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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최고의 ‘자소서’
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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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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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행가래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는 유정현, 아직도 “일용직”으로 산다는 그는 ‘콘서트를 선물하는 남자’다. 유정현이 자기소개서를 썼다.

어느 날 전화로 사귀자고 어떤 예쁘고 멋진 여학생이 전화함. 그 때 잠언 말씀을 읽어주며 사귀는 건 대학 간 이후 하는 거라고 설교함. 그 이야기가 전해져 좀 유명해짐. 여하튼 내 생애 첫 설교였고 오히려 전화위복이 됨. (설교제목: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쳐라.)

1989년 2학년이 되니 축구 잘하고 농구 잘한다고 체육부장 시킴. 여학생들 앞에서 수업 전 체조 담당이었는데 체육복이 발레복처럼 딱 달라붙어 숫기가 없어 엄청 창피했음. (발레안한 이유이기도 함.)

그 당시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9초 38이 나옴(예고 운동장이 대각선으로 한다 해도 100미터가 안되어 기록에다 6초 더함.^^)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재단 이사장님이 운동장을 순찰하시기에 체육부장으로써 목숨 걸고 외침! ‘축구 골대 없는 운동장이 웬 말이냐! 학교 측은 운동장에 축구 골대를 설치하라!’

한 달 후 거짓말처럼 예고 운동장에 축구 골대 세워짐.^^ 내 인생 최고의 수훈 중 하나임.

한마디로 웃겼다. 아니 디지털 음원의 박제된 소리가 아니라 라이브 콘서트를 보았다. 그가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마음껏 뛰놀고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자라야함! 어린 시절에 놀던 것으로 커서 일을 하게 되면 상당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됨!!!” 어느 무대에선가 노래하고 있을 ‘사회인 마이크 잡스’ 그는 실제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문득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TV 모니터 속의 분장 말고 맨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향 중 향은 인향人香이라 하지 않던가? 난 어느 날 루터와 칼뱅에게서 그 냄새를 맡았다.

루터 연구의 권위자로 주목받는 최주훈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개혁을 논할 때 가끔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16세기는 중세와 단절된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철저히 중세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난 루터를 가르치면서 ‘시대의 아들’이란 표현을 잘 사용한다. 루터를 ‘영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꼭 그렇진 않다. 그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그런 시대의 인물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루터는 생활 감각이 떨어졌다. 불같은 성질을 내기도 했다. 아내와의 다툼도 잦았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내가 만일 다시 결혼할 수 있다면, 내 아내를 돌로 조각하여 순종하는 석상을 만들겠습니다.” (아! 결혼 생활에서 한 번 쯤은 쏟아냈을 남자들의 탄식?)

루터의 거친 언어와 불같은 성격에 주위 사람들이 떨었다. 루터의 신실한 조력자였던 멜란히톤은 루터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이렇게 한숨지었다.

“루터는 호전적인 성미에 따라 움직였고 교만한 자기 의를 나타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이런 불명예스러운 속박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사후 2년 뒤에 한 고백이었다.

칼뱅은 어땠을까?

가정사는 끊임없는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과부였던 이뜰레트 드 뷔르 부인과의 결혼으로 태어난 첫 아들 쟈크를 가슴에 묻었다. 큰 슬픔이었다. 결혼해 데리고 온 아들은 가출한다. 아내가 병상에서 생존 투쟁을 하고 있을 때다. 칼뱅은 아들을 찾아 헤맨다. 아내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다. 남겨진 딸 유딧의 간통 사건이 터진다. 거기다 동생 앙투앙의 이혼과 재혼, 앙투앙 부인 안느와 칼뱅의 하인 다게와의 간통 사건…

그가 세우려고 했던 제네바의 꿈, 개혁 도시와 성경적 가정 모델은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종교개혁 500주년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인 안인섭 교수의 평대로 칼뱅은 우리와 동일하게 한 시대와 삶 속에서 행복해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하는 하나님 앞에 선 한 인간 실존이었다.

실상 칼뱅의 결혼관 자체가 비뚤어져 있기도 했다. 이성 교제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그는 설사 결혼한다 하더라도 “결혼은 자신을 이런 저런 자그마한 걱정거리에서 자유롭게 해서 주님을 위한 봉사에 전심을 다할 수 있게 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내는 ‘집사람’(더 노골적으로 “솥뚜껑 운전수”)이면 된다는 거였다. 결혼을 피해 보려 했던 칼뱅은 10년도 채 못 되는 짧은 결혼생활에 아내를 떠나보내고 진정으로 슬퍼한다.

“비록 아내의 죽음이 내게는 몹시도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는 한 슬픔을 억누르고 있답니다. 그대는 당신은 내 마음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동료를 잃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내가 가난할 때 자발적으로 삶을 나누어 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죽음 속에서조차도 말입니다. 그녀는 살아생전 내 사역의 신실한 돕는 배필이었습니다.” 친구 삐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아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결혼의 신비를 알았던 칼뱅, 어쩌면 루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카타리나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항상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곁눈질로 훔쳐본 루터와 칼뱅의 자소서의 결론이 궁금하다.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결혼, 조금 억지로 했음. 그리고 골 때리기도 했음. 성격치료나 사람 되게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처방은 없음!! 성경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잠 14:4)고 함이 답!!!!

추가: 우리도 이랬으니 잘 참아내시길. 살다보면 살아짐. 그리고 이런 글을 퍼 나르면 CTK도 매우 좋아함. 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픈 소망을 담아.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공존했던 인간 루터와 칼뱅, 결국 종교개혁은 이런 인간을 통해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CTK 2017:10 

#종교개혁#기도#칼뱅#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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