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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에게 귀를 기울이라“설교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이다”
해돈 로빈슨  |  Haddon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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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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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의 대가 해돈 로빈슨 교수가 2017년 7월 22일 별세했다. 주옥같은 글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 자매지 리더십 저널의 오랜 기여자였던 그를 기리며 그의 글 한 편을 싣는다.

 

‘설교’ 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고등목회학연구소가 교인들에게 물었다. 쓰디쓴 충고가 돌아왔다. “분석은 너무 많고, 답은 너무 적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삶과 동떨어져 있다.”

“뜨거운 공기를 내뿜으면서 수면 위를 떠다니는 호버크래프트 같다. 그런데 이 호버크래프트는 어디에도 내려앉지 않는다!”

“다들 자고 있는데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는 순수 예술” 같다며 설교를 조롱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별로 놀랍지도 않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설교를 ‘종교적 독백’이라고 일축한다. 최고의 소통은 쌍방향으로 오가야 하는데 설교는 일방통행만 한다고 지적한다. 설교를 듣고 있는 회중이 설교에 대한 의문점이나 동의하지 않는 점이나 개인적인 견해를 바로 표명할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설교가 많다고 그들은 말한다.

또 하나의 비판은 설교자들이 너무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 한다는 것이다. 회중은 지난 주 설교 내용도 아직 소화하고 흡수하지 못했는데, 설교자는 회중에게 또 다른 새로운 개념들과 새로운 의무들을 부과한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설교 컨베이어 벨트를 멈출 수 없으니, 좌절한 청중은 아예 듣는 것을 포기한다.

독백은 유전병처럼 설교자를 괴롭히고, 한때 유행했던 대화식 설교실험도 한물간 무선 라디오처럼 사라졌다. 게다가 신학교에서 ‘콘텐츠가 왕’이라고 교육 받은 설교자들은 ‘빈 물병 오류’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그들은 빈 물병에 물을 채우듯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넣어주는 것이 능사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책과 주석, 예전 강의노트에서 물을 끌어 모으면서도,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정말 가치 있는 자원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은사와 지식과 열정의 소유자이지만, 그들은 주석서를 읊조리는 설교를 할 때가 많다. ‘빈 물병 오류’를 잘 요약하고 있는 싸구려 시가 한 편 있다.
 

밀어 넣어라, 쑤셔 넣어라,

텅 빈 그들의 머리에.

채워 넣어라, 부어 넣어라,

텅 빈 머리에 넣을 것은 그래도 많으니.
 

머리는 열려 있지도 텅 비어 있지도 않다. 머리에는 뚜껑이 있다. 머리는 꽉 닫혀있다. 억지로 쏟아 붓는다고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머리는 그 소유자가 그럴 필요를 느낄 때만 열린다. 열리더라도, 아이디어들은 여러 층―경험, 습관, 편견, 두려움, 의심―을 통과해야 한다. 아이디어들이 온전히 통과한다면, 그것은 피드백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이 운전 습관이 연료 소모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운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연비 게이지를 일부 모델에 부착했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그 계기판의 바늘이 뚝뚝 떨어진다. 반대로, 부드럽게 운전하면 바늘은 올라간다. 이러한 피드백이 연료를 낭비하는 행동을 바로바로 알려준다.

