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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증언순교 10주년 되새긴 샘물교회
박명철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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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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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물교회는 19년 전, 그러니까 1998년에 서울영동교회가 분립하여 세운 교회이다. 담임목사이던 박은조 목사가 직접 20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성남시 분당구에 새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10년이 안 되어 6000명 가까운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지역 사회와 한국 기독교계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끼쳐 온 샘물교회는 2007년 여름에 와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 단기봉사단이 이 나라 반군들인 탈레반에게 납치되면서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따뜻한 온정으로 마음 모아 기원해야 할 때에 차갑고 매서운 손가락질과 악성 비난들이 오히려 많았다. 피랍된 23명의 형제자매들이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아프고 억울한 웅웅거림을 고개 숙이며 들어야 했다.

피랍 소식이 전해진 7월 19일부터 석방되어 귀국한 9월 2일까지 46일 동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의 희생이 아픔을 곱절이나 더해주었다. 안에서 견디는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샘물교회를 바라보던 성도들까지 샘물교회가 대체 이 고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해 여름은 두렵고 간절하고 아프고 슬프면서 먹먹했다. 언론에서 샘물교회의 뉴스들이 사라져 사람들에게 잊히기만 오히려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피랍 기간을 보낸 형제자매들이 그 상처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온 형제자매들이 퇴원하여 가정으로 돌아오고,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샘물교회는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그때까지와는 다른, 특별한 교회 설립 9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그때 희생된 두 사람은 순교자로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거울이 되었고, 피랍되었다가 돌아온 이들은 일상에서 다시 자신들의 삶을 꾸려왔다. 샘물교회는 다시 은혜샘물교회, 좋은나무교회로 분립하여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로 거듭났다. 세 교회에는 새 목회자들이 세워지고 나름의 교회 공동체 문화를 일구며 지난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7월 23일, 세 교회가 샘물교회에 함께 모여 순교 10주년 기념주일을 지키면서 연합예배를 드렸다. 10주년 기념행사는 조용하면서도 알차게 보내자는 교회의 생각이 엿보였다. 연합예배와 함께 순교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선교포럼을 가졌고, 샘물교회에 마련된 순교자기념관 입구에 기념 조형물을 걸었으며, 온라인 ‘아프가니스탄 순교자기념관’을 열었다. 행사 장소에는 아들과 아우를 떠나보낸 순교자의 가족과 피랍되었다가 돌아온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것은 모두 나름의 증언이었고 함께한 이들은 그 증언들을 공감하여 몸에 담은 뒤 제각각의 자리에서 쏟아내어 살고자 마음먹었다. 증인인 셈이었고 증인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며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다짐의 자리이기도 했다.

샘물교회 박상은 장로는 피랍자들이 돌아와 치료받은 샘병원의 대표원장으로 순교자 유가족과 피랍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봐 온 또 한 사람의 증인이다. 그는 그해 여름이 지난 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순교자의 유품이 돌아왔을 때를 기억했다.
 

   
 

“배 목사의 시신을 덮은 담요가 있었다. 피로 물든 빛바랜 붉은 담요를 보는 순간 나는 사진으로 본 붉은 산악지대 아프가니스탄이 떠올랐다. 황량한 사막과 메마른 시내, 그리고 전쟁의 폐허가 자욱한 사진 속의 아프가니스탄을 볼 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물들여져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순교자의 피가 묻은 담요를 보면서 다시 그 생각이 겹쳐졌다. 담요를 펼쳐보니 담요 속엔 놀랍게도 수십 마리의 구더기들이 그 피를 빨면서 뒹굴고 있었다. 순교자의 피를 먹고 통통하게 살찐 구더기를 보면서 나는 또 뉴스를 통해 본 탈레반들의 훈련모습이 떠올랐다. 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의 황량한 사막을 이리저리 뒹구는 탈레반들…. 그런데 얼마 지나서 나는 구역질나던 구더기의 모습에서 날개가 돋아 훨훨 창공을 나는 나비들의 환상이 겹쳐졌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프간이여 순교자의 피를 마셔라. 탈레반이여 순교자의 살을 취하라. 눈물의 땅 아프가니스탄이여 이제 기쁨의 땅이 되리라. 순교자의 피가 샘처럼 솟아올라 눈물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적셔주소서. 이 땅을 새롭게 하시고 비로소 새 생명을 잉태하게 하소서.”


배형규 목사의 벗으로 내 친구 배형규(우리가 만드는 책)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낙도선교회의 박원희 목사는 배형규 목사가 아프가니스탄에 가기 전날, 나눈 전화통화 내용 중 몇 마디를 소개했다.
 

“나, 내일 아프간에 가!”

“거기 위험한 곳 아니야?”

“목사가 위험한 곳 가야지 누가 가니?”

“그렇네. 갔다 와서 만나자.”
 

박 목사는 그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면서 순교자가 된 배형규 목사가 남긴 아름다운 정신을 샘물교회의 교우들에게 당부했다.
 

