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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오르겔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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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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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가래]

 

구공이 골대를 흔든다. 선수는 세리머니로, 관객은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농구골대로 사뿐히 내려앉는 농구공은 또 하나의 전위예술이다. 골프공이 딸깍 소리와 함께 홀컵에 들어설 때 골퍼들은 전율한다. 이렇듯 구기 종목은 공이 중심이다. 같은 구기종목이면서 격이 다른 경기가 있다. 야구다. 야구는 공이 멀리 달아나야 한다. 공 대신 사람이 들어설 때 점수가 난다. 차이는 또 있다. 번트와 희생플라이다. 자신은 죽어서 팀을 살린다. 이 때 희생플라이는 타율로 카운트 되지 않는다. 이래서 야구는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다.

야구를 떠올리는 음악의 야구가 있다. 오르겔이다.

오르겔의 제작과정부터 주목해 보라. 주 소재가 목재와 가죽과 금속이다. 나무는 잘려서, 가죽은 죽어서, 철은 용광로에 던져졌다 살아났다. 부활의 악기다. 야구가 그렇다. 야구는 기회가 많다. 타자는 무려 세 번을 칠 수 있다. 예외가 없다. 두 번 실패했다고 물러설 일이 아니다.

야구는 변화무쌍하다. 야구공의 실밥이 108개이다. 108마구라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변화가 있다. 대처해야 할 상황도 그만큼 많다. 드라마틱하다. 수많은 변수는 다이내믹이다. 오르겔이 그렇다. 하나의 악기가 아니다. 수백 수천 개의 파이프를 조합해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 트럼펫, 바순 등이 만들어진다. 각종 악기를 연상시키는 음색이 수십 개다. 많게는 100개 가까이 만들어 낸다. 그 자체가 거대한 오케스트라인 셈이다. 음역은 광대하고 음색은 부드럽고 화려하다.

오르겔은 전면부가 아닌 후면에 자리한다. 외관의 화려함이 단조로운 십자가를 가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위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된 세례요한을 닮았다. 더구나 정면에서 듣게 되는 직음直音과 달리 공명이 있어 더 신비롭다. LA 다저스 전 감독이었던 토미 라소다는 말한다. “좋은 선수는 등 뒤에 있는 이름을 위해서 뛴다. 가장 좋은 선수는 유니폼 앞에 있는 이름을 위해서 뛴다.” 이제야 그 의미를 이해할 것 같지 않은가?

야구는 땅딸보부터 뚱뚱보까지 참여한다. 체형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오르겔 역시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같은 건반악기에 속하는 피아노는 때려야 한다. 힘이 중요하다. 하지만 오르겔은 명연주자나 초보자가 눌러도 같은 소리다. 단지 화음을 위한 조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얼마나 멋진가!

더구나 오르겔은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았다. 허파(바람조절 장치)가 있다. 심장(바람상자)이 있다. 실핏줄이 있다. 이름 자체가 그렇다. 오르간Organ이라는 악기 이름은 그리스어 오르가논에서 유래했다. 기구나 연장, 조직이라는 뜻으로 여러 분야에서 두루 사용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 숨을 불어 넣었다. 오르간도 숨(바람)을 불어넣어야 소리를 낸다. 기명氣鳴악기다. 신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오르겔을 연주하기 위해 의식ritual이 필요하다. 연주자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던져야 한다. 왜? 손으로만 연주되는 대부분의 악기와 달리 오르겔은 발로도 연주되는 온 몸의 악기다. 세속을 벗어야 한다. 사제들이 제단에 오를 때 신발을 벗는 것과 진배없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새 신을 신는 연주자의 손은 언제나 떨고 있다. 자세히 보라. 거룩한 의식을 치르고야 누를 수 있는 악기가 오르겔 말고 또 있겠는가?

 

교개혁 당시 가톨릭 교황은 하나님 말씀을 독점했다. 루터의 반기反旗는 ‘하나님의 말씀은 교황에게서가 아니라 성경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성경 앞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이것을 위해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독일어였다. 귀를 뚫어준 것이다.

성경만이 아니었다. 찬송가도 사제의 전유물이었다. 루터는 찬송가도 평신도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들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회중찬송이었다. 드디어 그들의 귀가 뚫리고 입이 열렸다. 파이프 오르겔을 배경으로 코랄(독일식 찬송가)이 번성했다. 그 소리가 퍼져가는 것만큼 종교개혁의 불길도 거세게 타올랐다.

루터는 말한다. “음악을 듣고 느끼는 기쁨은 죄가 없다.” 이 말 속에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서려있다. 한편 루터는 칼뱅이나 츠빙글리와는 달랐다. 두 사람의 말씀강조는 이성으로 기우는 면이 있다. 하지만 루터는 감정도 놓치지 않았다. 루터에게 음악은 곧 영적인 것이었다. 다윗이 수금으로 사울의 악령을 쫓아낸 것(삼상16:23)을 주목했다. 기악의 영적 능력을 보았다. 루터는 확신했다. 음악을 듣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슬픔의 세력인 마귀와 싸울 힘을 준다고. 아니, 성령은 음악을 도구로 사용한다고.

1523년 7월, 루터의 나이 마흔을 바로 앞둔 시기였다. 신구교의 대립은 격해졌다. 루터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네덜란드의 두 수사(앤트워프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는 이단자로 몰려 화형 되기까지 했다. 이에 루터는 우리는 새로운 노래를 부르노라. 우리 주께서 다스리신다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루터가 최초로 만든 찬송가(“코랄”)였다. 노래 가사는 삐라에 담겨 뿌려졌다. 노래들을 전한 삐라는 당시의 SNS였다.

누군가 그랬다. “루터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니, 음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오르겔을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왜? 오르간 사용을 권장했던 루터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장―Heart=He+Art―박동에 내 마음을 맡길 수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CTK 2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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