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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교회가 왜 이럴까?” “친구, 교회는 이런 데라네.”
김정우, 박영선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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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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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최연창

참 다르다. 그런데 참 잘 어울린다. 둘은 서로를 잘 안다.
둘은, 나도 모르는 나를 아는 서로의 ‘지기’知己다. 박영선 목사와 김정우 교수를 만났다.
둘은 각자의 자리, 목회와 교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러났다.
목사와 신학자로 살아온 그들의 지난날을 경청했다. 둘의 이야기는 ‘교회’로 모아졌다.

 

김정우: 오늘 내가 박 형하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여기가 왜 이래?’ ‘교회, 여기가 왜 이래?’ 나는 이게 화두인 것 같아요. 베드로 같은 경우는 ‘여기가 좋사오니’이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는 ‘여기가 왜 이래?’ 같아요. 그리고 특별히 나 같은 사람은 더 당황스러워. 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여기로’ 왔는데, 여기는 ‘저기보다’ 더 한 거야. 진짜 이제는 알고도 더

   
김정우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침.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남

해. 모르고 더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는 박 형에게 ‘여기가’ 왜 이런지 듣고 싶어요.

오늘 박 형을 만나러 오면서 ‘나에게 교회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는 왜 이런가?’ 그것에 대한 대답을 찾고 싶어. ‘여기는 원래 이런 데야.’ ‘천국보다 지옥이 좀 더 가까운 곳이야.’ ‘여기에서 천국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거야.’ ‘지루한 길이야.’ 박 형에게는 이런 논조가 깔려있지만, 그 가운데서 천국의 빛이 비추는 때도 많이 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이제 교회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원래 이방인이었고, 우상숭배자였고, 내 젊은 시절 혼돈과 공허 속에서 살고 있었고, 막걸리에 자신이 있어서 토목과로 갔고, 뭐 이런 다양한 배경들이 있는데. 지금 나를 누가 키웠냐? 나는 교회가 키웠다고 생각해요. 교회는 나에게 ‘그늘’이었어. 박 형이 제일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거기에 보면 ‘그늘’의 이미지가 나와요. 나무 그늘에 앉아서 햇살을 피하면서 거기에서 나누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입양된 사람이지만, 교회가 너무 고마워. 교회 없이 내 존재가 있을 수 없어. 교회가 없었으면 나는 빚진 데가 없었을 것 같아. 내가 노가다 판에서 살고 유능한 공병 장교였고, 그대로 나갔으면 지금쯤 회사를 했든지 망했던지 하겠지만, 어쨌든 교회는 나 같은 나그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까지 어려울 때마다 공급해준 그렇게 고마운 곳이지….

사실 어거스틴 만큼 교회에 대해서 잘 표현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교회는 우리의 영혼의 엄마다.’ 엄마 이외의 존재가 우리 인생에 어디 있겠어? 엄마가 우리를 낳아줬고, 나도 교회에서 태어났고. 사실 CCC에서 예수를 믿었지만 내 기저귀를 다 갈아주고 내 세계와 가치를 형성해준 것은 교회였거든. 교회에서 요리문답도 하고 학습도 받고 세례도 받았지.

이렇게 고마운 곳이 교회인데, 뜨겁게 작열하는 정의의 태양이 이제는 한 두 개가 아니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은 정의의 사도가 온 세상에 가득해졌어. 이런 곳에서 그래도 교회는 우리의 셰이드거든. 그런데 이 교회를 왜 이렇게들 공격하는지, 또 쪼개는지, 또 지지고 볶고 싸우는지…. 그럼 요즘도 교회에서는 나 같은 회심이 일어나는지…. 박 형은 목회자니까 분명히 회심이 일어는 것들을 많이 봤을 것 같아. 그리고 그 회심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라 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지, 거기에 박 형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시간 개념, 한 시간을 통해서 쭉 변해가는 모습을 목회자는 많이 보았을 것 같고 그것이 목회자의 기쁨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늘로서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영적 변화, 생명의 신비…, 이런 긍정의 힘이 너무나 지금 이 시대에는 위축이 되어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그럼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될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박 형에게 듣고 싶은 마음이 있어.

   
 

박영선: 교회에는 기적이 있어요. 우리 신자들은 기적이라 그러지만, 창조와 부활이 있어요. 하나님이 콘텍스트를 초월하셔서, 우리가 조건을 조성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 얘기하셔요. 그리고 아무 때나 언제나 하셔. 그러니까 교회가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책임을 질 것이 없어. 표현이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사실이에요. 그걸 조작하고, 조건을 만드느라고 소모전을 해? 그건 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면 하세요.

