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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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그리스도인이다
  • C. 존 콜린스│ C. John Collins
  • 승인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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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체들과 함께

[RE-WORD 나를 바꾼 말씀] No.19 요한복음 15:1-17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그리스도인이다
다른 지체들과 함께

1975년 가을, 대학 2학년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신자가 된 지 겨우 2년 정도였고,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자다가 깼다. 제자훈련을 받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때 갑자기 회의가 밀려왔다. ‘내가 받아들인 이런 기독교적인 것이 정말 진짜일까?’

‘제자훈련 받는다고 정말 내가 달라질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정말 정직하다면, 다 포기하고 이런 종교적 가식―그렇다, 나는 그때 나의 “믿음”이란 게 종교적인 가식이라고 생각했다―을 그만 두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제자훈련 시키고 있던 분들의 애정 어린 인내심, 내가 훈련시키고 있던 학생들이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포기해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베드로가 했던 말이 내게 왔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떠나고 싶으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대답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요6:68)

내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지 않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이 분명한 사실 때문이라는 이 교훈을 나는 그 후로 항상 되새긴다. 믿는 자로서 나는 결코 나 자신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15:1-17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 부르시며 제자들에게 “내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이미지를 포도나무에서 영양분을 얻는 포도송이의 이미지와 연결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말씀을 하셨다.

 

“너희 이스라엘이 포도나무다”

1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라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이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셨는데,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예수님은 포도나무를 익히 잘 알고 있는 농부들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포도나무의 생산물은 그들의 기본 식품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포도밭 이미지를 사용하신 데는 다른,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이미지로 자주 등장한다. 시편 80:8을 보자: “주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뽑아 오셔서, 뭇 나라를 몰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여기서 포도나무는 곧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에스겔 15장과 17장, 그리고 호세아 10:1에서도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동일한 포도나무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15:1과 더욱 분명하게 공명하는 것은 예레미야 2:21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유다, 곧 북 왕조가 멸망한 뒤에 남겨진 이스라엘을 향해 왜 심판이 곧 그들에게 임할 것인지 설명하신다.

“나는 너를 종자가 아주 좋은,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떻게 하여 네가 엉뚱하게 들 포도나무로 바뀌었느냐?”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살짝 비튼다.

“나는 너를 포도열매를 맺는 정말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떻게 하여 네가 쓴 들 포도나무로 바뀌었느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참” 포도나무로 심으셨다. 그들이 포도열매를 맺도록 기대하신 것이다. 에스겔도, 호세아도, 예레미야도 포도열매를 맺는 것은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물론 이 선지자들이 강조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참 포도나무로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예레미야서의 이 말씀을 환기시키시며 당신의 소명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성경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전체로서의 하나님의 백성에 해당하는 명칭을 얻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4:22-2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아들”이요 “장자”라고 부르신다. 사무엘하 7:14에서 (그리고 시편 2:7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계보에서 난 왕들 하나하나를 당신의 “아들”이라 부르신다.

시편 89:26-27은 다윗 왕을 하나님의 “맏아들”이라 부르신다. 더 나아가,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은 주님의 “종”이다(사41:8-9; 49:3). 메시야 또한 주님의 “종”이다(사49:5-6).

구약에서 그 다윗 자손의 왕, 메시야의 직무는 간결하다: 그것은 바로 그 백성을 대변하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그리고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분이심covenant faithfulness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5:1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이해는, 예수님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소명이 참 포도나무가 되는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당신이 다윗의 자손이며, 고대하던 메시야, 참 이스라엘이라고 단언하시는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자신을 누구로 보셨는지 분명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예수님 안에 붙어있는 가지가 된다는 것(요15:2)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성경에서 누군가의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대표하거나 구현하는 무리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이다. 사무엘하 20:1에서 그 적절한 예를 볼 수 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얻을 몫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새의 아들에게서 물려받을 유산은 아무것도 없다.”

메시아 예수님은 다윗 계보의 궁극의 왕이시다. 그 안에서 몫을 얻는다는 것은 그가 다스리는 백성에 속한다는 것이다.[전문 보기: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그리스도인이다]

 


C. John Collins, “Abiding in the 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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