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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문화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개혁이 필요한 이유
마크 갤리  |  Mark Ga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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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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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95개 논제, “면죄부의 능력에 대한 논박”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 내걸었다.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도덕 신학 교수였던 그는 면죄부―죄에 대한 벌을 제거하기 위해 선한 일을 하거나 헌금을 하는 행습―에 관한 학문적 토론을 제안했던 것이다.

루터는 면죄부가 회개 대신에 돈으로 용서를 구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에 불편을 느꼈다. 루터는 (95개조의 첫 테제에서) “우리의 주님이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원하신 것은 신자들의 모든 삶이 회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만큼이나 오늘날에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 어리석음, 편견, 그리고 악행을 지적하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지도자나 단체가 지배적인 정치적 정설을 훼손하면(그것이 무엇이든), 곧바로 발언을 취소하라는 성난 전화가 쏟아진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죄들”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그것을 범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지 ‘회개’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삶 전체에 회개가 필요하다고 다시금 주장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을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시작하셨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4:17) 그리고 회개는 초대 교회에서도 설교의 핵심 주제였다(행2:38, 3:19, 5:31, 8:22, 11:18, 13:24, 17:30, 19:4, 20:21, 26:20).

그리고 이 회개에는 다른 사람들의 회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회개도 포함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잘못한 죄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잘못한 죄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권력 앞에서 예언자적으로 말하는 법은 배웠지만, 우리 자신을 향해 예언자적으로 말하는 감각은 상실했다. 문제는 항상 저기에, 불의한 제도나 부주의하거나 사악한 사람에게 있다.

우리는 자기-의인self-justification의 약물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회개를 회피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개인적 죄를 의롭게 지적하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회개가 필요 없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면, 나의 정치적, 사회적 대적에게 나와 나의 대의를 해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된다.”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자기중심성과 자만이 나의 가장 의로운 행동에 얼마나 많은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내가 사실대로 인정한다면, 내가 위선자이고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전문 보기: 회개의 문화]
 

Mark Galli,  “A Culture of Repentance” CT/CTK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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