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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에게 귀를 기울이라설교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다
해돈 로빈슨  |  Haddon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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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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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고등목회학연구소가 교인들에게 물었다. 쓰디쓴 충고가 돌아왔다.

“분석은 너무 많고, 답은 너무 적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삶과 동떨어져 있다.”
“다들 자고 있는데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는 순수 예술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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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조롱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별로 놀랍지도 않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설교를 ‘종교적 독백’이라고 일축한다. 최고의 소통은 쌍방향으로 오가야 하는데 설교는 일방통행만 한다고 지적한다. 설교를 듣고 있는 회중이 설교에 대한 의문점이나 동의하지 않는 점이나 개인적인 견해를 바로 표명할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설교가 많다고 그들은 말한다.

또 하나의 비판은 설교자들이 너무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 한다는 것이다. 회중은 지난 주 설교 내용도 아직 소화하고 흡수하지 못했는데, 설교자는 회중에게 또 다른 새로운 개념들과 새로운 의무들을 부과한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설교 컨베이어 벨트를 멈출 수 없으니, 좌절한 청중은 아예 듣는 것을 포기한다. 그들은 빈 물병에 물을 채우듯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넣어주는 것이 능사라고 착각한다.

머리는 열려 있지도 텅 비어 있지도 않다. 머리에는 뚜껑이 있다. 머리는 꽉 닫혀있다. 억지로 쏟아 붓는다고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머리는 그 소유자가 그럴 필요를 느낄 때만 열린다. 열리더라도, 아이디어들은 여러 층―경험, 습관, 편견, 두려움, 의심―을 통과해야 한다. 아이디어들이 온전히 통과한다면, 그것은 피드백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이 운전 습관이 연료 소모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운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연비 게이지를 일부 모델에 부착했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그 계기판의 바늘이 뚝뚝 떨어진다. 반대로, 부드럽게 운전하면 바늘은 올라간다. 이러한 피드백이 연료를 낭비하는 행동을 바로바로 알려준다.

설교가 제로-피드백 상황, 반응 없는 독백처럼 보인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독백으로 치닫는 설교는 망가질 수 있다. 훌륭한 설교에는 언제나 대화가 들어있다. 현명한 설교자는 자신의 눈과 귀로 자기 입을 움직이다. 그런 설교자는 강단에 서서 청중으로부터 오는 신호에 반응하여 자신이 지금 어떻게 설교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 그는 내용만 연구하지 않는다. 그는 청중도 연구한다. 곧 청중이 그에게 던지는 유무언의 질문들에 귀를 기울인다. 설교 후에도 그는 귀를 기울여 자신이 어떻게 설교했는지 확인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중요한 피드백이 설교 중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설교를 듣는 것은 수동적인 행동처럼 보이고, 이것이 주일 예배 “관객들”이 즐기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능숙한 커뮤니케이터들은 눈으로 듣는다. 그들은 청중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동의하는지, 질문이 있는지, 또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지를 표정과 몸짓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짓고, 시계를 쳐다보고, 앉아서 몸을 비튼다. 훌륭한 교회들이 성도들의 피드백을 통해 훌륭한 설교자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많지만, 훌륭한 설교자가 훌륭한 교회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그만큼 많지 않다. 훌륭한 회중은 설교를 온몸으로 경청함으로써 자기네 설교자가 홈 코트의 이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렇지만 피드백은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 이미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들은 다른 강연자들보다 유리하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은 청중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날마다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점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점을 살리려면, 설교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도들이 던지는 질문에, 그리고 성도들이 찾는 답을 찾기 위해서 경청해야 한다. 설교자는 관찰해야 한다. 성도들의 필요들(표현하는 안 하든,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관계들(개인적인 관계, 가족 관계, 지역사회 관계), 경험들, 태도들, 그리고 관심사들을 말이다. 관찰하는 것을 매일 적어두면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기록한 메모를 보면서 어떤 성경말씀을 택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설교의 색깔과 모양을 잡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설교자가 성경으로부터 진리를 취하고 그 진리를 전할 다양한 예화를 매일의 삶에서 직접 찾아내도록 해보라. 그러면 그 설교자는 세상과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건네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전문 보기: 청중에게 귀를 기울이라]

강해설교의 대가 해돈 로빈슨 교수가 2017년 7월 22일 별세했습니다. 주옥같은 글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 자매지 리더십 저널의 오랜 기여자였던 그를 기리며 그의 글 한 편을 싣습니다. 
 

해돈 로빈슨 이 글을 쓸 당시 그는 덴버 보수침례 신학교 총장이었다.
Haddon Robinson“Listening To the Listeners” Leadership Journal 1983 봄호; CTK 2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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