처음 접근하면서, 욥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보다 무한히 더 큰 생각과 힘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상기시키셨다. 그는 그저 허공에다 대고 말씀하시고 있는 게 아니었다.


위로의 하나님

하나님이 창조주인 동시에 설계자라는 사실을 욥이 묵상하도록 놔둔 다음에, 하나님은 계시자이며 위로자로서 그를 찾아오셨다. 그러자 욥은 겸손하게 응답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42:5-6) 욥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계시자와 위로자로 와서 욥을 만나주셨다.

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을 말하는 것을 달가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은 지극히 사적인 일인데다 생각만 해도 가끔 아프기 때문이다. 그 일로 나의 가족이 틀림없이 당혹스러워 하리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내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17살이었다. 뭐, 대단한 격렬함도 없었고 엄청난 고통도 없는 가운데, 나는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그런 인식에 담긴 냉혹한 암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하나의 결정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 결정은 자살을 택하는 일이었다[이 이야기는 CTK 2013년 7/8월호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기고한 “해독제”에도 실려 있다].

자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내가 마셨던 독을 몽땅 토해낸 다음 병원에 누워 있었지만, 나는 과연 회복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탈수 상태로 내가 누워있던 바로 그 침대 맡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소식,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소식, 그 소식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신뢰의 기도와 더불어, 절망의 마음으로부터 풍족한 의미를 찾은 마음으로의 변화는 나에게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

수백만 인간이 와글거리며 사는 거대 도시 뉴델리의 한 병원. 거기 누워 있는 한 10대 소년. 그 소년을 찾아와 손을 뻗어준 하나님. 상상해보라! 내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우리 삶의 몸부림에 그가 사적으로 관심을 가지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개별적인 존재임을 인정받는다는 기쁨, 우리가 그에게 유일무이한 가치라는 것을 아는 기쁨, 그의 스스로 넉넉하심과 위대하심은 이런 기쁨을 기꺼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 안에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에 대해 예수님이 했던 이야기의 핵심이다. [전문 보기: 고통의 이유를 묻다, 온전히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국제사역센터(RZIM) 총재, 변증가이자 작가다. 「오직 예수(두란노), 「이성의 끝에서 믿음을 찾다(에센티아), 「경이로움(베가북스) 등의 저자이다. 이 글을 라비 재커라이어스의 「아플수록 더 가까이(에센티아)의 일부를 '도서출판 베가북스'의 허락을 받아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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