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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나의 자제력생각보다 우리의 의지력과 자제력은 더 강하다.
브래들리 라이트, 데이비드 캐리언  |  Bradley Wright, David Car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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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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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왜 이렇게 자제력이 약한 것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고 또 그것을 하려고 주도면밀하게 계획까지 세우지만, 완전히 다른 일을, 내 믿음에 도움이 안 되고 때로는 내 믿음과는 정반대되는 일을 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롬7:15). 바울의 이 고백을 나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는 이런 상태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다시 시도하고 막연히 잘 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자기통제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를 발견했는데, 자제력에 관한 상당히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지난 20년 동안 자제력에 관한 연구는 붐을 이뤘고, 다들 자제력을 정말 갖고 싶어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더 많은 자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하며,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며, 덜 우울해하며, 더 활동적이고, 더 낮은 안정심박수를 기록하며, 알코올중독자가 더 적고, 감정기복이 적고, 남을 기꺼이 돕고자 하며, 더 나은 직업을 얻고, 소득이 더 높고, 부부로서 서로에게 충실하고, 밤에 숙면을 취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기타 여러 과학자들이 자제력의 실제적인 이로움에 관해서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제력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자제력을 더 잘 발휘하는지도 알고자 한다.

먼저 자제력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자제력은 욕구와 충동을 조절한다. 과자를 먹고 싶지만 사과를 집어 드는 것처럼, 자제력은 하고 싶은 일은 이것이지만 저 일을 선택하게 한다. 이러한 정의는 명확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제력을 이렇게 정의하면 “좋은 사람이 되기”처럼 자제력을 막연하고 부정확하게 생각하는 것을 피하게 해 준다.

우리는 자제력을 사용하여 무슨 생각을 할지, 무엇을 할지,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조절한다. 의지력은 자제력을 발휘하기 위해 사용되는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에너지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이렇게 반응하는 대신에 저렇게 반응하라고 빈번하게 요구한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자제력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헬라 세계는 자기를 통제하는 자아를 강조했고 종종 쾌락에 대한 금욕주의적 회피를 신성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성경의 기자들은 이 세상의 많은 쾌락들을 사람들이 향유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로 보았으며, 자제력은 자율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얻게 된 열매라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복종해야 하는 성경의 명령들 이면에는 우리는 이런 반응 대신에 저런 반응을 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의 욕구와 충동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걱정하는 마음 대신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저주하고 싶지만, 축복해야 한다. 증오하고 싶지만, 사랑해야 한다.

자제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중요하다. 나는 자제력이 소화기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유혹의 화염에 맞서 싸우는 위급한 상황에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는 전원 스위치처럼, 필요할 때 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제력에 대한 연구는 다른 그림을 그린다.

 

배터리가 아니라 근육이다

한 가지 핵심적인 최근의 발견은 자제력은 소진될 수 있는 자원이지만 또한 길러낼 수 있는 자원이라는 점이다. 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영리한 실험으로 이를 증명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식사를 거르게 한 다음에 허기긴 학생들을 테이블 앞에 앉아 있게 했다. 그 테이블 위에는 갓 구운 초콜릿 칩 쿠키, 캔디, 무가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운 좋은 이 학생들은 달콤한 두 가지만 골라 먹었다.

두 번째 그룹 앞에도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이 학생들에게는 달콤한 것들은 먹지 말고 무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그룹(통제 그룹)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한동안 세 그룹의 학생들을 탁자 앞에 앉아 있게 한 다음에, 그들에게 복잡한 기하학 문제를 풀게 했다. 그 문제는 애초부터 풀리지 않는 문제였고, 진짜 측정하려고 한 것은 그들이 그 문제를 포기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테이블 앞에 앉은 학생들은 포기하기까지 20분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두 번째 테이블 앞에 앉은 학생들은 겨우 8분을 버텼다. 왜 그렇게 큰 차이가 생겼을까? 두 번째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은 그 달콤한 것들의 유혹을 뿌리치느라 이미 많은 자제력을 사용해버렸기 때문에 기하학 문제를 푸는 데 쓸 에너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고 부른다.

이 실험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자제력은 일단 사용되면, 영구히 사라진다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자제력은 휴식을 통해 재충전된다. 사실, 자제력은 사용할수록 더 강해진다. 오른손잡이 학생들에게 문을 열 때 왼손만 사용하도록 한 실험에서도 이것은 입증됐다. 오른손잡이 학생들이 왼손만 사용해서 문을 열려면, 본래의 성향을 억제하는 의지적인 생각과 노력―자기 통제―이 필요했다. 한동안 이렇게 한 뒤에, 그 학생들은 대체로 더 많은 자제력을 보였다.

자제력은 마치 근육과 같다. 사용 직후에는 약해지지만, 자주 사용하면 강해진다. [전문 보기: 놀랍다, 나의 자제력]

 

브래들리 라이트 코네티컷 대학교의 사회학자이다.
데이비드 캐리언 스탠퍼드 대학교의 정신의학 레지던트이자 신경과학자이다.

Bradley Wright, David Carreon, “Can You Control Yourself” CT 2017:5;CTK 2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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