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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펫 연구의 밑거름 되기를또한 우리의 선교 현실을 돌아보는 거울 되기를
양국주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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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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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평양. 한복을 입은 마포삼열. 사진: 양국주

근 페이스 북에 지인이 옥성득 선생이 번역해 출간한 새뮤엘 마펫, 마포삼열 선교사의 서간집 네 권 한 질을 100세트 정도 사서 신학교나 교회 같은 데 기증할 독지가를 찾는다는 광고를 공유해 올렸다. 정말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또한 마펫 서간집이 출간되려면 적어도 열권 이상이 될 텐데 이런 책이 발간되려면 비용도 문제이거니와 판매를 장담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걱정이 내심 앞선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평생을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친 선배가 은퇴 후에 심혈을 기울여 조직신학 서적을 집필했음에도 아직까지 출판할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국내 출판계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포삼열 자료집 1~4 마포삼열
옥성득 엮음 새물결플러스

두 번째 이유는, 1890년에 조선에 와서 1936년에 은퇴할 때까지 마펫이 선교사로 이룬 경이로운 업적에 비해 구체적으로 연구된 바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전집 출간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성과를 담보하기가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새뮤엘 마펫은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46년간의 사역 기간 동안 “평양 선교부 설립과 관서 지역 복음화” 및 “평양신학교”로 알려진 대한장로교신학교”를 설립하고 목회학을 중심으로 실천신학을 가르치면서 한국 장로교 형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목사들을 양성했다는 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친 남장로교 출신의 레이놀즈 선교사와 더불어 한국 교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이다.

선교현장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교단이나 선교단체들이 그저 사람 보내기에만 급급해서 선교 헌신자의 모집과 훈련, 파송과 효과적인 멤버 케어,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사역과 보장에 관해 아무런 대안도 없이 선교사들을 혹사시키고 있는 처참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130년 전에 우리나라에 온 사역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헌신과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 사역 우선순위의 문제, 본부와의 소통과 후원자들과의 문제에서 보다 진솔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선교단체 리더들과 초기 교회사 연구가들이 반드시 읽어야만 할 책으로 추천한다.

그러나 그 외의 분들에게까지 굳이 추천할 마음이 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마펫 서간집이 현재까지 네 권 밖에는 출간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를 평가하기란 자기모순에 빠지기 쉬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네 권을 읽으면서 한국 교회사나, 초기 선교에 대해 연구를 하려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익하지만 대단한 집중력을 갖지 않고서는 전권을 독파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굳이 장서로 구비하려는 욕심이 아니라면 용단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서간집의 유용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교회보다는 선교단체들이 우선적으로 구입해서 교재로 재편집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례식장을 둘러싼 하객들, 그리고 신랑신부에게 주례하는 마포삼열.

마펫과 같은 북장로교 동료 선교사인 언더우드의 서간집에서는 언더우드가 열정적인 감성의 소유자임을 그리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언더우드가 변덕스러울 정도로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마펫은 언더우드와는 정반대로, 이지적이고 논리적이다. 언더우드가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격정적으로 드러내는 반면에 마펫은 좀처럼 자기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마펫의 서간집을 읽는 이들은 언더우드의 서간집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1890년부터 조선의 선교사 사회에 불어 닥친 광풍노도의 진면목과 양면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윌리엄 레이놀즈의 평전을 쓰기 위해 근 5년간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장로교 선교사인 레이놀즈는 마펫과 더불어 평양신학교의 설립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가장 오랫동안 헌신한 분으로 비록 출신 교단과 수학한 신학교는 달랐지만 평양신학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설립하고 총회장을 주고받았다. 더욱이 그는 한국 교회가 읽고 있는 개역 성경의 40권을 번역한 분이기도 하다.

 

여기 (평양) 선교사 가족들은 마펫 부인이 부분적 정신분열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에 분위기가 무척 어수선하단다. 환청과 편집증 현상을 보여서 지난 주 여성병원으로 이송하였고, 다음 주 화요일 간호 연수생, 미스 메이어가 여행 동반자가 되어 미국으로 모셔갈 예정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마펫 박사님은 지난 해 여름에 부분적으로 중풍이 왔고, 10월에 미국으로 보내어졌다.

