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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길고 더웠던 그 여름의 그들을 만나다
박명철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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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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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봉사를 떠난 분당샘물교회 청년들이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2007년 7월의 여름이었다.


정부가 합동대책본부를 설치하였고, 탈레반은 피랍 다음날 정오까지 아프간에 주둔한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을 경우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대한민국은 온통 인터넷과 TV에 집중하였고 대통령이 나서서 CNN〉 〈알자지라등을 통해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긴급 메시지를 발표했다. 탈레반은 기다렸다는 듯 사흘째 되던 날 24시간 안에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또 경고했다. 우리는 모두 초시계를 안고 폭발음이 언제 들릴지 몰라 긴장하며 초조해 했다. 협박과 긴장과 협상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샘물교회, 아니 아프가니스탄과 피랍자들은 며칠째 세계 언론의 중심에 있었다.

사건 발생 엿새째인 25일 탈레반은 협상이 다시 결렬되자 단기봉사단을 이끌었던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다. 그리고 추가 살해를 경고했다. 설마 하던 느슨함이 한꺼번에 팽팽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살해될 가능성을 상정하며 우리는 공황상태가 되어버린 듯했다.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 시한을 무기한 연장해버림에 따라 사건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협상테이블에서 탈레반은 언제나 성급하게 제안했고 그때마다 결렬되기 일쑤였다. 그들의 끝장 위협이 다시 암울한 소식으로 이어졌다. 잔인한 7월의 마지막 날 심성민 형제가 살해됐다. 그들이 세운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도 정당화할 만큼 그들의 자리는 막장이었다.

지루하고도 피 말리는 상황은 피랍 21일째가 지나면서 인질들 중 여성 환자가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보도가 흘러나왔고, 실제로 석방이 이뤄졌다. 그후로도 협상은 지루하게 이어졌고, 환자들의 수는 더 늘었으며, 우리 정부는 아프간 파병을 다시 동의하고, 탈레반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들이 총동원되었다. 그렇게 40일의 안타까운 시간들이 흘렀고, 마침내 8월 28일 정부 대표와 탈레반 대표가 인질 전원 석방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도달했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인질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비로소 그 지루한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제주에서 만난 그 이름 ‘배형규’

그 해 여름 피랍 사건이 일어나고 다시 몇 차례 여름이 지나고, 이미 서가에 꽂힌 낡은 잡지 속의 한 순간으로 그 일을 까마득히 잊어갈 무렵, 나는 또 다른 여름을 맞았고 제주도에서 인터뷰와 취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주에 처음 교회를 세우고 박해를 받으며 신앙을 이어온 사람들의 흔적을 밟아갈 때였다. 제주 서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금악오름에서 나는 ‘배형규 목사’ 이름을 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한 배형규 목사를 아시지요? 배 목사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전인 2006년 한 해 동안 이곳에서 안식년을 보냈어요. 폐가 나쁜 줄 알고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글쎄 아프리카 여행 후에 나타난 풍토병이었어요. 그래서 요양 차 고향인 이곳에 와 있었어요. 다행히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전에 병은 완쾌되었어요. 배 목사가 여기 금악오름에 자주 올라왔는데 오르고 내리며 기도를 심었겠지요.”

“배 목사님 고향이 제주였어요?”

“네 여기서 고등학교 나와서 서울서 대학 다니고, 대학 나와서 1999년에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해서 목사 안수를 받았지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제주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존경받는 장로님 권사님들이에요.”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글을 만들면서 배형규 목사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그가 나보다 한 살 많은 1965년생이라는 것, 그리고 1985년 대학에 입학하여 CCC 수원지구에서 신앙훈련을 받았다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 그와 같은 시간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도 CCC에서 신앙훈련을 받았으니, 게다가 수원지구를 방문하기까지 했으니, 아마도 그와는 구면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는 나에게 타인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그가 지나온 많은 시간들은 나에게도 꽤 익숙한 시간들이었다.

배 목사는 청년의 때에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가난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을 불태워온 사실도 알았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매년 단기봉사단의 일원으로 자신의 열망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왔다. 그가 향한 땅은 중국 북한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이미 2005년에도 다녀왔고, 배 목사의 제자들이 그곳에 체류하며 봉사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돌아오면 제주에서 청년들과 수련회를 가질 예정이에요.”

떠나기 전 배 목사는 가족들에게 그렇게 전화로 약속하였다. 웃음으로 인사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도 불안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웃음으로 인사하였다.

“잘 다녀오너라. 기도하마.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위험한 땅이니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들과 아버지의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아끼던 친구인 배 목사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박원희 목사(낙도선교회 대표)가 쓴 글도 있었다.
 

“내 친구 배형규 목사는 …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형제였습니다. 사모님도 백혈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골수이식을 해주었습니다. 성함이라도 알려달라는 환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늘 쌈짓돈을 주머니에 넣어주고는, 얼른 버스를 타고 가버린 친구였습니다. … 내 친구 형규는 영혼이 투명하고 깨끗한 형제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저의 영혼이 증인입니다. 내 목숨을 대신하여 살리고 싶은 형제이며, 저의 심장을 꺼내 주고 싶은 친구입니다. 어쩌면 제가 죽어야 할 자리에 형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배 목사의 친구가 사용하는 단어들까지 나로선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배 목사는 ‘순례자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그 아득한 노래가사가 머릿속에 떠오를 땐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는 끝내 순례자처럼 자신의 길을 떠났다. 그가 순교한 7월 25일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이었다. 마흔한 살의 아름다운 삶이 그가 온 길로 다시 돌아간 셈이었다. 장례예배는 한참이 지나 모든 사건이 정돈된 뒤 9월 8일에 드렸는데, 그날은 또 배 목사의 결혼기념일이어서 이래저래 가족들의 슬픔이 더욱 컸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배 목사와 함께 아프간으로 떠난 형제와 자매들을 향해 싸늘하고 날카로운 질타를 쏟아내었는데, 그들의 말이 비수보다 잔인한 걸 깨달은 때도 그때였다. 그와의 작은 공감대가 생겨서인지, 아니면 내 안에 다른 어떤 감정이 생겨서인지 피랍자와 샘물교회를 둘러싼 뉴스들 속의 허상을 본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왜 가지 말라고 한 곳에 가서 죽음을 자초했느냐?”

“누가 당신들더러 거길 가라 했느냐?”

“당신들 돈 내서, 당신들 종교 선교하러 갔으니, 당신들이 거기서 죽어도 할 말 없다!”


그런 증오심 가득한 말들이 어떤 이유로든 사지에서 떨고 있을 형제들을 향하여 할 말은 아니었다. 그들이 아프간에서 한 일은 의료봉사와 전쟁고아를 돌보는 일이었다. 적어도 아프간이라는 위험한 땅으로 떠나고자 할 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동기는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준 분, 그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었을 뿐 거기 이기적인 탐욕이 자리할 데는 어디에도 없었다. [전문 보기: 길고 더웠던 그 여름의 그들을 만나러 떠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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