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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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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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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IPLESHIP] 첫 번째 선물 의료선교사 알렌이 1884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에 입국했다. 그래서 우리는 1884년이나 1885년을 한국 선교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보다 52년을 앞서고 53년을 앞선 선교사 입국이 있었다. 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귀츨라프(1803-1851)다. 1832년 7월 17일, 서양 선박 로드 애머스트호의 선의船醫 겸 통역관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최초의 통상 교섭을 위한 방문이었다. 1866년에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보다 34년을 앞선 첫 발걸음이었다. 조선 순조 때인 1832년, 그는 끝내 쫓겨난다. 재미 신학자 옥성득 교수는 칼 귀츨라프의 한국 방문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한다. “‘바닷가를 스쳐 지나갔을 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도 있지만(민경배), 귀츨라프가 일기에 썼듯이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씨’가 한반도 땅에 뿌려졌으며(백낙준), ‘주님께서 작정해서 짚어 주신 날에는 반드시 열매가 맺힐 것’으로 보는 관점이 그의 선교 방법론과 연관하여 더 바람직할 것이다.” 난 이렇게 말해 본다. “귀츨라프는 ‘실패’라 썼고 하나님은 ‘성공’이라 읽으셨다.” 그는 황해도 몽금포 해안을 거쳐 서해 고대도에 머물렀다. 고대도에 정박해 있는 동안 한국의 첫 선교사 귀츨라프가 한 일이 있었다. 문화 중계자이기도 했던 귀츨라프 선교사는 감자 재배법을 알려주었다. 가난에 찌든 우리 민족에게 다가온 하늘의 만나였다. 감자는 지금도 가난에서 건졌다는 의미에서 구황救荒 식품으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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