 

이 글은 1937년 3월 5일, 평양에서 레이놀즈 선교사가 딸 엘라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조선에서의 45년 사역을 마감하는 이 글에서 레이놀즈는 최근 평양 선교부의 속사정을 낱낱이 그려내면서 마펫 가족의 근황을 적고 있다. 남장로교 선교사인 레이놀즈의 한국 정착은 북장로교 선교사인 새무엘 마펫의 친절한 안내로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조랑말을 탔을 때는 남장로교 선교팀이 한국에 도착한 지 52일이 지난 뒤 마펫 박사와 함께 단 둘이 충청도 지역으로 (선교)정탐여행을 떠날 때였다. 우리 일행이 남쪽으로 약 100마일 정도 떨어진, 후일 감리교 선교부와 북장로교로 넘기게 된, 공주와 청주에 갔을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서울에서 그곳으로 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었다. 왜냐하면 당시 시골 지역에 창궐한 강도들 때문이었다. 하루는 완전히 재로 불타버리고 탈취당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장이 선 마을에 점심을 먹으러 지나게 되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 험상 굳게 생긴 한국인들이 몰려와서는 조랑말의 짐짝을 툭툭 쳐보고는 “이렇게 상자가 무거운 것을 보니까 필시 이 안에 돈이 많이 들어있는 가보다”라고 자기네끼리 이야기 했다. 이들의 수상한 언행을 눈치 챈 우리 언어선생이 황급히 방에 들어와서는 당장 여기를 떠나 저녁 해가 지기 전에 가능한 이곳에서 멀리 가야 한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정말 강도였는지 아직까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그 강도들이 마펫과 우리 일행을 따라 잡지 못할 정도로 죽도록 그날 오후와 밤 10시까지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10일 간의 충청도 여행에서 우리가 만났던 유일한 그리스도인은 로마가톨릭 교인으로 우리를 가톨릭 신부로 생각해서 찾아온 사람뿐이었다.

 

새무엘 마펫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레이놀즈의 편지를 길게 적은 이유는 편지와 선교보고에는 다양한 관점의 이해와 비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탓이다. 레이놀즈와 충청도 사역을 위한 정탐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마펫은 어떻게 언급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마펫의 서간집을 펼치게 만든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레이놀즈와 함께 강도를 피해 허겁지겁 도망쳐야 했던 1893년 정초에 있었던 해프닝을 마펫의 편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정탐 여행이 청주와 공주를 중심으로 했던 충청도 사역의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놀즈는 1932년, 남장로교 선교 40주년을 맞이하는 축하연에 참석한 마펫으로부터 1895년 레이놀즈를 성경번역위원으로 추천한 사람이 마펫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펫이 충청도 여정을 통해 레이놀즈의 사람 됨됨이를 알게 되고 그가 지닌 학문의 탁월성을 한국 성서번역과 평양신학교에서의 평생 사역 동지로서 함께 일하게 된 중대한 계기가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더니 마펫은 레이놀즈를 추천하고도 결코 생색내거나 자신의 추천으로 레이놀즈가 성경번역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사실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거나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헤론 부인과 알렌 선교사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불륜의 뒷담화, 게일과 헤론 부인의 결혼이 가져다 준 부정적인 이야기는 담으면서 언더우드와 릴리어스 호튼의 결혼을 두고 당시 서울의 외교가와 선교사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수군거림에는 애써 눈을 감았다. 마펫의 편견이 작용했거나 다른 선교사들의 개인사에 관해서는 언급을 삼가는 마펫의 고매한 인격에 기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례로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의 서간집을 읽게 되면 이분은 목사보다는 차라리 저널리스트가 되었더라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만큼 동료 선교사들에 대한 관찰이 유진 벨의 사람 됨됨이를 여실이 드러내고 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유진 벨의 깨알 같은 입방정은 선교 역사를 다루는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귀한 역사적 단초를 제공해주는 원천 자료가 된다. 그러니 그분의 가벼운 존재감에는 긍정도 있고 부정도 동시에 공존한다.

반면에 마펫의 편지에는 초기선교 역사 자료에 대한 충실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언더우드나 유진 벨 같은 타인에 대한 불편한 생각들을 티 나게 드러내지 않는 탓이다. [그만큼 마펫의 인격이 정제되고 잘 다듬어져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이 위대한 거인의 리더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게서 목회학과 실천 신학을 전수 받은 한국 교회의 리더십들이 신학생 시절 받았던 축복을 느끼게 된다.]

