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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주는 가장 놀라운 기적그것은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무덤에서 일어나신 것이 아니다.
마크 갤리  |  Mark Ga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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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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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교회를 방문하면, 나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 백인 교인 대비 흑인ㆍ아시아인ㆍ라틴계 교인 수. 여성이 강단에 서는지 여부. 교인들의 옷차림새.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들의 수준. 나는 나이든 사람이 많은지 젊은 사람들이 많은지 살펴보고, 젊은 사람들이 많으면, 그 교회는 활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성공회 교인의 눈으로 예배 순서를 살피면서 부정확한 예전이 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린다. 두꺼운 주보에 얼마나 많은 종이가 낭비되는지도 살펴본다. 찬양 인도자들 머리 위에서 얼마나 많은 빈 공간이 쓸데없이 덥혀지고 있는지도 눈여겨본다.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들은 없는지도 살펴본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교리문답 공부를 하듯이 이런저런 크고 작은 차이들을 살펴보라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훈련을 여러 그룹들, 저마다의 정체성과 사명을 갖고 다양한 그룹들에서 받았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정체성 교인 전통identity churchmanship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churchmanship

특정 교회 (특히 성공회) 내부에서 태도나 가치를 공유하는 그룹의 성직자나 교인들이 자기 그룹 및 다른 그룹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나 의식. 성공회 내부에는 앵글로-가톨릭Anglo-Catholics, 복음주의Evangelicals, 자유주의Liberals 등의 churchmanship이 있다. 특정 교회 내의 여러 ‘전통’들을 이르는 말로 이해하면 무난하다. 원래는 성공회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지금은 다른 교회들에서도 내부의 여러 분파들의 정체성을 지시하는 용어로 사용된다.―CTK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교회에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한 가지 이유는 교회 안에 있는 여러 정체성 그룹들이 이것들을 눈여겨보라고 나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 기준에 못 미치면 얕잡아보고 폄하한다.

인간의 본성을 볼 때, 정체성 교인 전통은 단정주의judgmentalism와 분열로 퇴화할 수밖에 없다. 공통의 이해, 경험, 또는 심지어 신념에 기초한 정체성은 우리가 가장 열정을 갖고 하도록 예수님이 바라시는 한 가지를 불가능하게 한다. 예수님 안에서 함께 일치를 이루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체성 교인 전통은 불일치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살펴볼 수는 있지만, 변하지 않는 실체―복음의 중심에 있는 심오함―를 살펴보지 못하게 된다.

부활절 주간은 복음에 다시 눈을 뜨는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나 자신 놀랍게도, 교회에 대한 나의 관점에 얼마나 많은 결점이 있는지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묵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재에 주목했을 때였다.
 

부활의 부재


예수님을 부활의 몸으로 40일 동안 갈릴리를 돌아다니셨다. 하지만 그 40일 동안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겨우 10번 정도만 나타나셨다. 다양한 설명들을 어떻게 종합하느냐에 따라 약간 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 번째 부활절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요20:11-18).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주려고 달려간 “그 여인” 말이다(마28:8-10). 그리고 글로바 및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눅24:13-35), 그리고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요20:19-25; 눅24:36-43)에게 나타나셨다.

부활절 8일 후에, 예수님은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요20:26-29). 그리고 그 뒤로 몇 주간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요21:1-23). 그리고 큰 모임에서 약 500명의 제자들에게(고전15:6),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마28:16-18), 그리고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고전15:7). 그리고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 예수님은 승천 하시는 모습으로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눅24:49-53; 행1:3-11).

열 번 밖에 안 되지만, 이것은 전혀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이 나타나심들이 역사를 바꾸었다. 이 나타나심들은 예수님이 진짜 다시 살아나셨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것들은 사도들의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성경에서 예언된 것을 보게 하였다. 바울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첫 번째로 중요한” 것으로서의 예수님의 부활과 나란히 이 나타나심들을 열거한다(고전15:3).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에 정확하게 부여하고 있는 의미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예수님은 그 40일 동안 더 많이 나타나셨어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40일 동안 예수님은 당신이 육체적으로 나타나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부재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 계실 때도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만지지 못하게 하신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나는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신 나의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전해라. ‘나는 나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께 올라갈 것이다. 나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께 올라갈 것이다.”

도마가 믿음을 고백할 때, 예수님은 그를 부드럽게 나무라신다. “네가 나를 보았기 때문에, 너는 믿었다. 보지 않고 믿은 사람들은 복되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의 부활하신 몸에 너무 많은 충격을 가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 같다. 어찌된 일일까? [전문 보기: 가장 놀라운 부활절 기적]

Mark Galli, "The Most Astonishing Easter Miracle" CT 2017:4;CTK2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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