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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면 지옥간다? 함부로 말하지 말기를
조성돈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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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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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사회를 읽는 목회
 

신교에는 절대적으로 지옥에 갈 죄는 없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죄로 인해서 지옥 갈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구원 받고 죽으면 천국 간다는 그 기준은 그런 죄의 경중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예수 믿는가’가 중요한 기준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이 진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이때도 여전히 한국 교회에서는 한 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 (최근 어느 전통 있는 장로교단 총회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다.) 자살한 사람은 지옥 간다는 것이다. 자살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희대의 살인마도 회개했다며 간증집을 내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은혜 받았다고 한다. 고문기술자라 불렸던 이가 어느 날 목사가 되어서 강대상에 서기도 한다. 우리 교회는 무척 관대하게 이들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자살한 사람은 용서가 안 된다. 우리 교회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들을 꼭 지옥에 보내고 싶어 한다.

자살예방 일을 하다보면 제보가 들어온다. 어느 교회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생겼다. 그러자 장례를 주관해야 할 담임목사가 뒤로 빠졌다. 그리고 교육전도사에서 장례 집례를 미뤘다. 아마 교회의 공식적인 장례가 아니라는 의미일지 모르지만 실은 논란이 생기니 입장이 곤란해진 담임목사가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장례가 시작되는데 공부만 한, 아직 현장을 잘 모르는 고지식한 전도사가 ‘고인은 비록 지옥에 가셨지만…’ 하고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내가 아는 집사가 있다. 50세 가까이 됐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느 교회 사찰집사였다. 살림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집사의 남동생이 의사가 되었다. 이 집안의 얼마나 큰 자랑이었겠는가? 그런데 이 아들이 자살을 했다. “형 미안해”라는 문자 하나 남겨 놓고 말이다. 교회에서 장례를 치렀다. 아버지가 사찰집사를 하고 이 형제가 수 십 년 다닌 교회이다. 장례 중간에 어느 분이 이 집사 들으라고 한 마디 한다. “지옥 갔는데 장례는 뭐 하러 치러.”

수 십 년 함께 교회 다녔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알던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 되신 이 사찰집사 속을 꽤나 썩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살했다고 곧바로 지옥이라는 말이 나온다.

가족이 자살했다면 그 충격은 너무 크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해서 분노와 원망, 그리고 후회가 이어진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절망이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죽었다면 어느 식구이든 마찬가지로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게 그 집안에 나이 많은 어르신이든 오랜 병으로 고생하셨던 분이든 말이다. 그런데 가족이 사고사나 자연사가 아니라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크다.

이럴 때 이들이 교회를 다녔다면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공동체 된 교회의 함께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다툼이 시작된다. 장례를 치러주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논쟁을 벌인다. 자살한 고인이 지옥을 갔는지 천국을 갔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이럴 때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대부분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난다. 교회만 떠나겠는가? 많은 경우 하나님도 떠나게 된다.

유가족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자살위험이 20배 정도 높다고 한다. 실제로 자살이 있는 가정에서 자살이 이어지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배우 최진실 씨 가족의 경우를 보라. 그래서 자살도 유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보다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비슷한 성격을 지녔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것은 자살한 사람과 비슷한 조건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당신 자녀가 자살했으니 지옥 갔다고, 당신 남편이 자살했으니 지옥 갔다고 한다. 이것은 살인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같은 교인이면서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인지, 또는 잔인한 것인지, 이런 말을 너무나도 쉽게 내뱉는다.

서두에서 꺼냈지만 개신교의 기본적인 생각은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그 어떤 공로나 수고로 그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그 어떤 공로나 행위로 그 구원에서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 그가 믿음이 있었는가가 조건으로 판가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의할 사항이 있다. 구원의 조건은, 그 믿음은 우리 인간이 판가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믿음이 있었는지는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어떤 사람을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내는 것은 오류이다. 이 땅에 그 누구도 그러한 권한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자살은 죄가 아니라는 것인가? 아니다. 자살은 명백히 죄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긍휼하신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살에 대해서 자신을 죽이는 살인행위라고 규정했다. 우리가 자살을 죄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 자신의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명백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라는 것이다.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 생명을 죽였으니 명백한 죄이다. 이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6계를 어긴 죄이다. 그런데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아니다. 심지어 남을 죽인 살인자들도 회개하면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왜 자살한 사람은 용서가 안 되는가?

회개할 시간이 없다고? 회개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는가? 살인죄는 3시간 이상 회개해야 한다고 어디 나와 있는가? 믿음이 있으면 자살할 리 없다고? 아니다 믿음 좋은 집사도 권사도, 심지어 장로도 목사도 자살한다. 죽음의 생각이 닥쳐올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마치 믿음이 있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논리나 진배없다. 믿음이 있으니 병원 가지 말고 기도로 이기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믿음이 있어도 이 죽음의 생각과 마주하게 되면 무너질 수 있다.

마르틴 루터는 자살자의 장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살한 사람은 마침 숲속에서 강도를 만난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탄이 그를 습격하여 죽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강도 만난 자에 대해서 믿음을 이야기하지 않듯이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 믿음을 척도로 대지 말라는 것이다.

구원에 관한 문제는 하나님께 열어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가 이 땅에서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 땅에 남겨진 유가족들을 위로해야 한다. 한 교회의 성도로서 그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전해야 한다. 함께 긍휼하신 하나님께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자살이 일어나면 6명의 유가족이 생긴다고 한다. 아마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계산한 것 같다. 그러나 넓게 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쨌거나 6명의 유가족이 생긴다고 하면 지난 10년간 대략 80만 명의 유가족이 생겼다. 그 중 20퍼센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우리 교회 안에서도 16만 명이 생긴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를 전했을까?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교회가 이들만이라도 안아서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게 생명이라고 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CTK 2017:11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이자 기도교 자살예방 센터 ‘라이프 호프’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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