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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그래도 평범할 수 없었던, 그들의 10년아프간 피랍 10주년
인터뷰 김은홍  |  amos@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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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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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사건, 우리는 이렇게 부르고 기억한다. 2007년 7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CTK는 그들을 그 일이 있고 1년이 지났을 때 만났었다. 그들의 10년은 어떻게 흘렀을까? 그들은 이 10년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PHOTO BY 김희돈 / CTK

지난 10년…

제창희: 지난 십년간은…, 사실 아프간에 갔다 왔던 것에 대한 부담감이 계속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에도 저희가 아프간에서 느꼈던 것과 돌아와서 느낀 것은 분명히 아프간 사건은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난 10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많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기간이었어요.

아프간에서 돌아온 후 친구를 통해 보험업계에 들어갔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마음을 주시더군요. ‘교회 안에서는 영업을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제가 아프간에 다녀온 것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신앙을 가진 지인들조차도 저를 신기해하면서도 저에게 자신의 돈을 맡기려는 분들은 거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저를 고립시키시고 그 상황 속에서 저에게 기도하는 법과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셨어요.

그런 기간을 6년 반 정도 보내면서 삶에 대해서 영적인 것에 대해서 많은 걸 경험하고 배웠어요. 아프간 가기 전에는, 신앙을 갖고 있긴 했지만 사실 깊이가 있는 신앙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깊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많이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봅니다. 말씀으로도 많이 다듬어 주셨고, 성령의 임재와 다스림 가운데 지낸 기간이었습니다.

회사를 나온 후 ‘기브래드’—‘기브 브래드’give bread라는 의미입니다—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상품을 팔아 수익금을 가난한 사람들이나 선교지에 공급하는 그런 사업이었지요. 비록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작년에 사업을 정리했지만, 그것이 완전한 실패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사람을 세우는 일을 인생 가운데 하라는 마음을 제 속에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업이 비록 형태는 다를지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제 일생을 통하여 섬길 일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업 정리 후에 하나님께서 신학을 하라는 마음을 주셨고,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1년을 버텼어요. 버티면서 세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우선 아내가 허락을 해야 하고, 박은조 목사님께 말씀드렸을 때 무조건 동의하셔야 하고, 꿈으로도 보여 주시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세 가지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신앙이 없던 저희 가정교회 목원이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찾아와서 제가 교회에서 말씀 전하는 꿈을 꾸었다는 말을 전해주더군요.

주님의 뜻임을 확신한 후, 결국 신학을 시작하게 되어 지금은 고려신학대학원 1학년에 재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몰라요. 앞으로 국내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지…. 다만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제가 늦깎이 신학생이나 전도사로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향후 주님께서 인도하실 길을 순종하기위하여 현재를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의 몫이니 주님께서 이끄시겠죠.

김윤영: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프간 땅에서 다시 나오게 하셨고 두 분의 순교자를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은 ‘자격 없음’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합당하게 그 땅 가운데서 천국으로 불러 주신 분이 있지만 정말 나는 그 자리에는 자격이 없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나가게 하시면 우리는 새로 받은 생명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지난 십년의 생활을 돌아보면 제가 구했건, 구하지 않았건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얻게 하신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아프간에 갈 때 큰아이가 아홉 살이었고 작은 아이는 여섯 살이었어요. 제가 다시 가족을 만날 때까지 샘물교회와 샘물학교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 가족들이 안전하게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지금 두 아이는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 1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간증의 자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 엄마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감사히 여기며 엄마를 인정해 주는 모습을 볼 때 참 감사했습니다. 사실 자녀는 부모의 마음으로 잘 안 되는데, 자녀들이 부모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선교공동체인 보나콤에서 살고 있습니다. 선교지에 양계장을 세우고 현지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참으로 감사한 것은, 세계 각지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많은 선교사님들을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가보지 못한 열방의 끝에서 생명을 다해 주님의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쉬지 않고 빛으로 번져가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머물렀던, 갇혀있었던 집들, 라흐만, 아흐맛, 피다이, 미야존, 포티마, 히야리, 베나지르, 토이바… 그들의 10년은 어떠했을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을 선물로 건넸는데 혹시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 혹시, 복음을 전해 들었을까!

그들이 그간의 10년 사이 혹시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정말 가슴 벅차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선영: 아프간에 있을 때 하루는 죽음을 준비하고 하루는 희망을 상상하며 보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여겨지고 가끔씩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어요. 밥상에서 밥을 먹는 그 순간도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아프간 피랍을 경험하면서 가장 고민하게 된 문제와 충격을 받은 것이 왜 일반인들이 우리를 미움과 지탄의 눈길로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얻은 결론은 ‘기독교가 일반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구나. 하나님이 이 사건을 통해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보는지를 우리에게 제대로 보여주시는구나….’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장벽을 치고 우리만의 언어로 살았던 게 아닌가….’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언어를 들으려고 하는 행동을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프간에 다녀 온 후 세상에 대한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어리석게도 일부러 교회와 멀어져 보기도 하고 안 만났던 세상 친구들도 만나보는 시간들도 가져 봤습니다. 당시 인간 이선영은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든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나서 잘 살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가…’ 긴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답을 주셨고 그때마다 은혜를 주셨지만, 그런 터널 안에서 제가 답을 찾고 구하고 제 연약한 부분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프간에서 돌아와 평범하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난민들을 찾아가 볼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사람이 그냥 아프간 피랍자라는 부담감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심적 부담을 느끼면서 행복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교회에서는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힘들어하는 모습보다는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 터널을 지나오면서 세상 사람들과 잘 융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자칫 잘못하면 내가 신앙적인 괴물이 될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살아났으니까 무엇인가를 해야 해. 하나님만 바라봐야 해’라는 맹목적인 신앙을 갖거나, 너무 힘이 드니까 신앙 자체를 붙잡고 그것으로 모든 걸 합리화 시키려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롭게 사회에서 다시 제 일을 하며 치열하게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피랍자 친구들을 보면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이들이 자랑스럽기도 해요. 그 때의 기억을 통해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신학생이 되기도 하고 아프간에 선교사로 가는 노력을 하는데, 저는 그런 준비를 하지 않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려는 고민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아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제 자신의 희망과 저의 꿈과 제 인생의 최종 목표는 아프간입니다. 아프간에 작은 학교를 만들 꿈도 갖고 있고, 그래서 조금씩 저축도 하고 있고, …어떻게 인도해 주실 줄 모르지만 그것이 최종 꿈입니다. [전문 보기: 평범하게, 그래도 평범할 수 없었던, 그들의 10년]

10년을 털어놓는 게 어찌 쉽겠는가. 말은 눈물이 되어 툭툭 떨어졌다. 텍스트로 옮기자니 유난히 많은 말줄임표들. 그 여운을 메꿀 기술이 편집자에게는 없다. 토를 달고, 풀이를 한다는 것이 주제넘다 싶다.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일 자리가, 10년 전 그들에게 온갖 감정을 가졌던 우리 모두에게 생겼으면 좋겠다. 이제는… CTK 20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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