   
박영선 목사. 남포교회에서 목양함. 1948년 평북 구성에서 태어남

우리가 해야 될 것이 있어요. 하나님이 창조와 부활을 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 그것을 어느 형편에서든지 해야 되는 게 교회의 몫이야. 지금 김 박사님이 제시한 것, ‘왜 교회는 이러냐?’ 라는 질문 앞에서, 그 비난 속에서도 해야 되는 거야. 비난에 답을 해야 하고 비난을 해소시키려 하지 말아야 해. 아무래도 좋아요. 목사들이 실력이 없어도 좋고, 세상의 핍박이 심해도 좋아. 그러면 교회는 뭘 해야 되는데? 지금 나오고 있는 것들은 전부 말도 안 되는 피상적인 것이야. ‘세습을 하면 안 된다.’ ‘재정을 투명하게 해라.’ 그런 건 다 숫자놀음이고, 밖으로의 변명에 불과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와서 그분의 목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로서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걸 구체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하나님의 뜻을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 생애에 받아들여져서 우리가 겪는 모든 정황에서 낙관주의자 노릇을 해야 돼. 믿음을 가져야 된다고.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예전에는 죽어도 된다는 말을 어떻게 갖다 붙일 수가 없어서 ‘치열함’이나 ‘지극함’에다가 가치를 두었어요. 또 믿음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우애를 나누면 사랑, 용서라는 단어들을 자꾸 가치화 했어. 그게 아니고, 세상이 우리를 보고 ‘타협해라. 포기해라. 너희 손해보고 있지 않느냐?’라고 해서, 우리를 무릎 꿇리려고 하는 세력 앞에 ‘너희가 할 수 있는 것 다 해라. 우리를 병들게 해라. 잡아가라. 비난해라. 우리는 이 길을 간다.’…

소리 지르지 말고, 보복하지 말고, 눈물 흘리고 가야 돼.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정성의 표현도 아니고 원한의 표현도 아니야. 고통스러워서 그러는 거야. 이게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가는 거야. 그렇게 안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타협을 하면,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고 가치 없이 살고 조심하며 살다 죽고 마는 거야.

그걸 어떻게 분별하느냐? 그게 시간이야. 늙으면 다 알게 돼. 늙으면 알게 된다는 말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요. 늙으면 죽음이 코앞에 와. 성공한 것과 가진 것과 승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가짜야. 왜 가짜야?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그야말로 시간이 소진된 거야. 그리고 그때마다 멋있어질 기회를 놓친 거야. ‘그때 멋있게 굴 걸….’ 이게 남아. 마지막에 오면 ‘내가 마지막으로 멋있게 군다.’ 이렇게 되는 거야. 그게 교회야. 그래서 교회에는 꼭 어른이 있어야 해. 살아오고 나서 씩 웃는 어른이 있어야 돼.

우리 때는 중고등부하고 대학부하면 꼭 이런 말이 나왔어요. ‘교회가 연애당이야?’ 교회는 좀 더 거룩해야 된다는 거지. 그럼 그 중요한 연애를 왜 밖에서 해? 교회 안에서 해야지. 그렇지 않아? 이 모든 걸 다 담아야 될 거 아냐?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예수 안에서의 승리로 간다고 믿는 것 아냐? 그런 넓은 의미의 자신감이 교회 안에 있어야지. 그게 교회지.

그런데 우리는 어려움이 생기면 당장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된다고 생각을 해. 만족은 안 일어나요. 언제 일어나? 70세는 넘어야 일어난다고. 신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반대하는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결국 가짜였다는 것을 알아서 남은 선택이 이거야.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몰고 간다는 거지. 우리는 처음부터 완벽한, 보다 일찍 완벽해져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아니야. 하나님은 도움을 원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에 도착하기를 바라실 뿐이야. 후손과 후손에게서 반복적으로 일을 하셔. 마치 기독교는 이기는 것 같지도 않고, 답을 알려주는 것 같지도 않고,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을 부르고 그 시대 사람들을 기르고,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한국 교회를 비난하지 말고 역사적 진행을 보자고. 교회는 무엇인가? 출생을 책임 맡은 교회도 있고, 순교를 책임 맡은 데도 있어. 교회는 저마다 특색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궁극적으로는 전체로 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자기 시대 속에서 이런 완성으로 인도하신다는 것 중에서 자기가 무엇을 맡았다는 것을 알아야지. 한 교회가 이런 균형을 다 가지고 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요. [전문 보기: 친구, 교회가 왜 이럴까? 친구, 교회는 이런데라네.

인터뷰 김은홍 편집인 CTK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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