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은혜’인가 ‘오직 은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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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은혜’인가 ‘오직 은혜’인가
  • 로버트 배론, 로저 E. 올슨
  • 승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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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현재 동의하는 것, 그리고 여전히 갈라놓은 것

가톨릭의 관점

나는 오래 전부터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신부가 한 말에 공감하고 있다. 그는 종교개혁 분열의 양 진영에 있는 인물들이 머리와 가슴을 조금만 더 열었더라면,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에 루터교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프란치스코, 베네딕투스,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처음에 속해 있는 바로 그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이 가톨릭 교단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콩가르에게는 일부 종교개혁자들이 취한 행동에는 옳고도 중요한 것이 있었고, 그들을 가톨릭교회 안에 통합했다면 유익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콩가르의 생각에는 다른 면도 있는데, 슬프게도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들도 있었다.

과장, 과잉반응, 동기에 대한 의심과 비난, 미숙한 조치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 결과로 교회 내부의 개혁이 교회의 분열로 악화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여기에서 콩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개혁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던 많은 주제들―그리스도 수위권, 열정적 복음화의 필요성, 교회의 생활에서 성경의 중심적 위치,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 모두 사용, 모든 신자의 제사장 됨―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이 공의회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통합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표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모두 이 점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은혜의 우선성

동시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갈라놓은 본질적인 쟁점들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마땅히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신학적 행보를 따랐던 사람들의 가장 의미 있는 한 가지 공로는 은혜의 우선성the primacy of grace에 대한 강조였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선한다는 강조는 성경적 증언에, 그리고 기독교적 영적 전통에 절대적인 핵심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영웅적인 영적 공로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이다.

야곱은 에서보다 명백하게 “더 낫다”고 할 수 없고, 결국 그는 주님의 사랑의 대상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결국 약속을 받은 자가 되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가장 준수하지도 않았고 재능이 가장 탁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에게 “주님의 영이 강하게 임했다”(삼상 16:13).

주님은 시몬의 허락을 구하지 않으셨다. 그가 가장 능숙한 어부였다고 평가하지도 않으셨다. 주님은 이 남자의 배에 가셔서 명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은혜의 우선성을 매우 직설적으로 요약하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요15:16)

이 원칙을 잊을 때 영적인 질서에 무수한 문제가 따른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곧 자력구원의 오류이다. 우리가 영웅적인 도덕적 노력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조종의 대상으로 바꾸고, 구원자의 필요성을 제거한다.

16세기 초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루터는 교회의 생활에서 이러한 위험성을 보았으며, 그래서 그는 진정한 선지자적 열정으로 은혜의 편에서 외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벌써 오래전에 펠라기우스에 직접 맞섰던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소리를 다시 울렸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오늘날처럼 급진적으로 세속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때에는 특히 그렇다.

기독교 세계 전체는 이를 증언한 마르틴 루터에게 엄청난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그라티아 프리마’gratia prima(먼저 은혜grace first)를 말하는 것에 자신을 제한했더라면, 루터는 가톨릭주의 내부에서 꼭 필요했던 개혁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그라티아 솔라’gratia sola(은혜만으로grace alone)를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은혜만으로’의 문제점

이것은 궤변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차이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은혜와 “공로”―또는 도덕적 업적―를 엄격한 반의어로 설정함으로써, 루터는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도출해 내고 있음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은 반드시 인간에서 어떤 영광도 돌리지 않는 것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철학적 명목주의 안에서 형성된 루터의 사고에 기초한 것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시한 고전적 존재 개념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 존재의 유비일 뿐이라고 보았다. 즉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명목주의는 존재에 대한 일의적 개념을 받아들였다. 오컴의 윌리엄과 그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제안한 이 개념은 인간과 하나님 모두 동일한 종류의 존재를 가진다고 이해했다.

오컴의 해석에서 하나님과 피조물들은 “존재”의 일반 범주 안에 있는 항목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무리 고귀하다 할지라도 많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의 존재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토마스의 독해에서, 하나님은 수많은 다른 존재들과 나란히 존재하는 “지상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존재 자체로, 모든 창조된 존재들이 이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세상은 동일한 존재론적 “장”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퀴나스의 고전적 관점에서, 창조된 영역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의 완벽함에 더하지도 않고 그것으로부터 빼지고 않는다.

그리고 따라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 피조 영역으로부터 영광의 박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성 이레나이우스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히 살아 있는 인간 존재이다(Gloria Dei homo vivens).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토리노 공의회―개혁자들의 도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응답―는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대하고 은혜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루터에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구원의 본질적인 특징으로서 은혜와 우리의 “협력”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창조세계와 관계를 맺으시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협력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적 우선성에 대한 어떤 타협도 수반하지 않는다. 이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선지자 이사야가 말했듯이 말이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성취한 모든 일은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사26:12)

루터의 개혁이 건강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생명을 주었고 펠라기우스주의에 반대했다는 점에서라면, 가톨릭은 기꺼이 루터의 개혁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의 개혁이 ‘그라티아 프리마’에 그치지 않고 ‘그라티아 솔라’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아쉬울 따름이다.

 


로버트 배론 주교 로스앤젤레스 대주교의 보좌교주이며 Word on Fire Catholic Ministries의 설립자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응답

종교개혁의 ‘솔라 그라티아’ 교리에 대한 배론 주교의 비판은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지적한 모든 것에 응답하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한 말과 행동과 저술을 모두 옹호하려는 마음도 분명히 없다. 일반적인 프로테스탄트 신학 안에서 나는 은혜에 관한 배론 주교의 주장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솔라 그라티아”는, 프로테스탄트의 관점에서, “그라티아 솔라”를 의미하는가? 핵심 질문은 이것일 것 같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구원은 “은혜 하나만으로”by grace alone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only by grace―배론은 인간의 협력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이라고도 가르치는가? [전문 보기: ‘먼저 은혜’인가  ‘오직 은혜’인가]

 


로저 E. 올슨 베일러대학교 조지 W. 트루엣 신학원의 기독교 신학 윤리학 포이 발렌틴Foy Valentine 석좌교수이다. 그의 최근 저서는 The Essentials of Christian Thought(Zonder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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