“내 친구 배형규 목사의 두 가지 신앙의 기둥은 사랑방 신앙과 순례자 정신, 나룻배 정신이 빛나는 단기봉사 신앙이다. 사랑방은 삼위 하나님의 사귐이 지체 안에 이루어지는 사랑공간으로, 이 공간에서 우리가 삼위 하나님의 영광의 사귐을 누림으로써 하나님의 공동체를 확산하게 되며, 이런 행위가 곧 선교이다. 선교는 프로그램이나 과업이나 교회의 행사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의 사귐이며 그 사귐의 확장이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귐으로 직장동료를 대하는 것, 가정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귐으로 부부가 사귐을 하고 자녀와 사귐을 하는 것,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본성으로 사귐을 하는 것, 목장 식구들이 사귐을 하는 것, 더 나아가 지역사회 주민과 타민족의 사람들과 사귐을 하는 것이 광의적 의미에서 선교이다. 내 친구 배형규의 삶은 곧 사랑공간의 확장으로서 선교인 셈이었다. 그는 단기봉사라는 특별한 실천을 통해 그 사랑 공간의 확장을 다른 누군가에게로 실어 나르는 순례자이자 나룻배처럼 살고자 했던 친구였다. 하나님의 영광과 선을 누린 사람은 마땅히 순례자가 되어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간다. 배형규는 단기봉사를 통해 우리 인생은 나그네이며, 나룻배이며,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라는 사실을 그의 제자인 청년들에게 심어주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의 선교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우리들은 마땅히 단기봉사 등의 선교적 행위를 통해 사랑 공간을 확장하는 나룻배나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


어느 교회나 나름의 신앙적인 고백을 담아 부르는 노래들이 있게 마련인데 샘물교회는 2007년의 여름 이후 ‘순례자의 노래’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두 곡의 노래를 많이 불렀고,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시울을 적셨다. 순교 기념 주일 예배에서도 성도들은 이 노래를 연주하고 불렀다. 피랍되어 함께 그 시간을 보낸 형제자매들이 ‘순례자의 노래’를 부를 때 부르는 그들은 물론 듣는 성도들도 함께 눈물 흘렸다. 눈물 흘리지 않고 부를 수 없는 노래를 가진 사람들, 그들에게 남은 순교자들의 마음이 여전히 뜨거웠다.

특히 장애인들을 위해 살고자 한 심성민 형제의 스승인 이헌주 목사(말아톤복지재단 상임이사)는 10년 전 그 일이 한국 교회에 던진 개혁의 과제에 대해 파고들었고, 거기서 두 사람의 순교정신이 보여주는 희망에 대해 전망하였다.
 

“2007년 아프간 피랍사건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선교 행위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비기독교인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그때 피랍자들의 무사생환을 위해 함께 걱정했고, 이런 점에서 교회는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우리는 또 교회 밖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뚜렷이 알게 해주었다. 그때 우리는 너무 당황했다. 그 원인은 권력화하고 자본화되고 세속화된 교회가 ‘밟히고 마는 소금’이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교회의 현실이다. 아프간 피랍 10년이 되는 오늘 우리는 이런 교회의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 앞에 서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하나의 길을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의 순교현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탈레반의 총구 앞에서 서로 먼저 죽음의 자리로 가겠다며 입씨름을 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것이다. 어쩌면 이 길은 예수님이 먼저 가신 길이다. 우리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본받아 예수님의 길을 가는 제자의 삶을 살 때 싸늘하게 바라보는 교회 밖의 눈초리를 거두게 할 수가 있다.”

 

   
 

샘물교회는 이미 마련한 순교기념관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꾸미면서 기념 조형물을 제작했다. ‘흔적’이라는 이 작품은 목재 피죽을 재료로 사용하여 이상만 작가가 제작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작품설명을 남겼다.
 

“믿음으로 승리하세요. 가시기 전 마지막 하신 그 말씀이 가슴에 젖어 망울집니다. 조용히, 세상에서 복음이 전해지길 원하시는 임들의 마음을 찢기고 잘린 나무들의 결속에 담아 숨겨두었습니다.”

“찢기고 잘린 나무들의 결속”이라는 문구를 거듭 읽고 또 묵상했다. 거기 먼저 떠난 이들의 마음을 숨겨두었다는 작가의 수수께끼 같은 설명이 그 자리에 오래 서 있게 만들었다. 10년 동안 “조용히, 세상에서” 복음을 살아왔을 샘물교회의 사람들, 그들이 이야기할 증언은 또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2007년, 그해는 100년 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 교회가 들썩거릴 때였다. 누구나 회개를 촉구했으며, 수많은 집회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7년, 올해는 루터가 비텐베르크성교회에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한 지 500년을 맞는 해이다. 이른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역시 한국 교회는 앞 다투어 ‘다시 개혁’을 부르짖는다. 마땅히 해야 할 숙제와 길이 여기 있다고 손짓하는 요청으로 우리는 오히려 혼란스럽다. 그 10년의 시간 속을 한국 교회의 또 다른 공간에서 어쩌면 아주 색다른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아프가니스탄 피랍과 순교의 아픔을 지나오며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깨달아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깨달음이 회개니 개혁이니 하는 구호보다 더욱 큰 울림이 되어 그들 안에서 둥둥 울리고 있지 싶었다. CTK 2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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