   
1911년 여름. 대동강에서 아들 제이미와 함께

마펫의 편지는 그가 서울에 도착한 1890년부터 시작 되었음에도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제한적으로 언급된 탓에 초기 선교사회의 모습을 개괄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언더우드와 알렌 사이의 갈등이나 파워 선교사의 스캔들, 오랫동안 반목했던 평양과 서울 선교회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애써 피했다기보다 마펫의 진한 인격이 묻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펫의 서간집은 교회사적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사실 1934년, 북장로교가 선교 50주년을 기념하면서 마포삼열 기념사업을 추진하였지만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설교집 한권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의 묘가 작금에 발견되자 시신의 일부를 가져다 평양신학교의 정통성만 인정받으려는 노력만 보일 뿐이다. 마펫을 자신의 필요와 입맛에 적당히 이용하려고만 했지, 그분이 이 땅에 남기고 간 진정성과 리더십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마펫을 “한국 교회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분이 일군 믿음의 계보에 걸맞게 이 서간집을 시작으로 새뮤엘 마펫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옥성득 선생의 작업은 과거의 교회와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를 놓은 셈이다.

그리고 윌리엄 캐리나 허드슨 테일러만 연구할 게 아니라, 우리 땅에서 피땀 흘린 선교사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겠다. 우리가 해외로 선교사를 제 아무리 많이 보냈다고는 하나 선교사의 현장 관리와 영성에 무관심한 채 성과에만 목을 매는 후원교회, 파송 선교기관이 아니던가?

   
1938년 고향 인디애나 주 매디슨을 방문하다

130년전 이 땅에 선교사를 보낸 미국 장로교회와의 교신과 선교사 가족이 느꼈을 고민의 흔적을 찾아서 현재 우리가 보낸 파송 선교사의 문제점에 적용하는 지혜도 가져야 한다. 이 서간집을 다른 누구보다도 선교단체의 리더들이 필독해야 할 책으로 추천하는 이유다.

굳이 사족을 붙이라고 한다면, 마펫을 평양신학교 교장으로 단정 짓는 번역자의 숨겨진 의도가 눈에 뜨인다. 또한 최근 총회신학교가 발간한 100년사에도 평양신학교에는 마펫과 라보열Robinson 교장만이 재직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더욱이 이런 오류가 평양 대부흥 운동을 집필한 교수의 손에 쓰인 것은 역설적으로 평양신학교에 대한 바른 연혁과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마펫은 1906년 중반에 안식년을 가졌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평양신학교는 남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전킨과 북장로교 선교사 스왈렌이 교대로 교장직을 맡았다. 번역자는 마펫이 1924년까지 평신 교장을 맡았다고 했지만 이 과정에 다른 이들의 교장직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평양신학교의 역사와 마펫의 전기에 빼트려 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평양신학교는 마펫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들 4개 선교회의 연합 사업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1928년 국제선교대회(IMC) 참석차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정인과 양주삼 목사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찬가지로 평양신학교의 교과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4개의 장로교단 출신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긴장과 균형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호주 장로교회는 엥겔을 중심으로 원어를, 캐나다 장로교회는 교회사를, 북장로교는 마펫과 클라크가 설교학과 실천신학을, 남장로교는 레이놀즈를 중심으로 조직신학을 전담해서 가르쳤다. 이 원칙은 그들이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은퇴하던 1937년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번역자는 마펫이 1906년 말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워필드로부터 조직신학 수업을 받고 이를 평양신학교에 이식한 것처럼 표현했다. 그러나 남장로교의 주류 신학교였던 리치몬드 유니언 출신의 레이놀즈는 그가 이 땅을 떠나던 1937년 6월까지 워필드의 신학이 아닌, 찰스 핫지와 중국의 신학자 가옥명價玉銘신도학神道學을 조직신학 강의 교재로 사용했다. 번역과 더불어 해설에도 보다 충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CTK 2017:10


양국주 미국 버지니아 주에 터를 잡고 기독교 NGO ‘서빙 더 네이션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교회사에 대한 그의 오래된 관심은 어느덧 열네 권의 책이 되었다. 최근 윌리엄 헌트의 재령 선교부 자료 정리를 끝냈고, 지금은 프리스턴 신학교에 소장된 새무엘 마펫의 컬렉션 가운데 분류되지 않은 수만 장의 사진을 정리 중이다.
 



 

#사무엘 마펫#마포삼열 선교사#마포삼열 자료집#한국 교회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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