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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문명의 시대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광식, 임성빈, 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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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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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두 신학교의 신학자이자 총장이신 두 분은 또한 문화와 문명에 대해서도 깊은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의 시대와 현대 문명이 어떠한지, 그 큰 그림을 그려주시기 바랍니다.

   
 

전광식: 문명의 그림을 크게 그려서 설명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20세기와 21세기가 걸친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번영을 구가하는 시대일 겁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루이 14세 시대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글에 보면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네 번의 황금기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페리클레스 시절의 민주정이 꽃을 발했던 고대 헬라, 로마의 공화정 시대,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루이 14세 시대라고 말하면서, 앞선 세 번의 시대보다 루이 14세 시대가 프랑스의 살롱문화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번영을 구가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사실 볼테르가 오늘을 살았다면 과거의 네 시기가 아무리 찬란한 문명이라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훨씬 더 찬란한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기도 한 것이 아니라, 또한 문명의 위기가 보이는 암흑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현대 문명을 야누스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산업과학기술 문명이 정점에 달한 시대이지만, 우리가 정신적으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바라 볼 때는, 환경 파괴나 비인간화를 떠나서라도, 문명의 어두운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역사를 두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에 비유한다면, 20세기 문명은 한편으로는 진보의 밝은 측면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금 말씀드린 여러 가지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위기현상과 더불어 위기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타고 가는 21세기 문명은 문명화와 야만화의 선로를 달리고 있는 역사의 기차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성빈: 저는 현대 문명을 이해하는 데는 몇 가지 축,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도움을 받은 것은, 문명의 발전을 연속성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세계화’의 관점입니다.

