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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과 종교개혁종교개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주기도문
안인섭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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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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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정점인 산상수훈에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종교개혁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과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온통 이 기도 형식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기도문은 우리의 최대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를 테면 기도의 표준이다.” 칼뱅은 주기도문을 기도의 정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주기도문은 가장 오용되어 온 것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주기도문을 암송했다. 그것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로 말이다. 16세기에 종교개혁으로 “오직 성경”의 기치 아래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주기도문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종교개혁과 더불어 주기도문과 이를 포함하는 산상수훈이 인간의 심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로마는 종교개혁이 돌아가고자 했던 초대 교회이자,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부패한 로마 가톨릭의 심장이었다. 왜 로마는 최고의 이상적 모델에서 최악의 적폐가 되어 버렸을까? 초대 교회는 박해 속에서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다음 세대를 위해 신앙을 교육했고, 이 신앙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를 삼으면서, 신앙의 본질이 아닌 외적인 가치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추구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최고이자 영광스러운 제국인 로마의 세속적인 가치로 전도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법적으로 강력하게 보호하고 후원하던 로마가 게르만의 손에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의 나라를 로마 제국과 분리하고 로마를 상대화하고 현실화한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354-430)였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성찬 예식과의 관계 속에서 주기도문을 읽고 해석했다. 특히 그 중심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기도문 해석이 중요하다. 그는 “산상수훈 강해”에서 주기도문은 천국에서의 복된 삶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 것”과 연결 지으면서 그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의 문제는 한 마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현세로 절대화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기도문 해석의 정신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중세 1000년에서 길을 잃었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16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각성과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루터와 주기도문

주기도문은 종교개혁 선구자인 마르틴 루터부터 시작해서 마틴 부처, 그리고 2세대인 칼뱅 모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루터Martin Luther(1483-1546)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해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정식 예배에서 요리문답이 설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루터는 1529년에 청소년들을 위한 소요리문답과 목회자를 위한 대요리문답을 출판했으며, 대요리문답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자평할 정도였다.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요리문답을 배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요리문답 한 부분을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큰 소리로 읽고 시간이 조금 나면 주기도문과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시편 등을 암송합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것들을 매일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나는 요리문답을 배우는 어린 아이와 학생으로 남아 있으며 나는 그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루터의 대요리문답은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그리고 세례와 성찬의 구조로 되어 있다. 결국 “율법과 복음”이라는 루터의 신학 체계 속에서 십계명과 사도신경이 각각 해설된 후에 주기도문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은 무엇일까? 루터에 의하면 우리가 율법을 알고 복음을 안다고 하더라도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끈질기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계된다. [전문 보기: 주기도문과 종교개혁]
 

안인섭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이자 ‘Refo 500’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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