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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됨까지 바꾸려는가?
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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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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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산업혁명은 또한 기술혁명이었습니다.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 한 대는 졸지에 방직공 7명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괴물이었습니다. 잇달아 새로운 기계들이 발명되면서 산업 생산성은 혁명적으로 신장되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 번영의 몫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있던 일자리에서마저 밀려났습니다. 좌절하고 분노한 그들은 야밤에 공장에 숨어들어가 “기계”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들이 “러다이트”입니다. 이후의 2차, 3차 산업혁명 역시 1차 산업혁명과 동일한 경로를 걸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면 가장 앞선 사람이라도 된 듯,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기술혁명과 장밋빛 미래의 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돌아보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장밋빛 희망이 아니라 빨간색 경고등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의 기술혁명을 더 겪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가 거론하는 최신의 “4차” 산업혁명은 말 그대로 “인간 없는” 산업, “사람이 필요 없는” 경제를 큰 그림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오고 있습니다), 인간됨의 규정에서 ‘노동하는 인간’이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따져 물어야 합니다.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대한 규정 자체를 흔드는 시도를 버젓이 하고 있는 오늘의 시대정신에 우리는 맞서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세상이 정말 그렇다면, 인간을 노동에서 완전히 소외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인공지능 로봇)의 경계를 허문 ‘비인간’을 양산해 내는 세상이 될 것이라면,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우리는 과감히 (“앞선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아니오”라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뭐라 하든,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 외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평화적 ‘러다이트’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창조 내러티브”라 부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더 전해 드립니다. ‘아프간 10년’의 기억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두 분’을 기억하는 글입니다.

예수 믿기 참 쉬운 데 살아서 예수 따르기 참 어려운 우리입니다. 예수 믿기 너무나 힘들어 목숨을 내놓고 예수 따르는 이들을 돌아봅니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마태복음 5:11) CTK 2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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