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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려거든
앤드류 윌슨  |  Andrew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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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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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SPIRITED LIFE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 자랑, 바울이 끊임없이 경고한 것들 가운데 하나인 이것을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무시한다. 자랑에 대하여 생각하기 딱 좋은 해이다. 사소하게는, 미국의 공적 담론에 전에 없이 많은 자랑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구적인 의료 개혁을 이룰 것이다, 이슬람국가를 몰아낼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에게, 이 종교개혁은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라는 교회를 향한 부르짖음이었다. 신학적으로는, 오늘의 교회가 ‘자랑’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이 개념을 몇 편의 짧은 편지에서 여러 번 언급했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자랑”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상당히 유아적인 우리의 관점일 수 있다. 현대인들의 귀에는 자랑이 6살짜리 아이가 “우리 아빠는 너희 아빠보다 힘이 더 세”라고 말하는 것이나, 프로레슬러의 허세, 아니면 아마도 어떤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말라고 바울이 꾸짖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는 자랑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전장에 나갈 때, 승리를 자신하면서 자랑했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자랑했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삼상17:44) 적군의 전령들은 예루살렘 앞에서 자랑했다: “나의 상전께서 나를 보내셔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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