오늘날 세계화의 가속화는 세계의 유일한 보편적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실현 시켜 줄 수 있는 과학의 발달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라고 봅니다. 또 오늘날의 세계화 현상이 지난 세기에 진행되어왔던 다양한 세계화현상과 차별되는 점은 과학기술의 발달, 그 중에서도 특별히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상당한 의미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에는 인공지능AI 기술과 같은 4차 산업혁명으로까지 연결되고 있어서, 우리가 현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현대에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신학을 하는 사람들, 신앙인들은 인간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복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교회 안에서만의 개혁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의 개혁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의 발달과 문명사회 전환이 상당히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우리는, 미시적으로 교회 안에서 바꾸어야 할 것도 중요하지만, 종교개혁의 세계사적이고 문명사적인 의미를 같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포착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관점 중의 하나가 세계화의 관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한편으로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던 문화로의 전이, 여전히 전근대와 포스트모던이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지만 그러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포스트모던 문화의 득세라고 할까요,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더 예민하게 포착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현대 문명을 논할 때 과학의 변화와, 과학의 변화가 가져오는 삶의 정황의 변화에 따른 문화의 변동, 그리고 과학과 문화의 변동에 따른 사회 변동이라는 복합적인 현대문명 양상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오늘의 문화를 추동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근대적인 주체와 전근대적인 주체에 대한 의심과 그런 인위적인 권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도전하고 흔들어 놓은 것은 한편으로 공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에는 주체성의 기반을 너무 흔들어 놓으니까 현대인들이 비판성은 뛰어나지만 결국은 자기 주체에 대한 것은 찾지 못해 흔들리는 자기 주체성을 소비문화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현대자본주의의 소비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오늘날 문화를 추동하는 힘은 자본주의 소비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본주의 소비문화는 사회문화 곳곳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여기서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세계화, 디지털화로 상징되는 과학과 커뮤니케이션의 변화, 포스트모던 문화와 소비문화가 현대 문화를 복합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또한 현대 교회에도, 신앙인들에게도 상당히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전광식: 임 총장님께서 현대 문명과 현대 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를 다 말씀하셨습니다. 세계화라든지, 인간주체의 문제라든지, 과학이라든지, 컴퓨터라든지, 소비라든지, 이것들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상세한 부분들을 말씀해 주셨는데, 말씀에서 두 가지 핵심을 잡는다면, 세계화와 인간의 주체화는 모더니즘적인 측면을 말씀하신 것인데, 거기에서 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가면서 주체의 위기를 암시하셨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문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가 중요한데, 문명화라는 것을 달리 말하면 근대화인데, 이 근대화를 향해 인류가 지금껏 달려왔습니다. 근대화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우리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합니다만, 종교개혁과 같이 일어난 르네상스 계몽운동을 통해서 중세의 아욱토리타스auctoritas, 권위적인 시대를 극복하고 근대의 인간 이성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와 시금석으로 등장하면서 여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근대의 경험적 이성으로 과학이 등장하고, 과학의 원리를 응용하다 보니까 기술화로 이어지고, 기술을 사용하여 물건을 생산하고 생활에 필요한 걸 만들다 보니까 산업화가 진행이 되었고, 산업체와 거기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모여사니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도시라는 게 어떻게 말하면 “뜨내기들의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향 떠나서 모여든 사람들이 여기서 좋은 삶, 출세, 성공을 추구하다 보니까, 즉 도시가 욕망을 지닌 집단이 되다보니 고향에서 느꼈던 상호소통은 전혀 되지 않고 인간 소외 현상, 물화 현상이 빚어지게 되었고, 거기에서 돌파구를 찾고 삶의 위로거리를 찾게 되다보니 문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화→과학화→기술화→산업화→도시화→문화화의 과정으로 내려오면서 현대 문명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 전체를 보면, 주체로서의 인간이 역사의 축이 되어 온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20세기에 와서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인간의 위기입니다. 기독교 철학자 헤르만 도예벨트 같은 사람이 그렇게 접근했을 뿐 아니라, 에리히 프롬 같은 사람도 19세기 인류 사상의 키워드는 “하나님의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도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했고, 다윈도 창조자의 부재를 이야기했으며, 마르크스도 그의 스승인 포이에르바흐도 신은 허상이라고 주창했습니다. 이처럼 19세기의 키워드가 ‘하나님의 죽음’이라면, 20세기의 키워드는 ‘인간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문명화가 이뤄지고 세계화가 되었으면 인간의 능력과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의외로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반성해 보니까 문명 이면에 인간의 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위기는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데, 예를 들어 신학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고 우리를 청지기로 삼으셨는데 하나님의 역사 개입 같은 것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중심이 되어 역사를 이끌어 가고, 하나님이 만든 것보다는 인간 자신이 만든 것으로 무엇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인간이 청지기가 아니라 지배자요 왕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돌아보니 인간의 승리가 아닌 인간 위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20세기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봅시다. 세계대전, 인간대량학살부터 시작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훼손에 이르는 환경오염, 인간소외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인간이 잘 사는 것을 추구했지만 오늘날에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면서 존재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전반적으로 문명은 인간 주체를 외쳐왔지만,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이 시대 문명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 위기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이 원자폭탄 같은 대량학살무기로 인간을 대량살상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인간 자체를 개조하려는 초기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바로 여기에 말 그대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침 CT의 이번호 커버스토리 주제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로봇이 당신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입니다.

임성빈: 최근의 담론들에 두 가지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 같은 분들이 요즘 뇌 과학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면, 매우 우울해집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것이 모두 착각이고 환상이다.” 이러한 비관적 관점은 결국 인간이 노예화될 것 같은 위기감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반대편에 있는 분들은 매우 대조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구이지 그것이 인간을 지배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이것은 굉장히 낙관적인 전망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두 그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양쪽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칫 너무 비관적인 관점에 치우치면 현재 상황에 대한 개선의지가 약한 묵시론자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을 어린 시절 참석한 부흥회에서 요한계시록을 통해 너무 과하게 겁을 먹고 종말론적인 묵시적 겁박을 당하는 것으로 비유하셨던 경희대 이경전 교수의 조언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은 사실부합성이 좀 의심이 됩니다.

저는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스 큉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찬성하고 반대한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오는 현상들이다. 이것을 아주 악마화하는 것도 문제고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사실 부합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기에 이것은 규제되어야 되고 인간이 개입해야 된다.” 문명의 변화, 문화의 전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에 있어서 한스 큉의 이 입장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주체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인간은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결국 양극화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봅니다. 그 때 과학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본분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훨씬 더 신앙적인 인간관, 특별히 청지기 의식의 강화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8:2보다 9:1로 더 심화될 양극화가 도처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면, 능력 있는 이들이 그것을 자기 육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를 극복하고, 전체 우주와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는 정도의 안목과 비전을 가진 신앙인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문 보기: 과학기술 문명의 시대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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