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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이라는 사랑많은 사람들이 ‘예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지만, 바울은 이것이 사랑의 교리라고 말한다.
프랭크 A. 제임스 3세  |  Frank A.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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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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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ORD 나를 바꾼 말씀No.17 에베소서 1:3-14

   
Jill De Haan

이 사실을 인정하자: 성경은 때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가나안 족속의 멸망이나 아브라함이 아내이자 누이인 사라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준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반감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성경에 엄연히 있고, 우리는 때때로 창피스럽고 불편한 이 이야기들에 들어있는 난제를 극복해내야만 한다. 모든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이미’와 ‘아직’ 사이의 커다란 간격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하나님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영적인 요구 조건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에 기울어 있다. 결국, 야곱과 그 후손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셨다(창32:28): “너의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 씨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유전자에 들어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의 첫 부분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씨름들이 많이 나온다. 이 중요한 편지는 아낌없이 애정을 부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정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을 그가 거론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에베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는 그토록 긴 세월동안―적어도 2000년 동안이나―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앓게 한 단어 하나가 들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바울은 이 불편한 단어를 강조하려고 같은 곳에서 두 번 씩이나 사용한다. 바로 “예정”이라는 단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것은 어둠의 “세력”과 사악한 다스 베이더를 연상케 하는 단어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 때,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그를 무시하고 좋은 것만 볼까? 두 손을 부여잡고 절망에 빠질까? 아마도 예정은 훈련받은 신학자들만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바로 여기서 씨름이 시작된다.

“예정”이라는 이 단어가 많은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자유와 개인주의가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현대 사회의 감수성을 공격하는 말이다. 우리 자신의 운영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어떤 생각도 거부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예정이라는 관념이 당신을 괴롭힌다면, 지난 역사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존 웨슬리는 “자유 은총”이라는 그의 유명한 설교에서 예정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와 진리를 뒤엎는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을 악마보다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세례파 지도자 메노 시몬스는 프로테스탄트의 예정 교리를 “혐오스러운 것들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불렀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조차도 이것이 부당하게 양떼를 괴롭힐 수 있다는 목회적 고려 없이는 강단에서 설교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간단히 말해서, 이 교리는 교회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친구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숨이 멎은 듯

에베소서의 첫 구절들은 관례적인 인사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기쁨에 넘친 찬양이 눈에 띈다. 그리스어 본문에서 이 구절들(엡1:3~14)은 실제로는 긴 하나의 문장이다. 202단어로 이루어진 이 문장은 신약에서 가장 긴 문장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도 가장 긴 문장일 것이다. 찬양과 감사에 너무나 깊이 사로잡혀 있어서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바울을 숨 못 쉬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는 무변광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신성의 베일을 걷고서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삼위일체 신비(엡1:3-6), 그 계획을 실행하시는 성자 하나님(엡1:7-12), 그리고 그 계획이 완성될 것이라는 성령의 보증(엡1:13-14)에 시선을 보낸다. 이 구속의 파노라마가 너무나 놀라워서 바울은 숨을 쉴 수가 없다.

이 드넓은 시야의 중심에 예정이 있다. [전문 보기: 예정은 사랑이다]

Frank A. James III, "Wrestling with Eternity" CT 2016:12;CTK 2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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