설교가 제로-피드백 상황, 반응 없는 독백처럼 보인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독백으로 치닫는 설교는 망가질 수 있다. 훌륭한 설교에는 언제나 대화가 들어있다. 현명한 설교자는 자신의 눈과 귀로 자기 입을 움직이다. 그런 설교자는 강단에 서서 청중으로부터 오는 신호에 반응하여 자신이 지금 어떻게 설교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 그는 내용만 연구하지 않는다. 그는 청중도 연구한다. 곧 청중이 그에게 던지는 유무언의 질문들에 귀를 기울인다. 설교 후에도 그는 귀를 기울여 자신이 어떻게 설교했는지 확인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중요한 피드백이 설교 중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설교를 듣는 것은 수동적인 행동처럼 보이고, 이것이 주일 예배 “관객들”이 즐기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능숙한 커뮤니케이터들은 눈으로 듣는다. 그들은 청중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동의하는지, 질문이 있는지, 또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지를 표정과 몸짓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짓고, 시계를 쳐다보고, 앉아서 몸을 비튼다. 훌륭한 교회들이 성도들의 피드백을 통해 훌륭한 설교자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많지만, 훌륭한 설교자가 훌륭한 교회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그만큼 많지 않다. 훌륭한 회중은 설교를 온몸으로 경청함으로써 자기네 설교자가 홈 코트의 이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렇지만 피드백은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 이미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들은 다른 강연자들보다 유리하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은 청중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날마다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점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점을 살리려면, 설교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도들이 던지는 질문에, 그리고 성도들이 찾는 답을 찾기 위해서 경청해야 한다. 설교자는 관찰해야 한다. 성도들의 필요들(표현하는 안 하든,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관계들(개인적인 관계, 가족 관계, 지역사회 관계), 경험들, 태도들, 그리고 관심사들을 말이다. 관찰하는 것을 매일 적어두면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기록한 메모를 보면서 어떤 성경말씀을 택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설교의 색깔과 모양을 잡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설교자가 성경으로부터 진리를 취하고 그 진리를 전할 다양한 예화를 매일의 삶에서 직접 찾아내도록 해보라. 그러면 그 설교자는 세상과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건네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회중과의, 그리고 더 넓은 세상과의 이와 같은 대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역자 존 스토트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더욱 예민해지기 위해 매달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그들은 중요한 책들―기독교서적이 아니라 일반 서적들이 대부분이다―의 사상과 함의들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탐구했다. 그들은 함께 영화나 연극을 본 다음에 교회로 돌아와서는 그들이 본 것을 토론하기도 했다.

스토트는 현대의 이슈들에 관해 설교할 때는 임시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여 그 문제들에 어떤 인격적 차원들이 있는지 듣고 배웠다. 그는 어떤 그룹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지만, 어떤 그룹에서는 서로 다른 다양한 논점들이 오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자리에서 받은 도전의 결과물로서의 스토트의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적이면서도 다음 주 시사 매거진만큼이나 참신했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대도시나 부자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나 그런 그룹들을 만들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일면 합당한 지적이기도 하지만, 시골이나 가난한 도심 지역에 거주하는 보통 사람들도 삶의 실제적인 이슈들과 씨름하고 있으며, 목회자와 현실의 삶을 토론하고 생각을 나눌 기회를 갖고싶어 한다.

크든 작든 교회는 피드백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아이오와에 있는 한 교회는 다음 주일 설교본문을 갖고 주중에 성경공부를 함으로써 독백을 대화로 바꾸고 있다. 이 교회의 목회자가 해당 본문을 설명하고 나면, 성도들은 소그룹으로 나눠 그 의미와 함의를 스스로 탐구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그 목회자는 자신이 제시해야 하는 용어와 아이디어와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설교를 위한 예화와 적용을 발견하는 추가 이득을 얻기도 한다. 놀랍게도, 모든 사람들이 사전 본문 공부가 다음 주에 있을 설교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더 고취시켜준다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성경본문의 내용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설교자가 그 내용을 어떻게 다룰지 호기심을 갖게 된다.

오리건에 있는 어느 작은 교회의 목회자는 제직들과 함께 매주 목요일 아침 식사를 하면서 다음 주일 설교를 검토한다. 참석자들이 먼저 본문을 읽고 나면, 그 설교자는 몇 분 동안 그의 메시지의 개요를 그들 앞에서 스케치해 준다. 그 다음에 토론이 이어지는데, 각자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체 회중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나눈다. 그 설교자는 설교 준비를 혼자 틀어박혀서 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의 통찰과 경험으로부터 혜택을 얻고 있다.

