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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찬양 사역자들을 위한 조언
위트코프스키, 환, 잉갈스  |  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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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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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하게 집중하라


배 음악을 이야기 할 때, 공연은 어쨌거나 좋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공예배의 어떤 순서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공연자이다. 아무 준비 없이 또는 흐트러진 자세로 예배 순서를 인도하고 싶어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예배에서 음악 공연이 남용된다는 인식은 아마도 회중의 참여 없이, 솔리스트든 앙상블이든, 자신들의 음악적 기술을 강조하고 재능을 과시하는 음악가들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바흐는 예배에서 오르간을 과하게 연주한다는 비난을 들었었다. 

예배가 “공연”을 지향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대체로 개별 예배자의 경험과 기대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도하게 해 주는 것이 된다. 음악에 대한 취향에 따라 예배자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예배 공간의 건축 구조이다. 공간 자체가 인도자를 예배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공연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기술―음향, 조명, 영상―이 정교하면 할수록, 음악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공연자로 선을 넘을 가능성과 그 때문에 일부의 불평을 살 가능성은 높아진다.

인도자의 음악적 재능은 적절히, 곧 그들의 메시지가 성경에 충실하도록, 어떤 식으로든 기도―찬양, 경배, 감사, 고백, 중보, 축도, 축복―와 이어지도록, 그리고 회중이 드리는 찬송과 균형을 이루도록 사용해야 한다. 바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그리고 과거 다른 여러 음악가들이 사용했던 송영 ‘솔리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가 아마도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배 음악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조금 확장하면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 자리에 모인 믿음의 공동체의 예배를 위해.”

C. 마이클 환 New Songs of Celebration Render의 편집자이며, 남감리교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교회음악 교수이다.
 


경청하고, 신뢰하고, 개선하라

즉흥연주를 중시하는 재즈를 비롯한 여러 음악 양식들은 살아있는, 숨을 쉬는 교회의 모범을 반영할 수 있다. 재즈 캄보Jazz Combo는 개별 부분들보다 큰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하는 공동체의 축소판이다. 각 연주자에게는 솔로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반주로 다른 솔로연주자를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모두 있다. 이 음악 반주는 사전에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솔리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는 것에 호응하면서 일어난다. 이것은 서로의 연주를 경청하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재즈 연주자인 나는 나 자신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 내 앞에 있었던 대가들을 연구했다.

재즈 캄보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앙상블 연주자들을, 그리고, “모두가 잘 되어야 한다”는 노르위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이 했던 말의 의미를 오롯이 신뢰해야 한다.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들이 다음에 무엇을 연주해야 할지 반드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환경을 알고 있고, 고도로 발달한 음악적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으며, 모여 있는 사람들을 고양시켜 줄 수 있는 소리를 창조하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음악 사역자들에게 이상적인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아나 위트코프스키 뉴욕 파크에비뉴교회의 임시 음악 사역자이다. 최근에 새 음반 <Raindrop: Improvisation with Chopin>을 냈다. 



음악적 모험을 하라

예배 인도자이자 뮤지션으로서 우리는 예배를 인도할 때 “공연”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회중을 예배로 인도하는 것과 군중에게 유흥과 즐거움을 주는 것을 혼동할 때 우리는 “공연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의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의 회중이 찬양을 하면서 볼 수 있는 전부가 대형 스크린에 비췬, 한껏 조명을 받은 뮤지션의 얼굴뿐이라면,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예배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할 수 있을까?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공연주의는 성도의 참여보다 미적 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많은 집회가 모인 사람들의 소리를 받쳐주기보다는 지배하는 “완벽한” 사운드 벽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하는 예배는 주일아침 찬양보다 훨씬 더 크다. 이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형성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성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 그들이 의미 있게 예배에 참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시대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 공연주의는 인도자들이 특정한 예술적 또는 음악적 기대들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자주 발생한다. 우리는 영향력 있는 교회와 기독교 미디어 산업에서 나온 모델들을 채택하라는 지속적인 압력을 받는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의 음악과 예배가 지역 교회의 맥락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대중 인기도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우리가 섬기는 지역교회의 회중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노래와 양식과 메시지를 가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음악적 모험을 시도하라. 실험하라. 우리가 고정된 음악 양식―팝록이든, 가스펠이든, 오르간 연주 찬송이든―만 고집할 때, 우리의 능력만을 믿기 쉽다. [전문 보기: '공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모니크 M. 잉갈스 곧 나올 The Spirit of Praise의 공동편집자이며 베일러대학교 음악과 부교수이다.
 

Deanna Witkowski,  C. Michael Hawn,  Monique M. Ingalls, “How can worship leaders and musicians avoid the temptation to ‘perform’?” CT/CTK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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