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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사건 10년, 성찰의 3650일아프간 피랍 10주년
인터뷰 김은홍  |  amos@ct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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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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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이 발생하고 그 다음 해인 2008년 7월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과 대담을 하셨습니다. “사건 1년, 성찰의 365일”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제목을 잇자면, 이번 타이틀은 ‘사건 10년, 성찰의 3650일이 될 것입니다. 2007년 그 한 해만이 아니라 지난 10년은 단순히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우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Photo by 김희돈

23명이 아프간에 갔다가 두 명이 순교하고 21명이 돌아온 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아프간 땅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논산훈련소 다녀온 사람들이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탈레반 비슷한 사람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면 꺼버렸습니다.

그런데 그해 2007년 연말에 어떤 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인데, 장로라고 하면서 꼭 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났더니, 아프간에서 사역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그 장로님이 아프간 피랍 사건 보도를 보고 ‘아, 저 박 목사라는 사람이, 샘물교회가 아프간을 위해서 일하도록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구나!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겠구나!’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프간 생각은 안하고 살려고 했는데, 상처가 너무 커서 내 남은 인생은 아프간과 상관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연말을 보내고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아프간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고, ‘내가 그들을 섬겨야 하는 구나’ 느끼면서 그 장로님이 하는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아프간에 피랍 당시 23명 중 셋이 선교사였고 20명은 봉사자였습니다. 나중에 선교사 중 두 분은 다시 선교하러 나갔습니다. 한 사람은 (건강 때문에 잠시 한국에 와 있지만) 런던에서 아프간 난민 사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W선교회를 통해 K국에서 아프간 난민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신학대학원 3학년이었던, 저와 동갑이 한 분 있었습니다. 장로로 있다가 늦게 신학공부를 하고 신대원 3학년이던 그해 여름에 좀 힘든 봉사지에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아프간에 따라 가게 되었다가 그만 붙잡혔습니다. 그 분은 그때 살아 나오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아 약을 계속 복용해야하는데 2주일 치만 가지고 갔거든요. 약을 먹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미 50대 중반으로 나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약을 정부를 통해 몇 번 보냈습니다만, 나중에 보니까 못 받았더라고요. 그런데 멀쩡하게 나왔습니다. 이 분이 지금 아테네에서 아프간 난민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쉼터도 만들고 아프간 교회도 세웠습니다. 아프간 사람들을 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돕는 선교사들 중 한 분이 바로 이 분입니다.

이 분이 아프간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40일간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 지내야 했던 그 억류기간 동안에 아프간을 마음깊이 품고 돌아왔습니다. 당시 탈레반이 피랍자들을 주로 탈레반을 지지하는 가정들에 분리해서 숨겼습니다. 미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였지요. 그러면서 피랍자들이 아프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들과 얘기도 하고 밥도 먹었답니다. 형편이 좋은 집으로 간 한 팀은 그들이 닭도 잡아 주기도 했다지만, 대부분은 먹을 것이 없어 쩔쩔 매는 사람들이 탈레반 윗사람들이 그냥 집에 데리고 있으라고 하면 한 며칠 데리고 있어야 하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아프간 사람들의 삶을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그들의 애환을 다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분은 아프간 사역자로 살아야 된다는 마음을 갖고 돌아왔던 겁니다.
 

   
 

당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논산 훈련소 얘기도 하셨습니다만, 그 기간에 탈레반만 미웠던 것이 아니라 아마 한국에 있는 많은 언론들이나 많은 공격들이 있었는데,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사실 초기에는 한국 언론이나 한국 사회가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누가 욕을 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정부쪽 사람은 저에게 와서 남자 여섯 명이 다 죽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저쪽에서 한 사람씩 죽이면서 압박을 가하는 이유가 아프간 정부에 잡혀있는 탈레반 포로들을 풀어내기 위해서 인질을 붙잡은 겁니다. 돈 때문에 붙잡거나 선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붙잡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부쪽 전문가들이 볼 때 탈레반이 여자들에게는 손을 안 댈 것 같은데 남자들이 다 죽을 때까지 압박을 가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요. 한 사람 죽을 때마다 피눈물이 나는 상황이고 두 번째로 죽었을 때는 정말 멍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여자 두 사람을 풀어주었습니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전에 국가를 만들어서 경영했던 사람들이기도 해서 세계 여론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죽일 건가 말 건가 고민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나 아프간 정부에서는 절대 못 풀어 준다고 버티니까 그 방법을 포기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한 겁니다. 돈 얘기를 했다는 말은 풀어주겠다는 신호였습니다. 돈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 과정에서 비로소 기사들을 보니까 엄청나게 욕을 하고 있더라고요. 주로 욕을 먹고 있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그때 당시 국가의 고위 관리 한 사람이 언론 책임자들을 불러 놓고 브리핑을 할 때 ‘샘물교회가 가지 말라고 했을 때 안 갔으면 좋을 뻔 했는데’라는 말을 했던 겁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언론은 저희를 그렇게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언론의 총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공격을 받으면 교회가 문을 닫을 수 있겠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에 공격이 계속 되는데 기자들이 100명 가까이 저희 교회에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와서 저녁에 퇴근했지요. 그 중에 두 사람이 따로 저를 찾아 왔었습니다. 젊은 남자 두 명이었는데 이분들이 저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언론이 팩트와 상관없이 무조건 공격을 해대는 것이 너무 죄송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모 언론사 기자 중 하나는 나이가 28세인가 29세 밖에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눈물을 제 앞에서 뚝뚝 흘리면서 목사님 제가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목사님께 사죄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언론이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너무 고마웠습니다... [전문 보기: 아프간 피랍 사건 10년, 성찰의 36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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