설교를 큰 소리로 예행연습 하는 것도 피드백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존 웨슬리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하녀에게 그의 설교를 읽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일러주었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나 구절이 있으면, 내가 읽는 것을 멈추게 해 다오.” 이런 연습을 통해 이 박식한 감리교 설교자는 광부와 시장의 언어를 설교의 언어로 계발해 낼 수 있었다. 많은 설교자들이 웨슬리의 이러한 모범을 따랐다.

심지어 자기 아내에게 이런 연습을 하다가 결혼생활에 위기를 맞은 설교자도 있었다. “더 좋을 때나 더 나쁜 때나” 남편을 사랑하겠다고 결혼서약을 한 설교자의 아내가 남편의 설교에 대해서 지난 번 설교보다 더 좋은지 나쁜지 건설적인 비평을 했기 때문이다. 덴버 신학교에서 우리는 남편의 설교가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아내들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용기가 부족한 설교자들―또는 결혼생활이 좀 위태로운 부부들―은 이러한 예행연습을 자기 설교를 기꺼이 들어줄 친구나 입이 무거운 사람과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줄지어 나오는 성도들이 상투적인 인사를 할 때가 있다.

“오늘 좋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오늘 하신 말씀에 기뻤습니다.”

기분 좋기는 하지만, 이런 반응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목사님을 통과하기 위한 암구호에 지나지 않을 때도 있다. 설교자들에게는 설교를 마친 다음에 그들의 설교가 표적을 제대로 맞추었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피드백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오크 클리프 바이블 펠로우십은 설교의 마지막 15분을 질문과 응답에 할애한다. 물론 어떤 설교는 질문이 많이 따르지만, 질문이 거의 없는 설교도 있다. 질문이 적을 때는, 그날의 설교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함께 나눈다. 질문과 간증 둘 다 그 성도들에게 유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목회자에게 즉각적인 정보들을 준다.

르우엘 하우Reuel Howe에 따르면, 피드백 시간은 목회자가 자리에 없을 때 더 생산적이다. 그의 책 Partners in Preaching(설교의 파트너들)에서 하우는 십대 두 명을 포함해서 예닐곱 명의 평신도들을 예배 후에 이어지는 리액션 그룹에 초대하라고 제안한다. 목회자는 참석하지 않지만, 대화는 녹음된다. 녹음테이프가 소진되면, 그 피드백 시간도 종료한다. 목회자는 녹음된 코멘트를 주말에 듣는다. 그 리액션 시간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들로 이루어진다.

 

1. 오늘 설교는 당신에게 무엇을 전했는가?

2. 오늘 설교가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3. 설교자의 방법, 언어, 예화, 전달이 당신이 메시지를 듣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거나 방해를 했는가?

4. 동의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가? 오늘 설교의 주제에 관하여 당신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이런 기회를 얻은 일반 성도들은 매우 고무된다. 사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더욱 잘 듣는 법을 배우게 되고 좋은 설교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설교자가 주의해서 성도들에게 경청한다면, 그는 회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들이 어떤 것을 듣고 어떤 것을 듣지 않는지, 그들이 이해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든, 피드백은 커뮤니케이션을 살리는 피와 같은 것이다. 피드백이 없는 설교는 삶에 다가가지 못한다.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성찬과 친교를 위한 공동 식사 자리에 함께 모였다. 설교자가 성경말씀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듣고 있다가 즉석에서 질문을 하거나 코멘트를 내놓았다. 피드백이 이처럼 활발하게 오갔기 때문에, 바울 같은 신약 저자들은 그 소통에 질서를 세우기 위한 규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후에, 기독교가 그리스와 로마의 수사법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연설이 대화를 대체했고, 대화는 독백으로 대체됐다.

저 유아기의 교회는 현대 교회가 반드시 재발견해야 할 것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람들과 더불어―‘사람들에게’가 아니라―대화할 때, 설교는 하나님의 진리를 활력 있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될 것이다. LJ

해돈 로빈슨 이 글을 쓸 당시 그는 덴버 보수침례 신학교 총장이었다.
Haddon Robinson“Listening To the Listeners” Leadership Journal 1983 봄호; CTK 2017:9

 


 

 

#해돈 로빈슨#설교#청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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