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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과 종교개혁
안인섭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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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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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CT

기도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정점인 산상수훈에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종교개혁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칼뱅은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과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온통 이 기도 형식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기도문은 우리의 최대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를 테면 기도의 표준이다.” 칼뱅은 주기도문을 기도의 정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주기도문은 가장 오용되어 온 것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주기도문을 암송했다. 그것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로 말이다. 16세기에 종교개혁으로 “오직 성경”의 기치 아래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주기도문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종교개혁과 더불어 주기도문과 이를 포함하는 산상수훈이 인간의 심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로마는 종교개혁이 돌아가고자 했던 초대 교회이자,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부패한 로마 가톨릭의 심장이었다. 왜 로마는 최고의 이상적 모델에서 최악의 적폐가 되어 버렸을까? 초대 교회는 박해 속에서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다음 세대를 위해 신앙을 교육했고, 이 신앙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를 삼으면서, 신앙의 본질이 아닌 외적인 가치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추구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최고이자 영광스러운 제국인 로마의 세속적인 가치로 전도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법적으로 강력하게 보호하고 후원하던 로마가 게르만의 손에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의 나라를 로마 제국과 분리하고 로마를 상대화하고 현실화한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354-430)였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성찬 예식과의 관계 속에서 주기도문을 읽고 해석했다. 특히 그 중심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기도문 해석이 중요하다. 그는 “산상수훈 강해”에서 주기도문은 천국에서의 복된 삶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 것”과 연결 지으면서 그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의 문제는 한 마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현세로 절대화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기도문 해석의 정신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중세 1000년에서 길을 잃었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16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각성과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루터와 주기도문

주기도문은 종교개혁 선구자인 마르틴 루터부터 시작해서 마틴 부처, 그리고 2세대인 칼뱅 모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루터Martin Luther(1483-1546)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해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정식 예배에서 요리문답이 설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루터는 1529년에 청소년들을 위한 소요리문답과 목회자를 위한 대요리문답을 출판했으며, 대요리문답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자평할 정도였다.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요리문답을 배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요리문답 한 부분을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큰 소리로 읽고 시간이 조금 나면 주기도문과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시편 등을 암송합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것들을 매일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나는 요리문답을 배우는 어린 아이와 학생으로 남아 있으며 나는 그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루터의 대요리문답은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그리고 세례와 성찬의 구조로 되어 있다. 결국 “율법과 복음”이라는 루터의 신학 체계 속에서 십계명과 사도신경이 각각 해설된 후에 주기도문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은 무엇일까? 루터에 의하면 우리가 율법을 알고 복음을 안다고 하더라도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끈질기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계된다.

루터는 요리문답 설교에서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간구는 이것이 열매를 맺게 해 달라는 것, 즉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서 그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우리가 그의 나라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첫째 “말씀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둘째 “장래에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루터에게 주기도문은 이런 맥락에 위치한다. 주기도문은 신앙의 현재성과 미래성이 통전적으로 종합되는 경건의 좌소이다. 루터에게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이 그것 없이는 신자답게 살 수 없는 영성의 길이었던 것이다.
 

부처와 주기도문

루터파와 더불어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인 개혁주의로 오면 주기도문은 보다 장엄한 그리스도의 나라Regnum Christi의 문맥에서 해석되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자유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이자 칼뱅의 멘토였던 마틴 부처Martin Bucer(1491-1551)가 그 선구자다. 부처는 1527년에복음서 주석을 출판한 후에 1530년과 1536년에 각각 증보판을 냈다. 이 주석은 1540년과 1543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프랑스어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부처의 주기도문 해석은 칼뱅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부처는 주기도문의 간구를 6개로 나누었으며, 이것은 칼뱅에게서도 발견된다. 부처는 이 주석에서 주기도문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개해 준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일하시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외적으로 말씀을 통해 오는데 그것은 성령에 의해서 내적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죄를 사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부처의 주기도문 해석에서 돋보이는 것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부처에 의하면 하나님은 각자 자신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형제에 대한 사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처의 주기도문의 신학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De Regnum Christi(1550)를 통해 영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부처 자신이 말년에 직접 케임브리지로 가서 강의하기도 했고, 이 책은 제네바에서 프랑스어로 출판(1558)되기도 했다.
 

칼뱅과 주기도문

종교개혁 2세대로서 선배들의 신학을 소화하여 종합하고 체계를 세운 것은 장 칼뱅John Calvin(1509-1564)이다. 그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신앙의 박해 때문에 조국을 떠나 나그네가 되어 제네바에서 활동(1536-1564)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의 1536년판부터 1539년판을 거치면서 심화된 주기도문의 해석을 1559년의 최종판에서 총정리하고 있다. 칼뱅에게 기도는 믿음의 실천이었고, 이 기도를 통해서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었다.  〈기독교 강요에서 그는 “하늘 아버지에 있는 보물에 우리 손이 닿으려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칼뱅을 대표하는기독교 강요는 1536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이 책의 초판에 루터의 영향이 보인다.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칼뱅도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해설했다. 칼뱅은 여기에서 주기도문을 설명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자기 백성 위에 행하시고 다스리어 그의 선하심과 부요가 그들이 하는 모든 일 속에 나타나도록 하는 일이다.” 동시에 그는 주기도문 해설에서 하나님 나라는 “마침내 완전해지고 완성되기를 소원하는 것”이라며 그 종말성과 미래성을 강조한다.

칼뱅은 제네바 사역 초기에 2년 남짓(1538-1541) 제네바를 떠나 스트라스부르의 프랑스 난민 교회에서 목회하게 되었다. 이때 칼뱅은 마틴 부처와 깊은 신학적 교제를 했다. 칼뱅이 스트라스부르를 떠날 때 비로소 그 자신답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다. 이 기간에 그는 기독교 강요 2판을 출판(1539)했다. 이때부터 칼뱅의 신학이 체계화되기 시작하는데 이 책, 기독교 강요 2판에 마틴 부처의 영향이 녹아있다. 이때 칼뱅이 해석하는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와 직접 관계된다.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 연결시킨다: “그 말씀이 열매 맺게 하시며, 세상의 멸시와 치욕을 심지어 십자가 아래서도 지배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가 이 세상에서도 존재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그 미래적 성취를 대망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를 1559년까지 계속 증보하면서 종교개혁 신학을 총정리 했다고 평가받는데, 그 최종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3권 20장에 등장하는 “기도”다. 여기에서 그는 주기도문을 해설하는데, 그가 주기도문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는 자기를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법에 맞도록 인도하실 때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나타난다. 결국 그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를 굴복시킴으로써 나라를 세우신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셔서 교회를 통해서 이 일을 행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최후에 다시 오실 때에야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라고 천명한다. 칼뱅에게 주기도문이란 우리를 이 세상의 부패에서 물러나게 하고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통로이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은 어떤 면에서 보면 왜곡되었던 하나님 나라 이해를 성경적으로 바로 잡으면서 그 정신으로 국가와 사회를 변혁시켰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주기도문은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인 루터주의와 개혁주의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세상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그 속에 함몰되지도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려고 했다. 그 중심에 주기도문의 영성이 있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 묻혀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기도문은 새로운 영성의 길을 제시한다. 마치 종교개혁자들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방향을 잃고 있는 2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기도문은 우리가 주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다시 일깨운다.

종교개혁자 마틴 부처가 “기도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고 말했던 것처럼, 종교개혁을 맞은 우리의 기도 역시 그리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CTK 2017:10
 

안인섭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이자 ‘Refo 500’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

#종교개혁과 주기도문#주기도문#종교개혁#마르틴 루터#마르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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