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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려거든교회 안에 들어온 자랑
앤드류 윌슨  |  Andrew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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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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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 바울이 끊임없이 경고한 것들 가운데 하나인 이것을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무시한다. 올해는 자랑에 대하여 생각하기 딱 좋은 해이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마르틴 루터에게, 이 종교개혁은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라는 교회를 향한 부르짖음이었다. 신학적으로는, 오늘의 교회가 ‘자랑’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이 개념을 몇 편의 짧은 편지에서 여러 번 언급했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자랑”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상당히 유아적인 우리의 관점일 수 있다. 현대인들의 귀에는 자랑이 6살짜리 아이가 “우리 아빠는 너희 아빠보다 힘이 더 세”라고 말하는 것이나, 프로레슬러의 허세, 아니면 아마도 어떤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말라고 바울이 꾸짖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는 자랑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전장에 나갈 때, 승리를 자신하면서 자랑했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자랑했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삼상17:44) 적군의 전령들은 예루살렘 앞에서 자랑했다: “나의 상전께서 나를 보내셔서, 이 말을 하게 하신 것은, 다만 너희의 상전과 너희만 들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너희와 함께, 자기가 눈 대변을 먹고 자기가 본 소변을 마실, 성벽 위에 앉아 있는 저 백성에게도 이 말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사36:12) 이런 종류의 자랑은 연극과 영화 역사에 매우 상징적인 순간을 남겼다. 〈헨리 5세에서 글래디에이터까지, “관 세 개를 준비해 둬라”에서 “그들이 우리의 목숨은 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자유는 결코 취하지 못할 것이다!”까지.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에 자랑은 곧 궁극의 용기를 드러낸다.

이러한 사례의 현대적 등가물을 찾으러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정치와 프로 스포츠에서 자랑이 없는 곳은 없다. 자랑은 광고, 회사 생활, 소셜 미디어, 그리고 두 말할 것도 없이, 군대에서도 핵심이다. 어른들은 어떤 제품들, 프로그램들, 또는 훈육 방법들을 자랑한다. 사회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영향력과 애국심을 자랑한다. 자랑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나 있다.

자랑은 교회 안으로도 들어온다. 우리 교단은 성장하고 있는데, 너희 교단은 쪼그라들고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용기가 있는데, 너희 지도자들은 매가리가 없다. 이런 정서는 분열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전의 원천과 승리의 소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자리에 있음을 드러낸다. 상대방과 겨룰 때, 우리는 재빨리 우리가 자신만만한 근거로 우리 자신―우리의 선택, 우리의 신학, 우리의 능력들, 우리 공동체―을 자랑한다.

자랑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매우 놀랍다. 그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자랑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특징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죽음의 가능성에 항상 직면해 있는 약하고 의존적인 피조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인을 얻으려 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자랑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바르게 자랑하라고 촉구한다.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고전1:31고후10:17) 파라오의 군대를 피해 도망하고 있다면,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너희의 기술을 자랑하지 말라; 말과 병거들을 깊은 곳에 던지시는 분을 자랑하라. 너희가 골리앗과 싸우고 있다면, 너희의 물맷돌이나 팔을 자랑하지 말라; “골리앗이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삼상17:45) 자랑하라.

그런데 바울은 더 나아가, 하나님을 단순한 군사 동맹이나 국가적 부적 취급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갈6:14) 우리는 주님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가장 약한 순간에도 자랑한다.

싸움터로 가든, 공직에 나아가든, 아니면 단지 일터로 가든, 우리는 우리를 위험에서 지켜 줄 것이라고 믿는 바로 그것을 쳐다본다. 이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하는 일반적인 근거들―우리의 힘, 우리의 계획, 우리의 업적―은 우습게도 부절적하다. 이것들을 두고 우리가 목청을 높이면 높일수록, 이것들은 덜 미더워진다. 우리의 닻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러니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자. CT

앤드류 윌슨 킹스 처지 런던King’s Church London의 교육 목사, 전혀 기대치 않은 생명The Life You Never Expected의 저자. Twitter @AJWTheoloy.
Andrew Wilson, “It’s Not Only Bullies Who Boast” CT/CTK 2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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