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응원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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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응원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 마크 갤리 | Mark Galli
  • 승인 2019.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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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다. 그런데 교회에는 그 이상을 바라야 하지 않을까

 

최근 나보다 나이가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 들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좋게 봐서 시련이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 돌파구를 찾았다고 말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설교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처한 상황에 대해 징징거리지 말고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 상황을 기회 삼아서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요. 그 말씀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이 말을 듣자 문득 궁금해졌다. ‘오스틴 목사가 설교한 것이 정확히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휴스턴의 목사인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들은 말은 주로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그의 설교를 몇 개 찾아들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오스틴 목사는 그보다는 자주 맞는 말을 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소위 ‘번영복음 설교자’라는 몇몇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굳건한 부부관계나 자녀양육, 고통의 문제에 관한 지혜로운 조언을 자주 들려주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역경을 만났을 때 침착함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도 자주 했다.

물론 신앙과 금전적 번영을 넌지시 연계할 때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가끔 그랬다. 대개는 성경적 지혜와 심리학적 지혜를 버무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중에게 제시했다. 아니면, 역사학자 케이트 보울러가 「축복: 미국 번영복음의 역사」Blessed: A History of the American Prosperity Gospel에 쓴 대로, 번영복음 설교자들은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인간 조건에 대해 포괄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주류 복음주의 교회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살펴보면 그리 문제가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교회들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면 관계 개선, 자녀양육, 직장에서의 신앙생활, 일반적 의미의 성공하는 삶에 대한 비슷비슷한 설교 시리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용적이고 괜찮은 조언들이 많은데, 대개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고 잠언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이 이런 교회에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에 대한 상식적인 지혜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중 대다수 조언들은 많이 팔리는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 강연,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 내용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그런 원리들을 이미 널리 알려두셨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아이를 훌륭하게 기를 수 있거나 사업에서 성공하고 고통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있는 철학적 요소 한 숟가락과 저기 있는 심리학적 요소 한 숟가락만 더하면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인생을 구축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들과 선생들이 진리를 전부 다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의 설교를 통해서는 복음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잠언은 전체 지혜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지혜는 욥기와 전도서, 골고다 언덕의 예수에 있다. 지혜의 다른 부분, 곧 더 깊은 지혜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에 중심을 둔다.

십자가는 부활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휴게소가 아니다. 고통 역시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역경도 인격을 함양하고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잠언의 지혜에 치우친 것이며, 어느 정도까지만 진실이다. 이것이 바로 영광의 신학이며, “우리가 올바른 태도로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또 이런저런 것들을 견디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다.

반면 십자가의 신학은 고통의 이면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죄 용서는 십자가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십자가 안에서, 십자가와 함께, 십자가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십자가의 지혜”(고전 1-2장)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평범한 지혜를 넘어서는 이토록 엄청난 메시지, 곧 사람들로 하여금 확고부동한 실재에 두 발을 디디게 해주고, 그리스도를 목적 그 자체로 제시하며, 우리를 불러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곳을 보여주는 메시지(요 12장)를 지닌 기독교 지도자들이 왜, 그저 약간 도움이 될 뿐인 지혜를 나누는 일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쓰고 공을 들이는 걸까?” CT

 


마크 갤리 CT 편집장

Mark Galli, “Pep Talks For Successful Living” CT 2013:12; CTK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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